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후설: 현상학에 대한 리쾨르의 칸트주의적 비판

개인적으로, 리쾨르는 20세기 대륙철학자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친절한 태도로 글을 쓰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쾨르의 글들은 항상 철학자로서 리쾨르 자신만의 독창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글의 주제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까지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배울 내용이 많습니다. 리쾨르의 논문 "Kant and Husserl"도 바로 이러한 태도로 쓰인 글입니다. 리쾨르는 자신의 글에서 칸트와 후설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아주 꼼꼼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명확하게 칸트주의적 입장을 지지하면서 후설의 현상학이 지닌 관념론적이고 유아론적인 측면을 비판합니다.

리쾨르는 칸트의 비판 철학이 그 자체로는 현상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는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 본인이 칸트주의에 내재된 현상학적 측면을 스스로 지적하였다는 점, 그리고 칸트가 실제로 '현상학적 환원'에 대응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는 점 등을 인정합니다. 다만, 리쾨르에 따르면, (a) 칸트는 '현상의 영역' 자체에 주목하는 활동보다는 그 영역의 '한계'를 규정하는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b) 칸트의 탐구는 현상의 영역을 '기술'하는 방식보다는 수학과 물리학 같은 지식의 체계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칸트의 비판 철학과 후설의 현상학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로 인해 칸트주의는 후설의 현상학이 지닌 관념론적이고 유아론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리쾨르의 논문에서 제시되는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후설은 모든 종류의 존재와 의미를 '현상의 영역'으로 환원시켜버렸고, 그래서 그는 초월론적 주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현상의 영역'을 결코 넘어설 수 없지만, 칸트는 바로 그 '현상의 영역'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즉, 후설은 초월론적 주체가 의미부여를 통해 구성한 세계만을 존재하는 모든 것과 유의미한 모든 것의 총체라고 자명하게 전제하였던 것과 달리, 칸트는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초월론적 주체의 손이 닿지 않는 그 바깥의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리쾨르가 칸트의 '사물 자체(thing-in-itself)' 개념을 현대 대륙철학의 '타자(the Other)' 개념으로 독해하는 부분에서 아주 독창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는 현상의 영역 바깥에서 그 영역을 제한하는 '사물 자체'의 존재가 강조되듯이, 현대 대륙철학에서는 주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질서 바깥으로부터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타자'의 침입이 강조됩니다. '주체'가 대상들에게 부여한 의미나 '주체'에게 종속된 존재가 세계의 전부인 것이 아니라, 주체를 무너뜨리고, 좌절시키고, 굴복시키는 사건으로서의 '타자'가 언제든지 우리의 세계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 대륙철학에서 (레비나스나 데리다 등에 의해) 제시되는 강조점입니다. 리쾨르는 칸트의 '사물 자체'를 현대 대륙철학의 '타자' 개념과 엮으면서, 칸트를 바로 타자 철학의 선구자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죠. 논문의 마지막 부분은 '칸트'와 '후설', '사물 자체'와 '타자', '비판 철학'과 '현상학'이라는 주제에 대한 리쾨르의 입장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Has not Kant shown in this way the limits not only of the claims of the phenomenon but also the limits of phenomenology itself? I can “see” or “sense” the appearing of things, persons, values. But the absolute existence of the Other, the model of all existences cannot be sensed. It is announced as alien to my subjective life by the very appearance of the Other in his behavior, his expression, his language, and his work. But this appearance of the Other does not suffice to announce it as a being-in-itself. His being must be posited practically as that which limits the intention of my sympathy to reduce the person to his desirable quality, and as that which founds his appearance itself.

The merit of phenomenology is to have elevated the investigation of the appearing to the dignity of a science by the “reduction.” But the merit of Kantianism is to have been able to coordinate the investigation of the appearing with the limiting function of the in-itself and with the practical determination of the in-itself as freedom and as the totality of persons.

Husserl did phenomenology, but Kant limited and founded it.

P. Ricoeur, "Kant and Husserl", Husserl: An Analysis of His Phenomenology,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7, pp. 200-201.

이러한 리쾨르의 독해는 현대 대륙철학이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 주로 어떠한 논점에 주목하는지를 아주 집약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 대륙철학은 칸트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이나 '이성'의 질서를 의문시할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인 층위에 대해 최초로 밝힌 인물이라고 독해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가령, 상상력의 도식 작용에 대한 칸트의 논의로부터 '이론적' 층위에 대한 '선이론적' 층위의 우선성을 읽어내려 하는 하이데거라든가, 숭고에 대한 칸트의 분석에서 모든 종류의 개념적 형식을 깨부수는 비표상적 경험을 읽어내려 하는 리오타르라든가, 정언명령에 대한 칸트의 태도에서 대타자의 주이상스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읽어내려 하는 라캉 등이 모두 비슷한 계열에서 칸트를 해석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현상학'은 20세기 초중반부를 지배한 철학적 사조였으니, 리쾨르의 주장대로 칸트의 비판 철학이 정말로 현상학을 극복하는 사유로서 독해될 수 있다면, 칸트의 비판 철학은 1960년대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여러 가지 급진적 철학 사조들과도 친화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물 자체'를 옹호하는 리쾨르의 입장에 철학적으로 그다지 동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우리 자신의 세계를 갱신시키는 사건이 결코 '사물 자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의 '세계' 혹은 '세계관'이 일종의 믿음들의 체계라고 한다면, (데이비슨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믿음은 단순히 다른 믿음을 통해서만 수정될 수 있을 뿐이거나, (맥도웰이 말하는 것처럼) 믿음을 수정하는 믿음 바깥의 경험조차도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개념적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개념의 영역 저편에 놓여 있는 사물 자체는 믿음의 체계를 무너뜨리기는 커녕, 믿음의 체계를 무너뜨릴 가능성 자체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리쾨르의 입장에 동의하든지 동의하지 않든지, 칸트와 후설에 대한 리쾨르의 독법에는 정말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쾨르 본인이 자부하는 것처럼, 그의 글은 "지난 20년 동안 칸트에게 쏟아진 주요한 작업물들에 대한 연구"와 "후설의 출판된 작업물과 출판되지 않은 작업물들에 대한 철저한 독해"를 바탕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리쾨르의 논문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칸트의 비판 철학과 후설의 현상학이 제시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또한 그의 논문이 제시하는 구도는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 대륙철학의 중심 주제 중 하나인 '타자' 개념을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현대 대륙철학에서 이루어지는 칸트에 대한 독해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한 만큼, 현대 대륙철학과 칸트의 비판 철학 사이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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