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츠버거(H. Herzberger)의 진리 비일관성 이론이 실제로 유사한 입장을 제시합니다. 굳이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의미론적 장치나 논리학적 장치를 도입할 필요 없이, 그 역설이 지닌 내적 원리나 패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거짓말쟁이의 역설에서 진리치가 끊임없이 순화적으로 변화한다면, 거짓말쟁이 문장의 진리치가 단지 '의미론적으로 불안정함'을 가진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1) 이 문장은 거짓이다.
(2) 위 문장은 참이다.
의 경우 진리치가 <그림 1>과 같은 형태로 순환하죠. 그리고
(i) 다음 문장은 거짓이다.
(ii) 위 문장은 참이다.
같은 경우 진리치가 <그림 2>와 같은 형태로 순환하고요.
국내에서는 송하석 교수님이 헤르츠버거의 입장을 옹호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송하석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헤르츠버거는 역설적 상황을 발생시키는 악순환을 상호작용하는 의미론적 과정으로 볼 것을 제안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역설 문장의 진리치는 단계별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즉 역설 문장은 의미론적 값매김에서 체계적으로 불안정(systemetically unstable)하다. 위 <그림 1>애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과 같은 역설 문장의 진리치는 한 단계에서는 참이고, 다음 단계에서는 거짓임이 반복되기 때문에 고정될 수 없다.
송하석, 『거짓말쟁이의 역설에 관한 탐구』, 아카넷, 2019, 304쪽.
헤르츠버거에 따르면, 거짓말쟁이 문장은 실제로는 어떤 단계에서도 모순을 낳지 않는다. 실제로 비일관성은 서로 다른 단계에서의 값매김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의 단계에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쟁이 문장은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다른 단계의 값매김 사이에 비일관성이 있을 뿐이고, 그 비일관성은 일상 언어가 비일관적이거나 비정합적이라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병리적이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볼 필요가 없고 단지 역설 문장의 불완전성의 패턴을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헤르츠버거의 중요한 주장이다. 요컨대 헤르츠버거는 역설 문장은 의미론적으로 불안정한 문장이다. 즉 그 문장은 어떤 단계의 값매김에서는 참이고, 다음 단계의 값매김에서는 거짓이며, 다시 그 다음 단계의 값매김에서는 참이 되는 것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역설 문장에 대해서 진리치 틈새나 진리 과잉을 함축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쟁이 역설과 관련하여 대답되어야 할 문제는, 역설 문장의 진리치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역설 문장의 진리치 변화의 패턴이 무엇인가이어야 한다. 바로 헤르츠버거가 소박한 의미론을 통해서 시도한 것은 바로 역설 문장의 진리치의 불안정성의 패턴과 정도를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헤르츠버거의 소박한 의미론은 진리개념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직관을 유지하면서 일상 언어가 왜 비일관적이라고 생각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송하석, 『거짓말쟁이의 역설에 관한 탐구』, 306-307쪽.
그리고, 헤르츠버거처럼 거짓말쟁이 역설에 접근하는 방식은 일종의 비트겐슈타인적 접근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역설을 별도의 이론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언어에서 '참' 혹은 '진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주목하여 역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려는 시도니까요. 실제로, 송하석 교수님과 이승종 교수님이 공동으로 집필한 「거짓말쟁이 역설의 분석」이라는 논문에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논문은 헤르츠버거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거나 옹호하지는 않지만, 역설을 다른 이론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면서, 역설이 '진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주목합니다. (이 논문은 이승종 교수님의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쪽 분야 전공자는 아니라서 거짓말쟁이 역설과 관련된 아주 자세한 논의들은 알지 못하지만, 다음 책들을 살펴보신다면 더욱 여러 가지 접근들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