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장하석,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장하석 교수님의 신간이 나왔네요. 김영사 SNS에 이 책에 대한 아주 매력적이고 자세한 소개가 있어서 여기도 가져와 봅니다.

“과학이 말하면, 그게 곧 진리다.”

우리는 어느새 이런 마음으로 과학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과학을 믿는다는 말이, 과학을 ‘반박 불가능한 권위’로 떠받드는 것처럼 바뀌기도 하고요.

그런데 장하석은 이 익숙한 태도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온도계의 철학》과 《물은 H2O인가?》로 과학철학의 최전선에서 영향력을 보여온 세계적인 학자.
이번 신간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은 그가 오랫동안 붙들어온 고민을 가장 단단한 형태로 꺼내놓은 책입니다.

이 책이 문제 삼는 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과학은 실재에 관한 궁극적 진리를 밝혀낸다.”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온 이 통념이, 사실은 현실의 과학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장하석은 과학을 ‘성역’으로 두지 않습니다.
과학은 정답을 내려주는 교리가 아니라, 실험하고 수정하고 논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이 흔들릴 때 필요한 건 “더 큰 확신”이 아니라, “더 성숙한 태도”라고요.
반대하는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 권위를 빌려 억압을 정당화하고 싶은 충동을 과학에서조차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실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여기서 이 책이 정말 매력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장하석은 ‘진리’와 ‘실재’를 버리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되찾자고 말합니다.
다만, 우리의 삶과 실천에서 실제로 쓸 수 있게—현실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하자고요.

지식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줄 아는 능력이고

실재는 “저 멀리 있는 절대적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의지하고 작동시키며 검증해온 것이며

진리는 “실재와의 신비한 대응”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판단이 목표를 향해 정합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실재론’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재주의라고.
믿음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앎을 위해 우리가 가진 인식의 도구와 실천을 계속 개선하자는 태도라고요.

솔직히,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이런 책은 더 필요해졌습니다.

정보는 넘치고, 사람들은 같은 사실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 진실에 갇혀서 서로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리기 쉬운 시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토론하고, 어디까지 합리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지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이 책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자는 책도 아니고,
과학을 불신하며 냉소하자는 책도 아닙니다.

과학을 현실에서 다시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진리’와 ‘실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다시 묻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과학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전체로 이어집니다.

“아는 자는 행동하는 자다.”
지금 여기에서, 더 현실적으로 믿고 더 정확히 행동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여러분에게 꽤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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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거랑 관련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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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어본 장하석 교수님 책들은 주로 과학사에 대한 면밀한 연구에 근거해서 실용주의를 옹호하더라고요. 과학계의 실제 담론과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해 보면, 전통적 실재론 도식이 과학과 잘 맞지 않는다는 요지로요. 그래서 아마 올려주신 강의계획서와 직접적으로 내용이 연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해요.

그나저나, 저 강의계획서의 구성은 굉장히 특이하네요. 보통 '실용주의'라고 하면 듀이, 콰인, 로티, 퍼트남, 브랜덤 같은 인물들이 저한테는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저 강의계획서는 주로 분석 형이상학의 주요 텍스트들을 다루다가, 마지막 강의를 로티의 《철학과 자연의 거울》로 장식하니, 교수님이 어떤 전체 그림을 의도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사이더로 시작해서 로티로 끝나다니, 적어도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구성입니다. 사이더의 한계를 로티가 극복한다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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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먼 사이더와 데이빗 루이스의 실재론 도식에서 시작하고 다스굽타 본인의 실용주의 논문 (Undoing the Truth Fetish) 을 시작으로 실재론과 실용주의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I’ve come to think that these pragmatist theses are right after all, and indeed
that they follow from a normative claim which is widely accepted by contemporary truthers! My aim here is to chart out this normative path to pragmatism. (Undoing the Truth Fetish 2).

realism implies normative primitivism, the view that normativity is its own, sui
generis component of reality, Anyone who rejects primitive normativity, therefore, must
embrace anti-realism... what I’ve argued is that philosophers of these persuasions are already committed to anti-realism! This goes, of course, for any would-be truther who, like David Lewis, explicitly rejects primitive normativity—they too are already committed to anti-realism.(Undoing the Truth Fetish 11)

I will now argue that anti-realism leads to the pragmatist conceptions of inquiry, truth,
justification, and meaning we started with (Undoing the Truth Fetish 12)

장하석 교수님께서는 실재론의 한계에 주목하시면서 실용주의로 나아가신다면, 다스굽타는 실재론이 내는 결론을 이용해 반실재론적 실용주의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체적인 가닥은 비슷하다는 가설 정도는 세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실용주의에 처음으로 관심이 생깁니다. 다스굽타의 다른 철학적 주장과 실용주의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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