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올리고 있는 로티와 그 옆의 거대한 스트롱맨 트럼프
존 카푸토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에 트럼프와 로티에 대한 일화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번역자이신 이윤일 교수님께서 SNS에 올리셔서, 저도 다시 책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정말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네요.
로티는 특히 몰락하는 미국의 노동 운동에 우려를 표명했던,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미국 자유주의자이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2주 후에, 1998년 책에서 표명했던 로티의 말이 인터넷을 강타한다. 그 책에서 로티는, 노동 계급과 너무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에만 집착하는 좌파 지성인들 간의 점점 벌어지는 틈에 대해 불평한다. 그리고 그는, 포스트모던 교수들이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꼬집는 데 신물이 난 홀대받은 육체노동자들이 선거로 선출하게 될, 그래서 과거 50년 동안 좌파가 개선해 놓은 온갖 것을 원 상태로 돌려놓을, 우파 ‘독재자’의 당선—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예언한다. 그 말은 입소문을(went viral) 탔고, 결국 그날 저녁에 책이 동이 나고 말았다.
존 카푸토, 『포스트모던 해석학』, 이윤일 옮김, 도서출판 b, 2020, 185쪽.
그런데 카푸토가 인용한 로티의 본래 글 Achieving Our Country에서 해당 구절을 찾아보니,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네요.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Many writers on socioeconomic policy have warned that the old industrialized democracies are heading into a Weimar-like period , one in which populist movements are likely to overturn constitutional governments. Edward Luttwak, for example, has suggested that fascism may be the American future. The point of his book The Endangered American Dream is that members of labor unions, and unorganized unskilled workers, will sooner or later realize that their government is not even trying to prevent wages from sinking or to prevent jobs from being exported. Around the same time, they will realize that suburban white-collar workers—themselves desperately afraid of being downsized—are not going to let themselves be taxed to provide social benefits for anyone else.
At that point, something will crack. The nonsuburban electorate will decide that the system has failed and start looking around for a strongman to vote for—someone willing to assure them that, once he is elected, the smug bureaucrats, tricky lawyers, overpaid bond salesmen, and postmodernist prof es so rs will no longer be calling the shots. A scenario like that of Sinclair Lewis' novel It Can 't Happen Here may then be played out. For once such a strongman takes office, nobody can predict what will happen. In I932, most of the predictions made about what would happen if Hindenburg named Hitler chancellor were wildly overoptimistic.
One thing that is very likely to happen is that the gains made in the past forty years by black and brown Americans, and by homosexuals, will be wiped out. Jocular contempt for women will come back into fashion. The words "nigger" and "kike" will once again be heard in the workplace. All the sadism which the academic Left has tried to make unacceptable to its students will come flooding back. All the resentment which badly educated Americans feel about having their manners dictated to them by college graduates will find an outlet.
사회경제 정책에 관해 글을 써온 많은 작가들은, 오래된 산업화된 민주국가들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유사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 운동이 헌정 정부를 뒤엎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해 왔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루트왁은 파시즘이 미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위협받는 아메리칸 드림』의 요지는 노동조합원들과 조직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정부가 임금 하락을 막거나 일자리의 해외 이전을 저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교외에 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자신들 역시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임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무너질 것이다. 비(非)교외 유권자들은 체제가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자신들이 투표할 강력한 지도자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즉, 자신이 당선되면 잘난 체하는 관료들, 교묘한 변호사들, 과도한 보수를 받는 채권 중개인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교수들이 더 이상 권력을 쥐지 못하게 하겠다고 장담하는 인물을 말이다. 그러한 상황은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여기서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에서 묘사된 시나리오처럼 전개될 수도 있다. 일단 그런 강력한 지도자가 권력을 잡으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1932년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할 경우에 대해 제기되었던 대부분의 예측은 터무니없이 낙관적이었다.
매우 일어날 가능성이 큰 한 가지는, 지난 40년 동안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이룩한 성과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농담 섞인 경멸이 다시 유행하게 될 것이다. “nigger”나 “kike”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직장에서 들리게 될 것이다. 학계의 좌파가 학생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치려 했던 모든 가학성이 다시 넘쳐나게 될 것이다. 대학 졸업자들에게 예절을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교육 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의 모든 분노 역시 분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Richard Rorty, Achieving Our Count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pp. 89-90 ChatGPT 번역.
다만, 교외의 중산층 유권자들과 비교외의 비숙련 노동자 계급 유권자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벌어지면서, 결국 비교외 유권자들이 '강력한 지도자(strongman)'를 원하게 될 것이고, 그 지도자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nigger"나 "kike"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직장에서 들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트럼프의 출현과 닮아 있긴 하네요. 실제로,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이런 관점에서 로티의 책을 인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고요.
*흥미롭게도, 카푸토 본인은 트럼프의 출현을 (더 나아가, 오늘날 미국의 혐오 문제를) '종교'의 문제와 연결짓네요. 한편에서는 종교가 완전히 폭력과 반지성과 미신에 빠져 가는 현상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성인들이 종교를 완전히 묵살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극단의 상황들이 '양극화'를 만들면서 종교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네요. 카푸토가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가 위에서 제시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비교외 유권자들에게는 종교가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고, 교외 유권자들에게는 종교가 무시의 대상이다 보니, 그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이 단적으로 종교 문제에서 터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한쪽은 더더욱 극단적으로 폭력과 반지성과 미신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를 옹호하려 하고, 다른 쪽은 더더욱 극단적으로 종교를 묵살하려 한다는 것으로 읽히네요.
철학자로서 나의 특별한 관심, 나의 전문 학문 분야는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종교 상태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상태는—그것은 여러분이 어느 요일에 내게 묻는지에 달려 있다—유감스럽고 점점 더 부끄러워지는 상태이다. 한쪽에서는 폭력, 과학 부정, 원시적 미신이, 다른 한쪽에서는 지성인들의 코웃음 치는 묵살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에 크게 공헌했던 양극화가 있다. 주류 교회는 비어가고 있고,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온통 신의 이름으로 여성, 유대인, 동성애자와 이민자들을 향한 그들 선배의 편견에 질겁하고 있고, 교수단은 종교를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취급한다. 종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들고 있고, 또 자주 받아 마땅한 멸시를 받고 있다.
존 카푸토, 『포스트모던 해석학』, 이윤일 옮김, 도서출판 b, 2020, 26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