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출현을 예언한 리처드 로티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올리고 있는 로티와 그 옆의 거대한 스트롱맨 트럼프

존 카푸토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에 트럼프와 로티에 대한 일화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번역자이신 이윤일 교수님께서 SNS에 올리셔서, 저도 다시 책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정말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네요.

로티는 특히 몰락하는 미국의 노동 운동에 우려를 표명했던,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미국 자유주의자이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2주 후에, 1998년 책에서 표명했던 로티의 말이 인터넷을 강타한다. 그 책에서 로티는, 노동 계급과 너무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에만 집착하는 좌파 지성인들 간의 점점 벌어지는 틈에 대해 불평한다. 그리고 그는, 포스트모던 교수들이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꼬집는 데 신물이 난 홀대받은 육체노동자들이 선거로 선출하게 될, 그래서 과거 50년 동안 좌파가 개선해 놓은 온갖 것을 원 상태로 돌려놓을, 우파 ‘독재자’의 당선—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예언한다. 그 말은 입소문을(went viral) 탔고, 결국 그날 저녁에 책이 동이 나고 말았다.

존 카푸토, 『포스트모던 해석학』, 이윤일 옮김, 도서출판 b, 2020, 185쪽.

그런데 카푸토가 인용한 로티의 본래 글 Achieving Our Country에서 해당 구절을 찾아보니,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네요.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Many writers on socioeconomic policy have warned that the old industrialized democracies are heading into a Weimar-like period , one in which populist movements are likely to overturn constitutional governments. Edward Luttwak, for example, has suggested that fascism may be the American future. The point of his book The Endangered American Dream is that members of labor unions, and unorganized unskilled workers, will sooner or later realize that their government is not even trying to prevent wages from sinking or to prevent jobs from being exported. Around the same time, they will realize that suburban white-collar workers—themselves desperately afraid of being downsized—are not going to let themselves be taxed to provide social benefits for anyone else.

At that point, something will crack. The nonsuburban electorate will decide that the system has failed and start looking around for a strongman to vote for—someone willing to assure them that, once he is elected, the smug bureaucrats, tricky lawyers, overpaid bond salesmen, and postmodernist prof es so rs will no longer be calling the shots. A scenario like that of Sinclair Lewis' novel It Can 't Happen Here may then be played out. For once such a strongman takes office, nobody can predict what will happen. In I932, most of the predictions made about what would happen if Hindenburg named Hitler chancellor were wildly overoptimistic.

One thing that is very likely to happen is that the gains made in the past forty years by black and brown Americans, and by homosexuals, will be wiped out. Jocular contempt for women will come back into fashion. The words "nigger" and "kike" will once again be heard in the workplace. All the sadism which the academic Left has tried to make unacceptable to its students will come flooding back. All the resentment which badly educated Americans feel about having their manners dictated to them by college graduates will find an outlet.

사회경제 정책에 관해 글을 써온 많은 작가들은, 오래된 산업화된 민주국가들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유사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 운동이 헌정 정부를 뒤엎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해 왔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루트왁은 파시즘이 미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위협받는 아메리칸 드림』의 요지는 노동조합원들과 조직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정부가 임금 하락을 막거나 일자리의 해외 이전을 저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교외에 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자신들 역시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임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무너질 것이다. 비(非)교외 유권자들은 체제가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자신들이 투표할 강력한 지도자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즉, 자신이 당선되면 잘난 체하는 관료들, 교묘한 변호사들, 과도한 보수를 받는 채권 중개인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교수들이 더 이상 권력을 쥐지 못하게 하겠다고 장담하는 인물을 말이다. 그러한 상황은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여기서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에서 묘사된 시나리오처럼 전개될 수도 있다. 일단 그런 강력한 지도자가 권력을 잡으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1932년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할 경우에 대해 제기되었던 대부분의 예측은 터무니없이 낙관적이었다.

매우 일어날 가능성이 큰 한 가지는, 지난 40년 동안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이룩한 성과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농담 섞인 경멸이 다시 유행하게 될 것이다. “nigger”나 “kike”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직장에서 들리게 될 것이다. 학계의 좌파가 학생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치려 했던 모든 가학성이 다시 넘쳐나게 될 것이다. 대학 졸업자들에게 예절을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교육 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의 모든 분노 역시 분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Richard Rorty, Achieving Our Count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pp. 89-90 ChatGPT 번역.

다만, 교외의 중산층 유권자들과 비교외의 비숙련 노동자 계급 유권자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벌어지면서, 결국 비교외 유권자들이 '강력한 지도자(strongman)'를 원하게 될 것이고, 그 지도자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nigger"나 "kike"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직장에서 들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트럼프의 출현과 닮아 있긴 하네요. 실제로,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이런 관점에서 로티의 책을 인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고요.

