<아크나이의 화덕> 번역 ㅡ 신이 뭘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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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어느정도 똑똑해지고 난 뒤부터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지식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에는 GPT에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을 뿐인데, 우연히 GPT가 가져온 탈무드의 '아크나이의 화덕(The oven of Akhnai)'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좀 찾아봤습니다. GPT가 히브리어와 영어가 병기된 원문 사이트도 쉽게 찾아주고, 현대적으로 적용한 연구들도 딸깍 한번에 가져와주니, 이제는 생경한 분야도 기초적인 수준까지는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네요.

아크나이의 화덕은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Bava Metzia 59b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화덕이 의례적으로 정결한지를 두고 랍비 엘리에제르와 다른 랍비들이 논쟁하는데, 엘리에제르가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기적과 심지어 신의 음성(!)까지 불러오는데요. 랍비들은 '토라는 하늘에 있지 않다'고 하며 심지어 신의 음성마저 거부해요.(공식이 뭘알아)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해석학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라 관심이 갔던 건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그 이후까지 다루는 것도 흥미로워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가 유대교 문헌에 대해 대충 찾아본바를 몇가지 말하자면, ‘탈무드(תַּלְמוּד*,Talmud*)’는 크게 미슈나(מִשְׁנָה ,Mishnah)와 게마라(גְּמָרָא, Gemara)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미슈나는 유대교의 구전 율법을 정리한 문헌이고, 게마라는 이를 두고 후대 랍비들이 벌인 논의와 해석이라고 하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게마라가 최종적인 판정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판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질문과 반론이 오갔는지도 상당 부분 함께 보존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게마라에는 수백 년에 걸쳐 미슈나를 둘러싸고 랍비 A의 주장에 랍비 B가 반론하고, 다시 다른 전승이나 사례를 제시한 사례들이 축적된 논쟁의 과정이 담겨있다는 건데요. 게마라 자체가 논쟁과 사유의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는 굉장히 철학적인 작업처럼 보이네요. 이런걸 보면 유대인들이 철학적인 교육방식을 가지고 있다는게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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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철학이 또 당장 유대인들의 생활 자체를 좌우하는 굉장히 실천적인 문제와 엮여있다는 것도 흥미로워요. 본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할라카(halakha)’는 유대교의 규범과 법적 판정을 뜻하는데요. 그런데 단지 율법에 대한 교리적 해석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고, 보다 법과 실천이 엮여있는 유대교의 실천 전통 전체를 의미하는 듯해요. 그러니까 음식, 안식일, 결혼, 상거래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서 유대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굉장히 실천적인 규범이거든요. 따라서 본문에서 랍비 엘리에제르가 “할라카가 내 견해와 같다면...”이라는 말은 화덕이 정결한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정해진다면 당장 유대인들이 화덕을 쓸지 말지가 바로 결정되는 문제가 되요. 그러면 이 상황에서 올바른 할라카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단지 교리적 해석에 차이가 아니라 당장 실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가 되는거죠. 그렇게 보면 이 랍비들의 논쟁에서 왜 ‘공동체가 비준하는 해석의 절차’가 신의 보증마저 물리칠 정도의 정당성을 가지는지도 조금 이해가 가요. 아무리 공식이 정답을 직접 말해준다고 해도, 이미 인간에게 건네진 텍스트라면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일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해석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다만, 논쟁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단지 해석의 문제보다 더 많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글로 써보려구요.

