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성 관련 매우 소소한 아이디어

요즘 철학 글이 잘 안올라오는 것 같아서 소소한 생각 올려봅니다!

레퍼런스는 둘입니다:

  1. Davidson, D. (1971), “Agency,” in R. Binkley, R. Bronaugh, and A. Marras (eds.), Agent, Action, and Reason
  2. Frankfurt, H. G. (1978). The problem of action.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 15 (2), 157-162.

1.

프랭크퍼트는 표준이론에 반대한다. 행위에 관한 표준 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A bodily movement is an action iff it results from antecedents of a certain kind.

이상의 정의에서 "antecedents"는 보통 믿음과 욕구 쌍으로 제시된다. 좀 복잡한 얘기를 생략하고,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행위자가 어떤 믿음-욕구 쌍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행위자가 한 행동을 합리화함으로써 설명한다면, 그 행위는 의도적 행위이고, 그 경우 행위자성을 행위자에게 귀속할 수 있다.

프랭크퍼트의 표준 이론 비판의 핵심은 특정한 인과적 antecedents가 bodily movement/behavior를 행위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A bodily movement is an action, when it was performing under the guidance of the agent.

아쉽게도 프랭크퍼트는 explicit 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는 않은데, 어쨌든 핵심은 움직이는 사람/주체/행위자의 인도 아래에 있는 것이 행위라는 것이다.

2.

내가 보기에 프랭크퍼트는 행위자의 인도는 행위를 행위로 만드는 필요조건 정도로 밖에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1.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라는 것은 행위를 통한 목적 달성을 위해 조정 과정에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움직임을 통해 무언가를 달성하고 싶은데 다른 것이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면 나의 '조정'을 통해 방해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상쇄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인도'이다.

  2. 여기서 프랭크퍼트는 목표로 하는 결과를 위해 신체적 움직임/행동이 잘 이루어지는 방향이나 경로가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3. 그렇다면 행위자는 행동 이전에 어떤 목표를 갖고, 또 그를 달성하기 위한 좋은 경로도 아는 상황이다.

  4. 이는 곧 행위자가 어떤 것에 대한 욕구와 자신의 행동이 욕구 충족을 위한 적절한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는 말이다.

  5. (4)는 딱 표준이론이 행위를 행위로 만들어주는 조건인 믿음-욕구 쌍을 논하고 있는 셈이다.

  6. 그래서 프랭크퍼트 또한 암묵적으로 믿음-욕구 쌍을 전제로 하며 인도를 거친 행동이 행위라고 말하는 셈이 된다.

  7. 또 다른 사례로, 프랭크퍼트의 정의에 따르면 행위는 다시 intentional action과 non-intentional action으로 나뉘고, 전자는 숙고나 자기의식이 동반된 것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숙고라는 것이 적어도 intentional action에 개입되는 것이라면, 적어도 행위 일반은 아니더라도 intentional action는 믿음-욕구 쌍을 전제로 하는 인도를 거친 행동이다.

  8. 그렇다면 프랭크퍼트는 그 자신의 의도와 달리 표준이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인도를 행위자성을 귀속할/행동을 행위로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으로 explicit 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3.

행위 이론을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을 겹쳐 봐도 좋을 것 같다.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을 행위자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아주 단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노동은 본디 인간이 자신의 행위자성을 발현하는 활동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소외된다.

  2. (산업)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동화된 포드 공장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3.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의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행위 주체성을 발현하지 못한다. 소외된다.

1번도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넘어가도록 하고, 2번에 집중하자.

분명 노동자들의 행동은 자신의 인도 아래에 있다. 예를 들어, 나사를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쪼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모종의 이유로 잘못 조여진다면 자신의 '인도' 아래에서 '조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프랭크퍼트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행위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직관적으로 봤을 때, 위의 예시의 노동자에 행위자성이 귀속될 수 있는지가 도대체 의문이다. (여기서의 직관은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에 찬동하는 사람의 직관이다.)

내가 보기에 노동자가 왜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도'나 '조정'을 통해 설명하기 힘들다. 차라리 표준 이론이 예시의 경우를 잘 설명한다.

