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오늘까지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과 관련된 텍스트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글 곳곳에서 칸트를 인용하고 평가하다 보니, 칸트에 대한 그의 모든 글을 읽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적어도 '4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은 이번에 좀 꼼꼼하게 다 읽어보았네요. ('4부작'은 제가 개인적으로 붙여 본 이름일 뿐, 하이데거 연구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아닙니다.)
칸트에 대한 하이데거의 글로 가장 유명한 것은 1929년에 출판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그 책 전후로도 칸트에 관한 다른 주요한 글들을 여러 편 작성하였죠. 그 중에서도, 하이데거가 그 책의 제1판 서문과 제3판 서문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는 글들을 고려하면, 크게 다음의 네 가지가 칸트와 관련된 하이데거의 글들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1927-1928)
(2)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3) 『사물에 대한 물음: 초월적 원리들에 관한 칸트의 학설에 대하여』(1935-1936)
(4) 「칸트의 존재 테제」(1961)
애초에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는, 1927-1928년에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진행된 칸트 강의이자 1977년에야 출판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에 기초한 내용입니다. 또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이후로 하이데거는 자신의 칸트 해석이 지닌 "해석의 강압성" 및 "과오와 과실"을 수정하기 위해, 1935-1936년에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새로운 칸트 강의를 진행하였고 그 강의를 1962년에 『사물에 대한 물음』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죠. 1961년에도 킬(Kiel)에서 칸트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을 1962년에 「칸트의 존재 테제」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하였고요. (「칸트의 존재 테제」는 『이정표』라는 하이데거의 논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전기나 후기나 철두철미하게 칸트적 사유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초월론적 철학'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번에 칸트에 대한 하이데거의 글들을 찾아 읽은 것도 바로 이러한 주석적 관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는데, 역시 공부를 하면서 저의 입장에 더욱 확신이 섰습니다.
특별히, 종종 하이데거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것과 달리, (a) 저는 전기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과 후기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 사이에 근본적인 일치점이 있다고 봅니다. 후기 하이데거가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에 나타나는 칸트 해석을 스스로 포기하였다고 해서, 그의 칸트 해석이 아주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기나 후기나, 하이데거는 칸트를 자신의 존재론을 위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칸트와 자기 자신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거든요.
또한, (b) 저는 전기 하이데거가 칸트에게 좀 더 옹호적이었고 후기 하이데거는 칸트에게 좀 더 비판적이었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물에 대한 물음』이나 「칸트의 존재 테제」에서는 칸트의 비판철학이 근대 형이상학의 '수학적' 성격을 물려 받아 성립된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하고, 또 그런 '수학적' 성격에 대해 하이데거가 평소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글들에 칸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라서요. 두 글에 나타난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에서 하이데거와 칸트 사이의 차이를 좀 더 발견할 수 있는 측면이 없지야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이데거가 여전히 칸트를 '존재자의 존재'에 관해 본격적으로 물음을 던진 선구적 인물이라고 평가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언젠가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이라는 주제를 좀 더 잘 정리해서 논문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