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종 교수님께서 『크로스오버 하이데거』가 새로운 출판사에서 수정/증보된 형태로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보내주셨다. 다음 학기부터 이승종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어서 이 책을 틈틈이 다시 읽어보던 중이었는데, 마침 재출간 소식을 듣게 되어서 기뻤다. 특별히, 이 책은 내가 하이데거를 독해하는 방식에 대단히 많은 영향을 주었고, 철학적 해석학과 분석철학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에도 눈뜨게 해준 데다, 서강대 대학원 시절에 옆학교 이승종 교수님의 은밀한 팬(?)이 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해서, 나에게도 정말 의미가 있는 책이다.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18
(2) 박이문 교수님은 생전에 이 책에 대해 아래와 같은 추천사를 쓰셨다.
"나는 이 책이 한국 현대철학사에 오래 남아 진지한 철학도들에게 읽히고 논의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책의 중요성은 저자의 개성 있고 깊이 있는 사유에 있다. 이승종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명실공히 철학자임을, 즉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가진 석학이 아니라 사유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동의하든 않든 상관없이, 이승종 교수의 하이데거론을 통해 저자 자신의 주체적 사유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추천사의 첫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승종 교수님의 책은 하이데거에 대한 치밀한 주석과 설득력 있는 재해석이 정말 잘 조화되어 있는 대단히 모범적인 연구서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 책만큼 명료한 언어로, 꼼꼼하게, 포괄적으로, 개성 있게 다루는 연구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도 얼마 되지 않는다. 하이데거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철학도들이라면, 결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A급' 연구라고 자주 거론되는 텍스트들조차 이승종 교수님이 쓰신 책만큼의 엄격함과 명료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가령, 독일어권의 권위 있는 하이데거 연구자들인 푀겔러, 헤르만, 피갈은, 주석적으로 엄밀한 해설을 제시할 지는 몰라도, 하이데거의 사유가 현대철학에서 지니는 의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호그런드, 로티, 테일러, 브랜덤은 하이데거의 사유가 지닌 의의를 분석철학의 용어를 통해 명료하게 보여주지만,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특정한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하이데거의 텍스트를 다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한계를 지닌다. 영미권 하이데거 연구사에 길이 남게 된 드레이퍼스의 『세계-내-존재』조차 전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제1부에 대한 제한된 해설만 제시한다.
국내와 국외의 기존 하이데거 연구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승종 교수님의 책이 지닌 강점은 명확하다. 이승종 교수님의 책은 전기 하이데거가 놓여 있는 현상학적 배경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하여 후기 하이데거가 고민한 기술문명에 대한 성찰로 차근차근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우선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 사이의 차이가 대단히 꼼꼼하게 다루어지고(제Ⅰ부),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하이데거의 사유가 수리논리학적 언어철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고(제Ⅱ부), 이러한 비판이 분석철학 전통이 고민해 온 형이상학과 진리론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제Ⅲ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논의가 기술 환원론과 결정론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논증된다(제Ⅳ부). 따라서 각 부분은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다루어지는 개별 주제들을 잘 보여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이데거의 사유가 지닌 전체 면모를 드러내는데, 그 과정에서 분석철학의 주제들과 하이데거의 사유 사이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3) 나는 드레이퍼스의 『세계-내-존재』가 영미권 하이데거 연구자들의 필독서인 것처럼 이승종 교수님의 이 책이 국내 하이데거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널리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위 있는 연구, 학자, 학계, 전통이란 결코 연구자 한 사람만의 실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연구를 생산하고, 발굴하고, 지원하려는 학문 공동체 전체의 지속적인 노력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뛰어난 연구가 세대를 이어 계승되고 전파되면서 점차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에 대한 이 훌륭한 연구가 잊혀지지 않고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학문 공동체 전체를 성장시키는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이데거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모든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이승종 교수님이 「대학지성 In&Out」 기사에 쓰신 첫 문단을 읽고서 학문 공동체 전체가 훌륭한 연구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2010년에 출간한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는 연세대 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철학 학술지들과 『교수신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출판유통업체의 부도로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책을 낸 지 1년 만에 문을 닫는 바람에 책도 함께 절판되었다. 16년을 공들인 연구 성과가 학문과는 상관없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인가. 저자라는 운전자가 막 주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의의 사고사를 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이 그동안 절판된 상태였는지도 몰랐다. 출판사의 부도 때문에 이정도로 뛰어난 책이 고작 출간 1년만에 유통이 중단되어 10년동안 서점에서 찾아볼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새로운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내지 않았다면, "한국 현대철학사에 오래 남아 진지한 철학도들에게 읽히고 논의"되어야 하는 책이 정말 소리소문 없이 사장되어버릴 뻔했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라도 해당 연구를 보존,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관심과 제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 철학계는 이런 관심과 제도가 너무 약하다.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연구자 집단의 수가 애초에 적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긴 하겠지만, 국내 연구자들이 수행한 뛰어난 연구를 같이 읽고 공유하려는 문화가 퍼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그래서 정말 주목받아야 할 많은 연구들이 학술논문 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묻혀버리거나,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오고 나서도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절판되어버리거나, 극히 소수의 연구자들에게만 읽히다가 다음 세대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느 순간 연구 전통이 단절되어버린다.
나는 이승종 교수님의 책이 다시는 그런 운명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도 하이데거의 텍스트에 대한 주석적 해설만 만연해 있는 국내와 국외의 연구 풍토에서, 이 책이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되어 오랫동안 학계에서 읽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을 중심으로 하이데거를 읽는 연구자들이 생겨나고, '분석적 해석학'이라는 입장이 점점 발전되고, 하이데거와 해석학에 대해 이승종 교수님이 제시하신 입장을 공유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학파와 전통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당연히, 나도 그런 흐름 속에서 이승종 교수님의 하이데거 연구와 해석학 연구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자들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