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자크 데리다,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

자크 데리다의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이 최근에 번역되었네요. 저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소개를 보니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내용 같습니다. 2010년대 이후 신유물론 계열의 철학들이 이전 세대의 대륙철학을 인간중심주의라고 비판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정작 그 세대 철학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데리다도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고, 그의 선배 세대인 하이데거도 「휴머니즘 서간」과 같은 글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던 것은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인간중심주의‘가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사조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적어도, 저에게는 20세기 철학이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서구 전통적 사유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해체주의를 주창한 자크 데리다가 1997년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인 스리지(Cerisy)에서 “자서전적 동물”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날에 걸쳐 행한 강연을 토대로 한 것으로, 데리다 사후 2년 뒤인 2006년에 출간된 L’animal que donc je sui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강연 제목의 “자서전”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적 사유에 매몰되어 쓴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데리다의 표현이다. 그는 이런 자서전에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적 사고방식과 글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나온 온갖 사상과 글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인 데리다는 서구 사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 중심주의, 로고스 중심주의, 말 중심주의, 백인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등 완고하고 끈질긴 각종 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유동화함으로써 사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흔히 해체주의라 일컬어지는 그의 철학적 방법은 단순히 기존 사상에 대한 파괴적인 타격을 가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래되고 강고한 인간 중심적 사유 틀에 내재해 있는 근원적 불완전성과 폭력성을 드러냄으로써 개방적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은, 언어학의 층위에서 실천철학 또는 정치철학으로 옮겨 간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에도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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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임은제 저자의 『데리다의 동물 타자』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는데요, 매우 흥미로운 논의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데카르트-칸트-하이데거에로 이어지는 인간중심주의의 계보를 추적하고 그들의 철학적 결함을 낱낱이 밝혀 내고자 하는데요, 특히 하이데거의 '얼빠져 있음'에 관한 논의가 재미있었어요. 저는 이 책을 그래서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했는데, 나중에 싱어, 레건 등이 쓴 동물 윤리학 관련 책들과 함께 읽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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