Babylonian Talmud, Bava Metzia 59b, The William Davidson Talmud, Sefaria, Bava Metzia 59b | Sefaria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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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나이의 화덕 (번역은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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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아크나이의 화덕’으로 알려진 것이다. 게마라는 묻는다. 이 맥락에서 뱀을 뜻하는 ‘아크나이’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라브 예후다가 슈무엘의 이름으로 말했다. 랍비들이 마치 쉴 때 몸을 또아리처럼 감는 뱀과 같이 자신들의 말로 이 화덕을 에워싸고 그것을 부정하다고 판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현자들은 가르쳤다. 그날 이 문제를 논의할 때, 랍비 엘리에제르는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모든 답변을 내놓았지만, 랍비들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랍비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뒤, 랍비 엘리에제르는 그들에게 말했다. “할라카가 내 견해와 일치한다면, 이 캐럽나무가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자 캐럽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뿌리째 뽑혀 백 암마를 이동했고, 어떤 이들은 사백 암마를 이동했다고 말한다. 랍비들은 그에게 말했다. “캐럽나무로부터 할라카적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랍비 엘리에제르는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할라카가 내 견해와 일치한다면, 이 물길이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물길의 물이 거꾸로 돌아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말했다. “물길로부터 할라카적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랍비 엘리에제르는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할라카가 내 견해와 일치한다면, 학당의 벽들이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자 학당의 벽들이 안쪽으로 기울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랍비 여호수아가 벽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토라 학자들이 할라카의 문제를 놓고 서로 논쟁하고 있는데, 너희가 이 논쟁에 관여할 일이 무엇이냐?”

게마라는 전한다. 벽들은 랍비 여호수아에 대한 존중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지만, 랍비 엘리에제르에 대한 존중 때문에 다시 똑바로 서지도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기울어진 채 남아 있다.

랍비 엘리에제르는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할라카가 내 견해와 일치한다면, 하늘이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신적 음성이 나와 말했다. “어찌하여 너희는 랍비 엘리에제르와 의견을 달리하는가? 그가 의견을 밝히는 모든 경우에 할라카는 그의 견해와 일치한다.”

랍비 여호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신명기 30:12).

게마라는 묻는다. 이 맥락에서 “그것은 하늘에 있지 않다”라는 구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랍비 이르메야가 말했다. “토라는 이미 시나이산에서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신적 음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이미 시나이산에서 토라에 ‘다수를 따라 기울이라’(출애굽기 23:2)라고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랍비들의 다수가 랍비 엘리에제르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할라카는 그의 견해에 따라 판정되지 않는다.

게마라는 전한다. 여러 해 뒤, 랍비 나탄이 예언자 엘리야를 만나 그에게 물었다. “랍비 여호수아가 그 선언을 했을 때, 거룩하신 분, 찬미받으실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엘리야가 그에게 말했다. “거룩하신 분, 찬미받으실 그분께서는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들이 나를 이겼구나. 내 자녀들이 나를 이겼구나.’”

현자들은 말했다. 그날 현자들은 이 화덕에 관한 랍비 엘리에제르의 판정에 따라 정결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정결한 물건을 가져와 불태웠다. 그리고 현자들은 그에 관해 의견을 모아 그를 파문했다.

현자들은 말했다. “누가 가서 그에게 파문 사실을 알릴 것인가?”

그의 사랑받는 제자 랍비 아키바가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사람이 가서 무정하고 모욕적인 방식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가는, 그가 그로 인해 온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랍비 아키바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애도와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옷을 입고 검은 천으로 몸을 감쌌으며, 랍비 엘리에제르 앞에서 네 암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이는 파문당한 사람에게서 유지해야 하는 거리였다.

랍비 엘리에제르가 그에게 말했다. “아키바여, 오늘은 다른 날들과 무엇이 다른가? 왜 이런 모습으로 행동하는가?”

랍비 아키바가 그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생각에는 동료들이 스승님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실제로는 그들이 랍비 엘리에제르를 자신들로부터 떼어낸 것이었다.

랍비 엘리에제르 역시 옷을 찢고 신발을 벗었다. 이는 파문당한 사람의 관습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내려와 땅에 앉았다.

게마라는 전한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 결과 온 세상이 재앙을 입었다. 올리브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었고, 밀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었으며, 보리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었다. 어떤 이들은 여인의 손에서 반죽되고 있던 반죽마저 상했다고 말한다.

현자들은 가르쳤다. 그날에는 큰 진노가 있었으며, 랍비 엘리에제르가 시선을 고정한 곳마다 불탔다.

당시 랍반(랍비장) 가말리엘도 배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는 야브네 산헤드린의 나시이며, 랍비 엘리에제르를 파문하기로 한 결정에 책임이 있었던 현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커다란 파도가 그를 덮쳐 그를 익사시키려 했다.

