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에 몇 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던 것을 제외하면 저는 무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무술에 대한 로망(?)은 어느 정도 있다 보니 종종 무술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편인데, 흥미롭게도 요즘 제 유튜브 추천 영상에 태권도와 택견에 종사하시는 철학과 출신분들의 이야기가 올라오더라고요. 특히, 철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일반 무도인들과는 달리 전공의 특색을 잘 살려서 무술의 문화사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태권도와 택견에 대한 이분들의 역사적 주장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은 없지만, 적어도 철학 전공자들이 무술 연구 분야에서 이런 방식으로도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서 소개드립니다.
태권도
이창후 교수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학술적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파란 옷을 입고 다니시는 것이 이분의 아이덴티티라 '파깨비'라는 별명도 지니시고 있는데, 저는 고등학생 시절에 이분의 홈페이지인 '파깨비의 철학 공부 자료실(http://www.pakebi.com/phil.html)'을 보면서 철학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창후 교수님이 태권도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면서 태권도 수련과 태권도사 연구에 깊이 매진하시는 분이시더라고요. 특히,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기보다는 택견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입장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논증하시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강의이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a) 태권도의 품새나 승단 체계가 가라데에서 온 것은 분명히 맞지만, (b) 태권도의 아이덴티티는 그러한 부차적 요소들보다는 '발차기' 기술들에 있고, (c) 쇼토칸 가라데 이전의 본래 가라데는 발차기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는데, (d) 한국 출신 유학생들이 쇼토칸 가라데에 영향을 주면서 가라데에 발차기가 유입되었고, (e) 그 유학생들의 발차기는 당시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택견의 기술들에서 왔다는 것이 이창후 교수님의 분석입니다.
그래서 이창후 교수님은 만약 우리가 '발차기'야말로 태권도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하고자 한다면, 태권도는 가라데보다도 택견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은 무술이라고 강조합니다. 가라데 유입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저에게는 매우 신선하면서도 치밀한 분석으로 보여서 놀라웠습니다.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널리 퍼진 역사적 사실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태권도와 가라데를 구분짓는 본질적 요소를 '발차기' 기술들에서 찾아내고, 그 발차기 기술들의 문화사적 기원을 택견으로 추적해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시니 말입니다.
택견
택견이 어떠한 무술인지에 대해서는 택견 협회들마다 서로 다른 관점들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윗대태껸협회'에 소속된 강태경 사범님과 김형섭 사범님의 영상들이 흥미로워서 소개해 봅니다. 두 분은 모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나오셨는데, 강태경 사범님은 이후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수료를 하셨을 정도로 학술적 담론들에 깊이 몸담고 계신 분이시네요. 최근에 두 분이 택견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풀기 위해 다양한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리시더라고요. 택견이 "이크, 에크"하면서 다소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무술이 아니라, 일종의 MMA에 가까운 조선 말기의 실전 무술이었다는 것이 이분들의 강조점입니다.
특히, 택견 초대 예능 보유자인 송덕기와 그 스승 임호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택견이 구한말 신식군대에서 교육되던 무술이었다는 점과 무장 독립운동가들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는 내용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두 분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서, 오늘날 택견을 '마당놀이'와 같은 형태로 소비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a) 택견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무술이고, (b) 무술로서의 택견을 정말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택견을 고착화하거나 신비화하기보다는 택견의 실전성을 강조해야 하며, (c)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판 MMA였던 택견이 현대 MMA에서도 충분히 실전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d) 또 그러기 위해서는 택견 수련자들이 현대적인 트레이닝도 결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두 분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