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이 알려주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헤겔의 종교철학 강의록을 뒤적이다가, 헤겔의 1821년 종교철학 강의 원고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라는 항목으로 된 부분이 있어서, 그 중 앞 부분의 한 문단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거의 뭐, 헤겔이 예수를 어떤 인물로 생각했는지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또 다른, 전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은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곧 살아 있는 정신적 삶, 신적인 공동체이다. 가르침 자체는 그 내용의 보편적 형식이며, 즉 하나님의 나라, 최초의 영원한 이념 자체이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다. 하나님의 나라―혹은 정신―는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규정성으로, 나아가 현실성으로 운동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 즉 규정화의 과정은 예수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영원한 이념이란 바로 주체성의 범주가 단순한 사유와 구별되는 어떤 현실적인 것으로 즉각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개별적인 현실성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도록(자기 현실화 속에서) 만들며, 이렇게 현실화된 것으로서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 한 개인을 통해, 그 나라를 얻게 될 개인들과 연결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표상적 형식으로 제시된 보편적 이념이지만, 이 개인을 통해 현실성 속으로 들어가며, 정신의 역사, 곧 하나님의 나라의 구체적 내용은 이 신적인 현실성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신적인 한 개인의 가르침으로 표상되는 한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처음에는 오직 함축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는 정신에게 있어서는, 정신이 그 자신을 그러한 것으로 구성해 가는 과정 속에서만 신인(神人)이다. 신인은 이념의 전진을 표상하고 그 절대적 내용과 그 규정된 형식들의 현현이 되기 위해—이 절대적 내용이, 말하자면 내용에 대한 알레고리적이거나 상징적인 묘사로서 현현하도록 하기 위해—스스로를 현현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이 바로 가르침 자체이다.)

But here life and death have another, quite different relation to the teaching [of Christ]. Its content is the kingdom of God—not a universal essence but a living, spiritual life, a divine community. The teaching as such [is] the universal form of the content— the kingdom of God, the first, eternal idea itself, but in concrete terms. The kingdom of God—or spirit—is to move from the universal to determinacy, to pass over into actuality. This movement, the process of determining, takes place in the life of Jesus. The eternal idea is precisely what allows the category of subjectivity to appear immediately as something actual, distinct from mere thoughts. It is what makes the distinct actuality come to itself ([in its] actualization), and only as thus actualized is it the kingdom of God.) This kingdom of God is linked with individuals (who are supposed to attain to the kingdom) through that one individual. The kingdom is the universal idea still presented in representational form; it enters into actuality through this individual, and the history of spirit, the concrete content of the kingdom of God, has to portray itself in this divine actuality." (And since the kingdom of God is represented to us as the teaching of a divine individual, the divinity of Christ is at first only implicit. He is the God-man for spirit only as the process of spirit constitutes itself as such. The God-man has to manifest himself in order that he may represent the progress of the idea and be the manifestation of its absolute content, its determinate forms—in order that this absolute content may be manifest, as it were an allegorical or symbolic portrayal of the content— [such is this] teaching as such.)

G. W. F. Hegel,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Religion, R.F. Brown, P.C. Hodgson, and J.M. Stewart (trans.), Peter C. Hodgson (ed.), Oxford: Clarendon Press, 2007, p. 123, ChatGPT 번역 후 인용자 수정.

저는 헤겔 전공자도 아니고, 헤겔 종교철학도 그다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종종 헤겔의 글들을 살펴보다 보면 헤겔은 '철학자'보다도 '신학자'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헤겔의 철학 전반에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사상이나 성육신 사상의 모티프가 아주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헤겔의 종교철학 강의록을 읽다 보면 헤겔이 단순히 그리스도교에서 철학적 요소를 뽑아내어 '개념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교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당장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규정하는 헤겔의 논의는, 20세기 이후에서야 알베르트 슈바이처나 윌리엄 브레데 같은 신약성서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시된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상당 부분 성취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한 '목적의 왕국' 같은 도덕적 이상으로 두었던 임마누엘 칸트나 알브레히트 리츨과 달리, 헤겔은 정말로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이자 '정신'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도 당대의 다른 철학자들과는 매우 차별점을 보이고요. (이 점도 스캇 맥나이트 같은 신약성서학자들을 통해 최근에서야 성서적 근거가 뚜렷하게 제시되고 있는 논의인데, 헤겔이 신약성서학자들보다도 몇 백년이나 앞서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전까지의 주류 신학은 현실 교회의 불완전함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어떻게든 구분하려고 하였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중에서는 헤겔의 철학에 내재된 이러한 강력한 그리스도교적 모티프와 시대를 훨씬 앞선 신학적 통찰에 대해 아주 감명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령, 20세기 최고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헤겔을 이렇게 평가하죠.

"특히 주체로서의 절대자를 삼위일체 방식으로 설명하는 헤겔의 철학과 기독교 삼위일체론과의 관련성 때문에 그의 철학은 19세기 신학에서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도 삼위일체론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헤겔이 기독교 신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로이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제2권, 오희천 옮김, 종문화사, 2019, 200쪽.)

"관념론 철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헤겔처럼 기독교와 긍정적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제2권, 202쪽.)

"헤겔은 칸트보다 더 기독교의 정신에 가까웠다. 칸트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에 대해 헤겔보다 훨씬 더 회의적이었다."(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제2권, 202-203쪽.)

판넨베르크는 아주 철저한 성서신학적 지식과 현대철학적 논의를 결합시켜 독창적인 신학 체계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그가 헤겔에 대해 제시한 평가는 단순히 철학사의 거인들을 올려치기 위해 붙이는 미사여구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가 20세기의 지식들을 동원해서 신학적 최첨단의 형태로 내놓은 사유는 헤겔의 종교철학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과 매우 닮아 있죠. 오죽하면 무신론 철학자이자 현대의 유명한 헤겔주의자 중 한 명인 에른스트 블로흐조차도 판넨베르크의 신학이 헤겔의 주장을 빼다 박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20세기 후반기의 대표적 신학자 판넨베르크의 "보편사 신학"과 몰트만(J. Moltmann)의 "희망의 신학"도 헤겔의 역사철학에 크게 의존한다. 1970년 여름, "헤겔 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헤겔이 숙식하면서 공부했던 튀빙겐 슈티프트(Ev. Stift zu Tübingen, 신학생 양성기관)에서 열렸다. 철학자 블로흐는 이 대회에서 발표된 판넨베르크의 강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당신의 신학은 200년 전에 헤겔이 이미 다 말한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이에 대해 "헤겔이 이미 말한 것을 내가 다시 얘기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영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김균진, 『헤겔의 역사철학』, 새물결플러스 2020, 23쪽.

여하튼, 헤겔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이런 여러 가지 점들에서 그리스도교인인 저로서는 놀라게 되는 점이 많습니다. 헤겔은 완전히 그냥 그리스도교 신학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종교색이 짙은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런 글 속에도 그리스도교를 넘어서까지 적용될 수 있는 아주 엄청난 확장성을 지닌 사유들이 들어 있고, 심지어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보더라도 수백 년을 앞선 통찰들이 여전히 발견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그런 헤겔의 면모들을 좀 조망할 수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올 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이 짤을 보다가 웃겨서 헤겔을 뒤적인 것이었는데,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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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꿈에그리던 헤겔책 선물받고 너무 기뻐 울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공감이가네요:rofl::face_with_hand_over_mouth:

저도 일전에 삼위일체론 논문 쓰면서 관념론자 가운데 아니 근대 철학자 가운데 삼위일체론에 가장 긍정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명이 헤겔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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