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오류?

최근 어쩌다가 미셸 푸코가 역사학자들 사이에 못 미더운 놈으로 평가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푸코의 대표작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져다 쓴 역사적 근거들 대부분이 부실하며, 당대를 기준으로 봐도 낡았고,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료들을 취사선택했다고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가령 역사학자 H.C. 미델포트에 따르면, 푸코가 르네상스 시대에 광인들을 추방하기 위해 그들을 배에 태워 보냈다는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라는 관행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세는 광인들을 방임했다는 푸코의 주장과 달리, 중세에도 광인의 감금과 폭행은 흔했다고 합니다.

또한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선 정신질환자들을 대거 감금하는 '대감금'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신의학사가인 로이 포터에 의하면 적어도 영국에서는 '대감금'이라고 할만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푸코를 비판해온 정신의학사가인 앤드류 스컬은, <광기의 역사> 영역본 서평에서 푸코의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푸코가 '자기 독자들의 무지에 기대 인간 이성의 주장을 침묵시킨다'는 다소 신랄한 비평을 내놓습니다.

(후에 스컬은 푸코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자신 만의 정신의학사, <광기와 문명>을 내놓습니다.)
광기와 문명 | 앤드루 스컬 | 알라딘

https://foucault.info/foucault-l/msg11958.html

여기까지면 저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겠는데, 푸코 전문가인 콜린 고든이 위의 주장들에 대해 반박한 자료들이 있더군요.
https://www.academia.edu/10334419/History_madness_and_other_errors_a_response

이건 1990년대에 고든이 <광기의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여러 비판들을 반박한 자료고,

이건 스컬의 부정적 비평에 대한 고든의 반박입니다.

고든의 반론에 의하면, 일단 푸코는 <광기의 역사> 어디에서도 광인들의 배가 관행이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런 배들이 실존했다는 것일 뿐으로, 미델 포트 역시 푸코가 몇몇 사례를 과장하고 있다 비판하면서도, 푸코가 인용하는 세가지 사례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영국엔 대감금이란 없었다는 로이 포터의 주장에도, 영국 구빈원의 수가 당시에도 상당히 많았고 그 수가 과소평가 되었다는 자료를 들며 반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와중에 고든은 웁살라에서 지적 망명 생활을 하느라 자료 참고가 어려웠을 거란 스컬의 주장에 푸코는 웁살라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으며, 베들래햄 병원에서 정신 병자들을 전시하고 돈을 받았다는 푸코의 주장이 근거없다는 스컬의 주장에 스컬 너도 몇년전에는 그게 사실인줄 알고 퍼뜨리다가 사과하지 않았냐(...)고 지적하네요)

https://www.academia.edu/56846685/Gary_Gutting_ed_The_Cambridge_Companion_to_Foucault_2nd_edition_New_York_Cambridge_University_Press_2005_

한편 푸코 연구가인 개리 거팅은 이런 사료들이 정확하냐 부정확하냐는 푸코를 논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푸코의 연구는 당시 사람들의 특정한 인식, 믿음이나 행동들에 초점을 맞추거나, 혹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경험적 일반화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팅에 따르면 푸코의 목적은 그러한 믿음과 행동들을 가능하게 한 범주 체계, 에피스테메를 밝혀 내는 것이 있습니다. 로이 포터가 밝혀냈듯 영국의 격리 조치가 진전이 느렸다고 해도, 그것이 (로이 포터가 인정하듯) 영국과 여러 지역에 존재한 격리를 가능하게 한 에피스테메를 분석하는 푸코에게 반론이 되지는 못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런 에피스테메의 분석이 경험적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면, 연구들의 실증성에도 의존하지 않고 있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어쨋거나 정신의학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광기의 역사>와 <광기와 문명>을 비교해서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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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를 쓰기도 했던 흄의 말이 떠오르네요.

Mankind are so much the same, in all times and places, that history informs us of nothing new or strange in this partic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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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거팅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푸코가 드는 사례들의 실제 여부는 거의 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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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푸코의 전략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푸코가 실증 역사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지식을 성립시키는 '에피스테메'라는 조건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특정한 사료 분석에 호소하였다면, 그 사료 분석이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사료 분석에 근거한 주장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반드시 참이 되어야 올바른 논증인데, 애초에 전제가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논증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사료 분석이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그리 손쉽게 무시할 수 있는 반론은 아니라고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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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 글을 더 길게 쓸라 그랬는데, 글 쓸 당시 피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거팅이 평탄한 어조로 글을 씀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냥 에피스테메가 더 중요하단 뉘앙스로 대충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거팅의 중요한 주장을 하나도 못 짚고 넘어갔네요.

