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이데거의 『철학에의 기여』를 읽고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유를 대표하는 저작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 책인데, 저는 그동안 이 책을 그다지 주의 깊게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숲길』, 『이정표』, 『언어로의 도상에서』 같은 다른 논문집들을 많이 읽어서, 굳이 이 책을 더 읽는다고 이미 읽었던 내용에 크게 덧붙일 것이 있을까 했거든요. 대학원 박사과정 1학년 때 지도교수님의 하이데거 강독 수업에서 『철학에의 기여』의 일부분을 살펴본 것을 제외하면, 제가 따로 이 책을 집중적으로 본 적은 없었네요.
그런데 요즘 이 책을 다시 보다 보니, 이 책이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네요. 특히, '사건(Ereignis, 번역본: 생생한 고유화)'이나 '존재역사적 사유(das seynsgeschichtliche Denken)' 같은 후기 하이데거의 주요 주제들을 이 책만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글은 드문 것 같아서요. 물론, 하이데거의 다른 글들에서도 동일한 주제들이 자주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이 다소 파편화되어 있어서 한 곳에 모아보기가 힘든 반면, 이 책은 어느 곳을 펼쳐도 그 주제들로 가득하거든요.
다만, 이 책이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강의록이나 논문이 아니다 보니, 내용을 정리하려면 좀 까다로운 점들이 많네요. 하이데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전체적인 주제에 대한 이해 자체는 가능하지만, 글이 너무 은유적으로 쓰여 있는 데다 핵심 용어들도 불쑥불쑥 나타나서 다소 혼란스러운 점들이 있어서요.
번역본의 경우, 이선일 선생님이 한국어 번역본에서 전반적으로 번역을 잘 해주셨다고 생각하지만, 이선일 선생님의 다른 번역본들에 비해 『철학에의 기여』에서는 다소 의역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대부분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의역이라서 저는 좋긴 한데, 논문에 인용을 하려니 의역된 부분들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어서 조금 번거롭네요. "Ereignis"를 "생생한 고유화"라고 번역하신 것도, "er"를 "-화"로, "eig"를 "고유한"으로 보신 의도는 충분히 동의가 되고, 실제로 파르비스 에마드(Parvis Emad)와 케네스 메일리(Kenneth Maly)의 영어본에서도 저 단어를 "enowning"이라는 희안한 신조어로 번역하고 있어서 한국어 번역본의 의역은 훨씬 자연스러운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사건"이나 "존재 사건" 정도의 일상적 용어로도 충분히 의미가 통하지 않나 합니다. 몇 가지 제가 찾아낸 것들을 더 적자면,
Nicht mehr handelt es sich darum, »über« etwas zu handeln und ein Gegenständliches darzustellen, sondern dem Er-eignis übereignet zu werden, was einem Wesenswandel des Menschen aus dem »vernünftigen Tier« (animal rationale) in das Da-sein gleichkommt.
어떤 것에 '대해' 논의하며 대상적인 것을 현시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생생한-고유화에게 내맡겨져 고유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적 동물'로부터 현-존재에로의 인간의 본질적 변이에 필적한다. (25-26쪽)
"übereignen"이 '넘겨주다'라는 의미인데, 한국어 번역본은 이 단어에 있는 "eignen"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맡겨져 고유화하다"라고 의역하였네요. 그밖에도, 본래 텍스트는 한 문장인데, 번역본은 세 문장으로 나누기도 하였고, "이것은 더 이상 …이 아니다."라는 본래 문장 구조도 한국어에 맞춰서 "…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수정하였네요.
Für dieses Denken muß die klarste und seine Einzigkeit erst erschließende Ehrfurcht vor dem ersten Anfang zusammengehen mit der Rücksichtslosigkeit der Abkehr eines anderen Fragens und Sagens.
이러한 사유를 위해 제1시원 앞에서의 가장 명확한 외경심은, 즉 제1시원의 유일성을 비로소 개시하는 외경심은 제1시원으로부터 다른 물음행위와 말함을 향해 돌아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전향과 동행해야 한다. (29쪽)
이 부분은 의역이 많이 되어 있지만, 상당히 좋은 의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구조대로 직역하면 "외경심(Ehrfurcht)"이라는 명사에 수식어가 길게 붙어서, "가장 명확하고, 그것의 유일성을 처음 개시하는, 제1시원에 대한 외경심"이라고 번역되어야겠죠. 또 "der Rücksichtslosigkeit der Abkehr eines anderen Fragens und Sagens"라는 부분도, "다른 물음과 말함이 지닌 전향의 가혹함" 정도로 번역되어야 할 거고요.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한국어 문장 구조도 자연스럽지 않을 뿐더러,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겠죠. 이선일 선생님의 한국어 번역본처럼 문장을 의역하여서, '존재 사유란 형이상학이라는 제1시원으로부터 돌아서서 다른 물음과 말함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전향하는 행위'라고 해야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고 봅니다.
Die Geschichtlichkeit hier begriffen als eine Wahrheit, lichtende Verbergung des Seins als solchen. Das anfängliche Denken als geschichtliches, d. h. in der sich fügenden Verfügung Geschichte mit gründendes.
여기에서 역사성은 존재 그 자체의 하나의 진리로 즉 존재 그 자체의 밝히는 은폐로 파악된다. 시원적 사유는 역사적 사유로 실행된다. 즉 시원적 사유는 그 자신을 [존재 그 자체의 밝히는 은폐에] 이어가는 순응함을 통해 역사를 더불어 근거짓는 사유다. (105쪽)
이 부분은 명사구인데, 동사를 추가하여서 문장으로 의역하였네요. 완전히 직역한다면, " …으로 파악된 역사성. …으로서의 시원적 사유"처럼, "역사성"과 "사유"라는 명사에 아주 긴 수식어가 달리게 됩니다. 영어 번역에서는 파르비스 에마드와 케네스 메일리가 이선일 선생님처럼 문장으로 의역하였고, 리처드 로이체비치(Richard Rojcewicz)와 다니엘라 발레가-뉴(Daniela Vallega-Neu)가 독일어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직역하였네요. 개인적으로, 명사구로 번역하든지 문장으로 번역하든지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한국어 번역이 약간 아쉽기는 합니다. "in der sich fügenden Verfügung Geschichte mit gründendes"라는 부분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요. 사실, 원문으로도 좀 모호한 의미이긴 합니다만, 대략 '자신을 스스로 역사에 참여시키면서 역사를 함께 정초하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보고 번역하라고 해도 "Verfügung"를 어떻게 번역해야할 지 잘 모르겠네요.
번역본에 대해 길게 쓴 건, 번역을 비평하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제가 논문에 인용하다 보니 이선일 선생님의 다른 번역에 비해 의역이 좀 더 많은 점이 눈에 띄어서였습니다. 제 독일어는 완전 초급이라, 번역본을 비평할 정도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종종 번역본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의역의 경우 이런저런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올려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