*흥미롭게도, 카푸토 본인은 트럼프의 출현을 (더 나아가, 오늘날 미국의 혐오 문제를) '종교'의 문제와 연결짓네요. 한편에서는 종교가 완전히 폭력과 반지성과 미신에 빠져 가는 현상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성인들이 종교를 완전히 묵살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극단의 상황들이 '양극화'를 만들면서 종교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네요. 카푸토가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가 위에서 제시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비교외 유권자들에게는 종교가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고, 교외 유권자들에게는 종교가 무시의 대상이다 보니, 그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이 단적으로 종교 문제에서 터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한쪽은 더더욱 극단적으로 폭력과 반지성과 미신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를 옹호하려 하고, 다른 쪽은 더더욱 극단적으로 종교를 묵살하려 한다는 것으로 읽히네요.

철학자로서 나의 특별한 관심, 나의 전문 학문 분야는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종교 상태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상태는—그것은 여러분이 어느 요일에 내게 묻는지에 달려 있다—유감스럽고 점점 더 부끄러워지는 상태이다. 한쪽에서는 폭력, 과학 부정, 원시적 미신이, 다른 한쪽에서는 지성인들의 코웃음 치는 묵살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에 크게 공헌했던 양극화가 있다. 주류 교회는 비어가고 있고,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온통 신의 이름으로 여성, 유대인, 동성애자와 이민자들을 향한 그들 선배의 편견에 질겁하고 있고, 교수단은 종교를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취급한다. 종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들고 있고, 또 자주 받아 마땅한 멸시를 받고 있다.

존 카푸토, 『포스트모던 해석학』, 이윤일 옮김, 도서출판 b, 2020,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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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의 Philosophy and Social Hope에 실린 Looking Back from the Year 2096도 같은 맥락으로 읽어볼만한 글인 것 같아요. Achieving Our Country와는 다르게 한국어 번역은 없다는 게 아쉽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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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Achieving Our Country는 『미국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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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의 글도 물론 훌륭하지만, 역자이신 임옥희 교수님이 쓴 후기도 백미입니다. 로티에게 굉장히 비판적이시면서도 어쩔 수 없이 로티의 문제의식에 끌려가는 느낌이거든요.​​​​​​​​​​​​​​​​

"......상대주의적인 로티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주주의가 귀족주의보다 우월한 점은 없다. 민주적인 사회가 봉건 귀족 제도와 카스트 사회보다 합리적인 것도 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배타적인 개념이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은 시학과 철학의 갈등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플라톤 이래로 유토피아론자들이 말하는 정의는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인 비전이 되었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전체주의로 나아갈 확률이 있듯이, 자유주의 사회는 능력과 돈에 의한 새로운 카스트를 정당화시킬 위험이 항존한다. 이처럼 경제적인 사회 정의와 자본주의의 개인적인 자유 개념은 연대와 화합보다는 갈등과 긴장을 초래한 경우가 더욱 많다. 자유는 그 안에 반자유를 포함할 자유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포함과 배제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배제와 포함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어떤 계급에게는 특권을 부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등 개념에 위배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한 부의 분배는 자본 축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개인의 자본 축적의 자유를 평등이란 이름으로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자유 아닌가. 그 결과 재벌의 극단적인 사회적 타자로서 홈리스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이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하필 민주주의인가. 그것도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에 토대한 민주주의 사회란 말인가. 로티 자신의 논지에 비춰보더라도 이런 주장은 상호 모순적이지 않은가.

로티의 대답은 이렇다. 어떤 정치 제도가 다른 것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없다.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다를 뿐이며, 한 사회가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방향을 지향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로티의 논리에 따르자면 혁명이 아니면 개량주의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내에서 개혁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실용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주제넘게 지구촌적인 문제를 논하기 전에 자민족 문화중심적인 입장에 서서 자기 나라의 문제부터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지금보다 더 자부심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로티는 언어의 우연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그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언어의 순환고리 속에서 작동하는 미국의 언어가 세계의 군소 언어를 지배하고 사멸시키는 제국주의 언어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식 언어를 영어로 하자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언어의 우연성이 어떻게 현실적인 설득력과 위안을 주는가. 로티가 미국 내의 가난한 노동자를 거론하지만 제3세계의 가난한 노동자의 열악한 임금 잉여분이 어처구니없게도 금융 자본주의자들의 탐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왜 애써 외면하는가. 이것은 로티의 자민족 문화중심주의가 지닌 이기심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닌가.

미국 좌파에는 프레드릭 제임슨이나 월러스틴과 같은 국제적인 지식인만 있는 줄 알았던 역자로서는 로티의 글을 대하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그 다음에 이게 미국 대다수 지식인들의 맨얼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질서를 철저히 인정하는 논리를 들이밀면서 개혁주의 좌파라고 주장하는 로티의 사회적인 무책임에 분개하면서도 그의 지적인 솔직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지적인 솔직함과의 대결이 한국 좌파들의 자기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한국 좌파들의 현실 대응력을 다시 보강하는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혁명이 아닌 모든 것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 자체가 양반 문화의 명분 싸움에서 비롯된 보수적인 전통은 아니었던가를 새삼 반성하면서,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조그마한 진보를 희망할 수는 없는가. 거대 서사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음으로 해서 오히려 너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지치지 않고 영구혁명을 꿈꿀 수 있는 자기 쇄신의 노력과 연결될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력이 로티의 글과 대면하는 과정에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급격한 현실의 변화인 혁명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를 새삼 반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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