<Foucualt: a very short introduction>과 < The Cambridge companion to Foucault>에서 거팅의 주장에 따르면,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주장하기 위해 사료 분석에 호소하지도 않고, 나아가 사료분석을 논증의 전제로도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팅은 푸코가 동원하는 역사적 사료들이 푸코가 주장하는 특정한 에피스테메의 근거가 되는 것(support)이 아니라, 단순히 예시를 들 뿐(illustration)이라 설명합니다.

예시를 드는 것 역시 근거를 드는 것의 종류 아닌가? 이 둘이 여기서 다르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푸코의 '고고학'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푸코의 고고학의 목표는 본 글에서 말했다시피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밝혀내는 것이고, 에피스테메는 믿음과 행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범주 체계categorical system입니다. 그러나 에피스테메는 한 시대의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특정한 사유들은 어리석거나 비논리적인 것으로 배제하며 사고의 범위를 '제약'하는 암묵적 규칙, 그런데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 조차 그 규칙이 무엇인지 모르는 규칙입니다. 우리는 사상사를 보며 사람들의 의식적 생각이 사상사를 이뤄냈다고 보지만, 푸코가 보기엔 사람들의 의식적 생각과 무관하다 여겨진 외부 요인들의 결과물이 바로 의식적 생각인 것이죠. (이런 점에서 푸코는 자신의 고고학이 정신분석학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동시에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제약하는 구조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칸트와도 유사하지만, 그 구조가 필연적이고 보편 타당한 칸트와 달리 푸코에게선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

그렇다면 푸코의 고고학은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의 여러 경험들(사실들)을 모아 일반화하는, '경험적 일반화'가 아닐 뿐더러 경험적 일반화로는 달성 될 수 없는 작업입니다. 에피스테메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경험들을 모아 일반적인 사실을 도출해낼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죠. (마치 칸트가 그러듯이) 그리고 이렇게 발견해 낸 에피스테메는 그것에 의해 제약받는 사람들의 믿음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쳐야 하지만, 이에 어긋나 보이는 몇몇 사례들만으로는 반박되지 않습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결론을 냈다가 흰 까마귀라는 반례로 인해 반박되는 경험적 일반화와는 달리, 사고의 구조는 경험적 사실들과 일대일 대응을 가진다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거팅은 이를 정신분석에 비유합니다. 만약 제가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혐오한다면, 제가 매주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결혼 기념일을 챙기는 등 여성을 잘 대하는 듯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성에 대해 지닌 적개심은 여전히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피스테메를 밝혀내기 위해 (푸코의) 고고학이 취하는 전략은, 앞서 말했다시피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모아 일반적인 사실 하나를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한 여러 사실들을 설명해낼 수 있는 하나의 해석적 틀interperative schema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푸코가 드는 사례들은 이러한 해석적 틀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들이라는 것이죠. 거팅은 이런 푸코의 역사적 접근 방법을 관념론적(번역이 옳은지 모르겠네요)idealistic 역사학으로 부르며, 푸코의 역사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단순히 개별 사례들의 옳고 그름이 아닌, 푸코가 제시하는 해석적 틀이 역사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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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작업이 일종의 선험적 분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료가 잘못되었다면 그가 제시한 에피스테메도 신뢰성을 잃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네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이 우리가 실제로 겪은 경험과는 다른 경험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면, 그게 실제 경험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덧붙여서 에피스테메가 "뒤죽박죽한 여러 사실들을 설명해낼 수 있는 하나의 해석적 틀"이고, 따라서 "푸코가 제시하는 해석적 틀이 역사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를 기준으로" 그의 작업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경우에도 문제는 여전합니다. 푸코가 자신이 가정한 해석적 틀을 거짓 사료에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면,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것이 성공적인 해석적 틀이라고 불려도 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러한 해석적 틀은 실제 경험을 반영하고 거짓 경험을 배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시대마다 고유한 범주 체계로서의 에피스테메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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