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이 얼마나 구체성을 지닌 철학인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들이 몇 개 떠올라서 여기도 가져와 봅니다. 요즘은 현상학 전공자들조차도 "현상학이 뭔가요?"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현상학 전공자일수록 자신이 전공하는 현상학의 특정 인물이나 주제에 매몰되어서 '현상학' 자체를 망각하는 경향까지도 있는데, 저는 이러한 경향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초창기 현상학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주제들과 맞닿아 있는 생각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당대 지성인들 사이에서 화제를 일으켰으니까요. '살구칵테일'과 '우체통'이라는 아주 일상적인 대상만으로도 깊고 진지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현상학이 그 시대에 일으킨 혁명이었거든요. 그게 현상학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였고요.
장폴 사르트르
살구칵테일의 현상학
반대로 사르트르는 독일 현상학에 대해 전해 듣고는 매혹되었다. 레몽 아롱은 베를린의 프랑스연구소에서 1년을 보내고 역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한편, 후설을 공부했었다. 그는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사르트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몽파르나스 거리의 벡 드 가즈(Bec de Gaz)에서 저녁나절을 보냈는데, 이 집의 특별 메뉴인 살구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러자 아롱이 자기의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보게, 만일 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네. 그게 철학이네.’ 사르트르는 이 말을 듣고는 흥분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정도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지는 사물에 대해서 그대로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철학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몇 년 전부터 바라 왔던 것이기 때문었다. 아롱은 현상학이 바로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리라는 것을 납득시켰다.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을 넘어서서, 의식의 지배성과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의 세계의 현존성을 동시에 긍정하려는 욕망 말이다. 사르트르는 곧바로 생 미셸가의 서점에서 레비나스가 후설에 대해 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알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에 걸어가면서 아직 페이지조차 자르지 않은 책을 넘겨보았다. (Simone de Beauvoir, La Force de l'age I, Gallimard, 1960, pp. 156-157/변광배, 『사르트르 평전: 자유와 참여의 모험』, 세창출판사, 2025, 95-96쪽 재인용 및 인용자 강조.)
아돌프 라이나흐
우체통의 현상학
후설의 고전적 주제들 가운데 하나는 지각된 사물의 현상학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예를 들어, 참으로 거장다운 정확성으로, 우리가 언제나 각각의 사물이 지닌 우리를 향하고 있는 면만을 보며, 또 사물의 둘레를 걸어 다닐 때 일어나는 관점의 변화도,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오직 앞면일 뿐 결코 뒷면이 아니라는 이러한 본질적 관계를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서술해 냈다. 많은 현상학적 분석들은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이었다. 후설의 가장 재능 있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괴팅겐의 사강사 아돌프 라이나흐는, 심지어 한 학기 내내 우체통이 무엇인가라는 문제 외에는 아무것도 다루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Hans-Georg Gadamer, “Die phänomenologische Bewegung”, Neuere Philosophie I, Tübingen: J. C. B. Mohr, 1987, S. 107 인용자 강조.)
물론, 모든 현상학자들이 살구칵테일이나 우체통 같은 일상적 대상을 분석하는 작업에 힘을 쏟지는 않습니다. 또 이런 작업이 과연 철학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시선을 지닌 현상학자들도 있죠. 가령, 하이데거는 명확히 우체통의 현상학을 겨냥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1913년 괴팅겐: 한 학기 동안 후설의 제자들은 우체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논쟁했다, 이러한 취급방식으로 사람들은 다음에는 종교적인 체험에 대해 논의한다. 그것이 철학이라면, 나 역시 변증법에 찬성하겠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론: 현사실성의 해석학』, 이기상·김재철 옮김, 서광사, 2002, 181-182쪽.)
하이데거 본인은 '변증법'이라는 방법에 반대하지만, 만약 우체통의 현상학 따위가 철학이라면 그런 철학을 할 바에야 변증법에 찬성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상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없이 곧바로 하이데거를 읽으면 도대체 뭐가 뭔지 감조차 잘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현상학은 '현상'을 기술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하이데거는 '존재'를 사유하겠다면서 현존재 분석론을 하고 있고, 그 현존재 분석론은 도대체 스승인 후설의 현상학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텍스트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