랍반 가말리엘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오직 랍비 엘리에제르 벤 히르카누스의 일 때문에 일어난 것 같다.” 이는 하느님이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는 자들을 벌하신다는 의미다.

랍반 가말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우주의 주인이시여, 제가 그를 파문할 때 제 자신의 명예를 위해 행동한 것도 아니고 제 아버지 가문의 명예를 위해 행동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당신 앞에 드러나 있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당신의 명예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논쟁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격렬함을 멈추고 잔잔해졌다.

게마라는 계속해서 전한다. 랍비 엘리에제르의 아내 임마 샬롬은 랍반 가말리엘의 누이였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랍비 엘리에제르가 머리를 숙이고 간구와 탄원을 포함하는 타하눈 기도를 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며 그 순간 기도할 경우 자신의 오빠가 벌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어느 날은 신월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실수로 30일짜리 달과 29일짜리 달을 잘못 계산했다. 즉 머리를 숙여 간구하지 않는 신월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신월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사람이 와서 문 앞에 서 있었고, 그녀가 그에게 빵을 가져다주러 나갔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녀는 잠시 남편을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랍비 엘리에제르가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당신은 이미 내 오라버니를 죽였습니다.”

바로 그때 랍반 가말리엘의 집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나와 나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랍비 엘리에제르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오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소?”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이것은 제가 제 조부의 집에서 전해 받은 전승입니다. 하늘의 모든 문은 닫힐 수 있지만, 말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의 기도가 들어가는 문만은 닫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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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천사가 뭘 알아?!"

[⋯]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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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천사도 모르는걸 너넨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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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는 하늘에 있지 않다'는 말은 토라가 인간이 실천하기에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것은 (율법적) 사법권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완전히 귀속된다는 취지는 아니죠. 이 구절은 이러한 기본적 원리 하에서 지상의 산헤드린의 관할권과 하나님의 심판간의 역학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지상에서 유대인에게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산헤드린이었습니다. 아래에서 Babylonian Talmud, Bava Metzia 59b 텍스트를 산헤드린에서의 변론절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간략히 검토해 볼게요.

먼저, 엘리에제르와 랍비들이 할라카의 견해와의 일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변론 절차'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토라 구절 '다수를 따라 기울이라’(출애굽기 23:2)에서 말한 것처럼 다수결에 따른 것은 '합의 및 표결 절차'에 해당하죠. 그런데 '현자들'은 엘리에제르를 파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초자연적인 증거는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논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예수를 재판한 것도 산헤드린이었는데요, 여기서 예수의 기적행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는 산헤드린에서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 행위 자체에 대해 일종의 '거짓 예언자'로 보아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법시스템과 토라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기준에 의해 신성모독죄라는 죄목의 판결을 받게 되었죠. 엘리에제르에 대한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자연적 행위에 대한 것은 증거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에서는 예수를 사형시키기를 원했지만, 산헤드린에서는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갈릴리로 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유월절을 맞아 이미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예루살렘의 헤롯 안티파스의 관저로 보내지죠. 하지만 사법적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던 그는 예수를 다시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로마법에서 신성모독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은 예수의 죄목을 '반역죄'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칭하며 세금을 거부하도록 선동한 죄'로 변경하였던 것이죠.

이렇게 볼 때, 엘리에제르와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기본적인 판결절차 자체는 일관적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자신들의 권위와 절차적 정당성을 수호하려 했었죠. 그러나 그들이 예수의 죄목을 바꾸어 사형시키려 한 것은 유대법이나 당시 로마법에서도 금지하는 '정치범 조작'에 해당하는 범죄였습니다. 예수가 무고하다는 것을 알았던 빌라도는 예수를 사형시키기를 망설였고, 끝내 손을 씻는 행위를 하기까지 했던 것이죠.

위의 Babylonian Talmud, Bava Metzia 59b 텍스트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카발라적 해석, 즉 세피로트 구조를 중심에 둔 해석이나, 게마트리아를 이용한 해석도 가능합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잘 알지 못해서 이만 줄입니다. 좋은 자료의 번역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리실 글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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