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을 고할 시간 (데이빗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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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의 마지막 칼럼이다. 고등학교와 대학 교과서에 실어도 될 정도로 문장이 훌륭하다(글이 많이 훌륭하지 않고도 문장은 많이 훌륭할 수 있다). 물론 정치경제비판을 중시하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고 깊이 뜯어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다. 브룩스가 추구하는 것은 포스트-자유주의적 자유주의 부정 직전에서 멈춘 자유주의, 즉 초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자유지상주의적이지 않은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제한도 어느 정도 함축하는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로 보인다. 현재, 이런 자유주의에 해당하는 체제는 현존하지 않는다. 북유럽 사민주의도 그런 체제는 아니다. 이런 자유주의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브룩스가 사회적으로 수립되기를 바라는 가치들은 그 중 일부가 제한될 때만 다른 일부가 실현될 수 있는 성격의 가치들이다. 즉 브룩스가 용인할 수 있는 것보다 자본주의가 더 많이 제한되어야 할 것이고 그 제한과 더불어 브룩스가 바라는 소위 '위대한 대화' 및 그와 관련된 가치들도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내게는 중국, 싱가포르식 포스트-자유주의 체제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물론 자유자본민주제 전통이 자리잡은 서구 나라들에서 그 대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이론적으로만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제거를 통한 자유주의의 급진화로서의 사회주의는 어디 있는가? 데이빗 브룩스 버전 자유주의보다도 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내 희망사항은 당분간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글쎄다..

그나저나 에드먼드 버크와 라인홀드 니버로부터의 인용문은, 이 글에서 처음 접한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멋지다. 후자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가장 추상적으로 말하면, 라인홀드 니버로부터의 그 인용문에서 얘기되고 있는 네 가지 구원들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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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전통에 대한 존중, 사람들 사이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조화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보수적 자유주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