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역시 철학과는 인기학과였습니다

“철학과를 희망하는 고3이 부쩍 늘었어요. 문과 학생들한테는 제가 직접 AI 를 이유로 철학과를 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천에서 고3 대상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장성현씨는 요즘 상담실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선생님, 철학과로 들어가서 공대 복수전공 할 수 있어요?” 장씨는 “실용 학문은 이제 다 AI가 대체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철학과에서는 논리와 사고의 틀, AI 관련 유용한 테크닉을 훈련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고 전했다.

실제 지표도 철학의 부활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5학년도 서울대 인문대학 수시모집에서 최고 경쟁률 학과는 철학과(17.89 대 1)였다. 자유전공학부(11.42 대 1)는 물론 자연과학대학 최고 경쟁률 학과인 생명과학부(13.85 대 1), 공과대학 최고 경쟁률 학과인 원자핵공학과(12.13 대 1)도 웃돌았다. 서울대 철학과 경쟁률은 2021학년도 12.5 대 1에서 2022학년도 14.2 대 1, 2023학년도 15.8 대 1, 2024학년도 16.7 대 1로 올라섰고 2025학년도 17.89 대 1을 기록했다. 4년 새 약 43% 상승한 수치다.

입시컨설팅 현장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체감된다고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철학과 인기 현상에 대해 “수시·정시 구조와 중복 합격, 추가 합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입시 특성상 특정 학과의 성적이나 경쟁률은 해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분명한 변화는 철학과를 바라보는 인식”이라고 했다. 과거처럼 고전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연결하고 논리와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학문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확산될수록 기술을 해석하고 가치로 전환하는 사고력이 중요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철학은 융합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며 “과거 심리학이 직업군과 결합하며 인식이 달라졌던 것처럼, 철학 역시 새로운 기술·산업과의 결합 속에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미래 직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느 학과가 좋은지 예측이 불가하다. 그래서 학과에 비해 오히려 대학이 중요해지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직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실을 이유로 꼽은 것이다. “나만 해도 과거엔 영어강사였고 지금은 학원 원장이지만, 미래에는 작가를 꿈꾼다. 복수전공·융합전공·이중전공이 더 활발해질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철학과에 입학해 기호논리를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전기전자 같은 공대 복수전공이 가능한지 등을 묻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일단 높은 대학”을 우선하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제 지인분은 이 기사에 대해 "서울대에 지원할 정도라면 소득분위 상위 20% 이내 가정일 확률이 높고, 그러면 철학과를 선택할 때 단점이 사라진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물론, 철학과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넉넉한 형편인 것은 아니고, 당장 저 자신도 매 달마다 생활비를 걱정하는 형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철학과를 나와서 대학원까지 10년을 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애초에 해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부모님 덕분이든지, 장학금 덕분이든지, 욕망을 줄여서든지, 허리띠를 졸라매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절대빈곤'의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일종의 '부르주아'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하는 부르주아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로서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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