쉽게 말해, 나사를 조이는 일에 대해 노동자는 desire/pro-attitude가 없다. 나사를 조이는 일과 관련해 노동자는 적절한 desire-belief 쌍을 갖지 않으니 나사를 조이는 일은 행위가 아니라 단순한 몸의 움직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1)에 따라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자는 노동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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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슨은 믿음-욕구 쌍이 적절한 방식으로 "야기"된 경우에 그것이 행위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프랭크퍼트의 비판은 어떤 사건이 행위이기 위해 그것을 수행한 행위자가 적절한 믿음-욕구 쌍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행위이기 위해 그것을 수행한 행위자의 유관한 믿음-욕구쌍으로부터 "야기"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프랭크퍼트의 인도 개념이, 어떤 사건이 행위이기 위해 그것을 수행한 행위자가 적절한 믿음-욕구 쌍을 가져야 함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포인트는 프랭크퍼트의 이론에 대한 유효한 공격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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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약이 정확합니다! 메모 수준으로 정리한 글이라 설명이 부실했네요. 그리고 사실 지적하신 바가 제 생각의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프랭크퍼트는 "When we act, our movements are purposive"라고 말하면서 "guidance"가 movement를 action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이라고 제시하죠. 그런데 guidance가 있기 위해서는 belief-desire pair가 필연적으로 전제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적대로 이로부터 "appropriate belief-desire pair cause a guidance, which makes our bodily movement as an action"가 도출될 수 있냐는 것이 선생님 지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저는 특히 숙고를 동반하는 action인 intentional action의 경우에, intentional action에 관여하는 guidance가 있기 위해서는 (프랭크퍼트도 언급하듯이) 숙고를 사전에 거쳐야 하는데, 행위에 대한 belief-desire pair를 cause로 갖지 않고서 숙고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의문이 계속 남네요.

아직은 단순히 직관 수준의 아이디어라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joy: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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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프랭크퍼트는, 설사 의도적으로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숙고의 과정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행위가 꼭 문제의 숙고의 과정에 의해 (적절한 방식으로) 야기될 필요는 없다고 답변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모든 숙고는 어떤 특정한 믿음-욕구 쌍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야기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프랭크퍼트의 포인트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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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두 논문을 지나가듯 읽어본 게 전부라 원문에 충실한 의견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만, 대략의 논의 구도에 대한 코멘트만 남겨보겠습니다.

첫째로, 프랭크퍼트의 표준이론 비판의 형식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표준이론의 주장을 거칠게 다음과 같이 둔다면,

A bodily movement is an action if and only if there is a pair of belief and desire that caused the bodily movement.

프랭크퍼트의 비판은 저 쌍조건문을 구성하는 조건문 중 하나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형식이어야 할 것입니다. guidance에 대한 주장으로 미루어볼 때, 제 생각엔 우변이 충분조건이 안 된다는 비판으로 보입니다.

(FR) There is a bodily movement which is caused by a pair of belief and desire but fails to be an action.

그리고 아마도 프랭크퍼트가 주장하는 건 더 나아가서 행위라는 사건이 특정한 유형의 인과적 원인을 갖는다는 게 행위를 행위로 만들어주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일 거라 추측해봅니다. Guidance라는 게 행위를 행위로 만들어주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면 필요조건이 되는 건 당연한 것일 테고, 적어도 그 점에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둘째로, 그럼 프랭크퍼트의 아이디어는 표준이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제 생각엔 표준이론을 어떻게 정식화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표준이론을 단순히 욕구와 그 욕구를 달성시키는 방법에 관한 믿음으로부터 야기된 것이 행위라고 한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적인 사례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라스는 길을 가다가 자판기가 보였다. 라스는 이 자판기를 발로 차면 부서질 것이라는 참인 믿음을 갖고 있다. 순간적으로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솟구쳤고 그로 인해 자판기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 욕구와 기존에 갖고 있던 믿음을 원인으로 하여 라스는 자판기를 발로 찼다.

위와 같이 충동적 욕구가 기존에 존재하던 믿음과 함께 행위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면, 그 움직임은 행위라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욕구가 진정으로 라스 자신의 것이 아닌 경우가 되겠지요. (아시겠지만, 프랭크퍼트는 이 문제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cf. "Freedom of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

만일 표준이론을 구성하는 믿음과 욕구의 특성에 관해 좀 더 복잡한 견해를 제시한다면, 그래서 이미 거기에 잘 숙고된, 혹은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guidance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은 이론이 제시될 수 있다면 둘 사이의 차이가 딱히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랭크퍼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저 guidance라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게 관건이 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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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고맙습니다. 당분간 표준이론에 대해서 계속 공부할 것 같은데, 동시에 인도에 관한 다른 글들도 좀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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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보고 있는 Ch. Korsgaard의 책 Self-Constitution 4장에 약간 관련된 얘기가 나오네요. 아마 코스가드의 다른 저작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올 겁니다. 저도 연구에 도움이 좀 될까 해서 관심 갖고 보는 주제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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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