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할 것인가

제가 "저는 부의 분배가 개인의 능력/노력/사회적 기여/도덕적 자격 (individual moral desert) 등에 의해 정해진다 내지는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적었을 때, 하이에크에 대한 입장을 나름 명확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도 하이에크는 fundamental한 리버태리언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자유방임적인 정책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재산권이 필연적으로 지켜져야 할 절대적 자연권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정책이 전반적인 사회질서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죠. Scanlon의 글에서도 지적하듯이 말입니다. 하이에크는 리버테리언 윤리학자로서 자유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사회이론가로서 자유의 기능이 사회질서의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됩니다. (다만, The Constitution of Liberty 1장이나 9장에서는 윤리학자처럼 자유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논의를 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Hamowy의 비판이나 그에 대한 하이에크의 응답을 볼 때, 그런 자유의 가치에 대한 윤리학적 논의가 그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하이에크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물어보신것이라면, 저는 하이에크에 대해 약간 ambivalent한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찬탄 및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어떤 점에서는 정말로 맘에 안 드는 그런 것입니다. (저와 비슷한 view를 찾자면, Brad DeLong의 view(1) view (2)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보다 좀 positive한 쪽 정도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DeLong보다는 하이에크가 The Constitution of Liberty나 Law, Legislation, and Liberty가 흥미롭고 탐구할 만한 내용이 많다고 생각은 합니다. 다만, 기본적으로는 그가 경제학이나 정치과학적인 내용을 얘기할 때는 통찰력 있는 부분도 많은데, 그가 윤리학이나 정책학 같은 규범적 논의를 할 때에는 의심의 눈길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의 DeLong도 그런 것 같고... 특히 자생적 질서 얘기할 때, 이게 규범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Bruce Caldwell이 이 문제에 대해 "I know it when I see it. "으로 논의하는 글을 봤는데, 솔직히 저한테는 설득력이 없었고, 그 다음 글에서는 하이에크가 기본적으로 윤리학자라기보다는 사회이론가구나 하는 인상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댓글에 있었던 앤더슨 글을 잘 읽어보시면, '운평등주의' 관련 논의도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앤더슨은 운평등주의에 비판적입니다.

원래 댓글은 제 견해에 대한 얘기보다는 '앤더슨 글이 있는데, 흥미로와서 소개해본다'는 의도로 쓴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하이에크에 대한 긴 댓글을 달게 됐네요. 예전에 하이에크에 대해 댓글을 쓴 적은 있었지만, (능력주의 리얼리즘? - GOYS 님의 게시물 #24) 그 때는 샌델의 논의가 중심이었기는 했습니다. 사실 그 때도 그 글에 달린 다른 댓글에서 앤더슨 글 링크 달기는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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