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얘기되는 '재문명화'를 최대한 간략히 요약하면, "옛 문명의 지혜를 참고해서 자본주의를 제한하거나 폐지하고 민주주의적이기는 해도 자유주의적이지는 않은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 사회는 동시에 과학기술적 차원에서 아주 현대적인 사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들은 이 재문명화가 중국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서구도 중국을 본받아 나름의 재문명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서구 정치철학계에서는 자유주의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흐름이면서도 자유주의 비판이 만만찮게 진행되어 왔고 그 비판의 일부는 고중세 서구의 아이디어들을 참조하기 때문에 서구식 재문명화 프로젝트의 사상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오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재문명화 프로젝트는 많은 근본적 의문들을 야기한다.
-
전통적인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프로젝트와 무엇이 다른가? 전통적인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프로젝트는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일종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포함해 개개인이 최대한으로 자율적인 개인 주체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각종 사회적 제약(특히, 동료시민의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불평등)의 구조적 기반들을 제거하자는, 온전한 자유주의와 온전한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급진적 자유주의 프로젝트여서 재문명화 프로젝트의 반대편인가?
-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된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자체를 문제삼는 것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어떤 자유주의도 평화로운, 공동체적이기'도' 한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원자적/방종적/분열적 개인주의를 필연화하는가?
-
자유주의 자체는 문제 삼으면서도 민주주의는 추구한다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만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그 민주주의의 비자유주의적 포인트는 무엇인가? 중국의 정치체제가 그런 것처럼, 삼권이 분립되어 있지 않고 당이 하나이고 국민 개개인의 직접적이고 전체적인 정치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 글은 이 질문들을 다루지 않고 그래서 심층적이지 못하다. 다른 글들에서 이미 다루지 않았다면 후속 글들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필자들이 2와 3에 대해 '예스'라고 답한다면 거부감을 느낄 이들이 많을 것이다(3에 '예스'라고 답하지 않는다면, 또는 어떤 식으로든 자유[주의적]민주제 정치체제의 '근본적' 혁파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재문명화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없는 자유민주제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일 뿐이고, 그 경우 그 프로젝트의 무엇이 무려 '재문명화'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에는 유의해야 한다. 첫째, 자유주의자들이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 일부는 다른 주의자들도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들은 '성'과 관련해서 성다수자들과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은 자유주의자들만 할 수 있는 생각이 전혀 아니다. 둘째, 오늘날의 '서구' 자유자본민주제 사회에서도 개개인의 직접적이고 전체적인 정치적 참여는 실질적으로는 없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조차도 철저히 간접적이고 대의적이다.
이 글은 기본 논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주 재밌는 글이다. 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비판하는 부분들이 특히 재밌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못 보는 한심한 모습은 배움이 낮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만 흔한 것이 전혀 아니다. 소망적 사유,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선입견, 지식의 편식으로 인해 세계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식자들은 아주 많다. 그런 인간들에 비하면 완전 무식한 인간들이 오히려 사회에 덜 해롭다.
++++++++++
- 원문 출처
The Era of Re-Civilization?
By David Lloyd Dusenbury and Philip Pilkington
- 원문이 병기된 번역문
재문명화의시대.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