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의 오성에 대한 의문

제가 시르베크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존 로크의 인식론에 대해 의문이 생겨 이렇게 글을 작성합니다.

시르베크는 로크의 인식론인 백지론에 대해 지식은 관념의 총체일 뿐이라는 환원주의보다, 인간의 정신이 이 관념들을 가공하여 지식을 만들어내고 그 지식은 경험들로부터 입증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 더 타당하며, 따라서 인간은 백지상태에서 경험들을 통해 관념을 얻고 이 관념들을 가공하여 지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저의 의문은 정신(아마도 오성)을 활용하여 데카르트에게 가한 비판에 대한 회의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데카르트는 자기성찰로 타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합리론을 전개하는데, 로크는 이에 대해 대응을 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 또한 자기성찰을 위한 오성은 인간의 인식능력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지위를 지녀야 성립이 가능한데, 이것은 로크 또한 공유하고 있는 전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자기반성에만 의존하여 관념에 대한 타당성을 입증하는 데 매우 취약한데, 로크는 그 자기반성에 경험이라는 입증도구를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고로 로크는 백지론이라는 가설을 세웠으나 그것은 경험을 통한 지식이 지녀야 할 타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데카르트의 자기성찰을 통한 합리론을 비판하려다 데카르트의 전제를 사용해버린 로크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인간의 오성에 대해 회의를 지니면 이게 또 회의주의로 빠지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저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에 그칠 뿐이지, 온전히 데카르트의 합리론을 비판하는 전제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혹여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나 부족한 게 있다면 지적해주실 수 있을까요? SEP를 통째로 번역해서 봐도 잘 모르겠네요... SEP에서는 로크가 언어와 당시의 자연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다고 서술이 되어 있는데, 꽤 난해해서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가 지닌 의문과도 크게 연관되어 있는 지를 판별하기도 어렵네요.

데카르트는 지식을 얻기 위해선 오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로크도 지식을 위해선 오성이 필요하다고 보며, 경험이라는 요건을 추가한 점에서만 다르다. 따라서 로크의 데카르트 비판은 그르다/부족하다.

라는 논증을 제시하신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른바 경험론-합리론 논쟁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집니다만, 대개 "경험론"은

지식을 얻기 위해선 오성이 필요하다

라는 명제와 충돌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론-합리론 간의 주된 논쟁점은 오성의 앎에 있어서의 필요성이 아닌 충분성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세한 것은 로크 저작을 자세히 봐야하겠습니다만,

이야말로 곧 경험론-합리론 논쟁의 핵심 쟁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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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선생님도 말씀하셨듯, '로크가 데카르트의 무엇을 비판하고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지하시다시피, 로크는 『인간 오성론』의 첫 번째 책에서 '본유 관념'을 전제하는 철학 이론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유 관념을 인정하는 철학자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본유 관념 개념은 이러합니다.

내 관념들 중 어떤 것은 본유적인 것으로 .... 한 사물이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이고,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이해는 순전히 내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연역되는 것으로 보인다. (『제 3성찰』)

데카르트의 이 말은

말씀해주신 바와 크게 다르지 않죠. 즉,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심적인 능력들로부터 유도해낼 수 있는 것이 본유 관념입니다.

이제 로크가 본유 관념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살펴볼게요.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성 안에 특정한 본유적 원리들, 어떤 원초적 개념들, 공통 개념(κοινὰὶ ἔννοιαι), 문자들이 인간의 정신 안에 도장 찍히듯 찍혀, 영혼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을 받고 그것을 세계 안으로 가져온다는 의견이 정립되어 있다. (『인간 오성론』 Ⅰ.ⅱ.1)

로크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한 인간이 태어날 때 특정한 지식을 정신 안에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로크는 이를 어떻게 비판하려 하는 걸까요?

내가 만약 인간은 어떻게 본유적인 인상(impression)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본성적 능력(faculty)만을 사용해 그들이 가진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그런 기원적인 개념이나 원리 없이도 확실성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일 수 있다면, 편견 없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인간 안에 본유적 관념이 있다는] 가정의 거짓됨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인간 오성론』 Ⅰ.ⅱ.1)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 단락에서 드러나는 로크의 목표가 달성된다면 그가 도달하는 결론은 3성찰에서 데카르트가 전제한 본유 관념에서부터 비롯되는 결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즉, 로크가 인간이 가진 어떤 본성적인 정신적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면, 이는 데카르트의 전제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데카르트의 글 중 하나인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았을 때 더욱 명확해집니다.

나는 정신이 그 자신의 사유하는 능력과 구분되는 무엇으로서의 본유 관념을 요구한다고 말하거나 그런 관점을 가진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고 내 의지에 의해 규정되지도 않았으며 단지 내 안의 사유하는 역량으로부터 온 특정한 사유들이 있음을 관찰했을 뿐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고로,

말씀해주신 이 말은, 만약 로크가 정말로 데카르트의 본유 관념 이론을 비판하려 한 것이 맞다면(일단 로크의 본유 관념 비판 안에는 데카르트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데카르트가 본유 관념에 대해 정말로 저렇게만 생각했냐는 것이죠.

다시, 나에게 지고하고, 영원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전지하고, 전능하고, 그와 떨어져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창조한 신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그 관념은 유한한 실체들을 표상하는 관념들보다 더 많은 표상적 실재성을 가지는 듯 보인다 ..... 이론 모든 속성들은, 내가 더욱 그것들에 집중할수록 더욱 나 자신에게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낮은 것처럼 보인다 .... [고로] 유일하게 남은 대안은 신에 대한 관념이 나 자신에 대한 관념처럼 내 안에 본유적이라는 것이며, 당연히 신이 나를 창조함에 있어, 마치 기능공이 그 작품에 자신의 표식을 찍어, 그 작품과 표식이 서로 구분될 필요는 없듯, 내 안에 이 [신에 대한] 관념이 있도록 만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3성찰』)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에 대한 지식은 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나로부터 비롯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내 안에 "마치 장인이 작품에 표식을 찍듯" 신에 대한 관념을 새겨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본유 관념이라는 단어를 애매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만약 데카르트가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에서처럼 그것을 인간 정신이 타고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면 로크의 전제와 데카르트의 전제는 일치합니다.

하지만 그가 『제3성찰』의 후반부에서처럼 그러한 인간 정신의 사유 대상이 되는 무엇으로서 '본유 관념'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의 전제와 데카르트의 전제는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로크의 전제에 '실제로 이러저러한 관념들이 태어날 때 인간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말을 더하는 것이니까요.

아마 틀린 이야기가 좀 많을 것 같은데...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이렇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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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설명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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