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자유의지는 없는것 같습니다2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선택한다”라는 말 자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하나는 결정론적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비결정론적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여러 선택지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어쨌든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서 행위 E를 하였다고 해보자.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행위 E를 하게 한 결정적 원인 혹은 요인은 없다. 왜냐하면 우연적인 확률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정적 원인이 없는 상태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선택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선택한다”는 일반적 의미에서 선택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선택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선택 즉 자기 결정을 의미한다.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둘 이상의 선택지가 아닌 하나의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떤 선택에 대해 그것이 자발적이었다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정론적 세계에서 비자발적 선택은 결정되어진 선택이 아니라 강제 혹은 강요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선택 능력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지의 진정한 의미는 진정으로 어떤 무엇을 “원했다”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원했다”는 심리적 술어가 선행하는 물리적 원인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자발적 선택에 대한 원인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나는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지금 행위자 원인론을 비판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 기초적인 이유를 제시하자면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했다”는 “두뇌의 신경세포가 그렇게 작동했다”는 것에 의존하고 또 다시 그것은 “내 몸의 원자가 그렇게 작동했다”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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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쓴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공부할 것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한번 써본것입니다.

글 자체가 조금 messy합니다. 첫번째 단락에만 코멘트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1.

인용구 첫번째 문장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개념이 이미 나온 상태고, 능력이란 새로운 개념을 소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첫번째 문장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능력에 관한 문장이지요. 그러니깐 첫번째 문장 뒤에 선택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문장을 넣는 것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선택한다"의 의미를 이해해보자고 하셨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서 논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선택할 경우의 수들을 먼저 고려해야한다" 라고 하시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그러면 단락의 플로우가 망가지겠지요.

결정론은 선택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결정돼있다고 해서 여러 선택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중요한 선택지가 있지만 못 고를 수도 있지요.

"따라서" 다음의 논리가 왜 따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결정돼있다면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가 작성자님이 말씀하고 자하는 바인데 논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결정돼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지요.

이는 다음 문장과 모순이 됩니다:

선택을 해서 행위 E를 했는데 선택할 수 없다니요. 그리고 선택의 결정적 원인이 없다뿐이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요.

다시 한 번 모순입니다.

선택의 일반적 의미가 무엇인가요? 초반부에서 다룬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1번에서 지적했다시피 다루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생각한다"라고 쓰셨기 때문에 입증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씀은 하실 수 있겠지만, 철학에서는 생각을 쓰는 것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Richard Dien Winfield 강의를 듣다보면 다음 말을 합니다: "Don't tell me what you think. I don't care about what you think." 철학 글은 생각이 아니라 논증을 하는 글입니다.

보시다시피 전체적으로 messy합니다. 철학적인 이유도 있고 라이팅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라이팅적인 이유들이 '비철학'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라이팅적인 문제를 고치다보면 또 철학적 문제를 직면하게 될 테니 라이팅적인 문제도 진지하게 고려해보길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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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전제에서 출발해 “자유롭게 선택하다“를 그냥 ”선택하다“와 구분하려고 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군요.

  2. 다음과 같이 주장한 맥락은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하나의 선택지만 존재해도 자발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선택지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3. 결정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가령 에이어는 결정론이 자유의지의 필요조건이라고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비슷한 맥락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4. 물론 결정적 원인이 없는 상황에서 선택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때의 선택은 자발적 선택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미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가령 두 가지의 원인적 요소가 있는데 둘 다 50%으로의 대등한 확률을 가지고 있다면 이 때는 자발적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억지스러운 주장인 것 같습니다.

핵심은 선택을 자발적 선택과 비자발적 선택으로 구분하고자 했고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둘 다 가능하지만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후자만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본래 의도였습니다. 나아가 자유의지는 단순히 자발적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도 hint했지만,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적인 이슈를 고치면서 글을 쓰시게 되면 철학적으로도 더 깊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깐 피드백을 들었으니 다시 써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철학은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학문입니다. 올리시기 전에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올리시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10시간이 걸릴 수도,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시고, 필요하다면 여러 번 다시 써보세요. 저도 주간과제들은 제출해서 피드백을 받기 전에 적어도 세번씩은 써서 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단 올리고 보자"라는 마인드보다는 "10시간이든 20시간이든 충분히 고민해서 올리자"라는 마인드를 갖고 올리시면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냥 본인 생각을 쓰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다음 댓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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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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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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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문적 작업은 근본적으로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학문적 동료들과의 대화입니다. 철학도 예외는 아닙니다. 철학의 경우, 이는 특히 과거 혹은 현재의 동료가 제시한 논증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바탕으로 한 찬성 혹은 반대를 표함으로써 이뤄지고는 합니다.

자유의지 문제에 대한 대중서로 상기한 대담집이 있고, 또 dbpia에 자유의지, 양립가능론 같은 키워드를 쳐도 한국어로 된 다양한 철학자들의 저작이 나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guri 님의 의향이 중요합니다만, 만약 희망하시는 바가 현역 업계인들과의 소통이라면 이처럼 "이미 나온 얘기들"을 바탕으로 비판적 글을 쓰시는게 더 유용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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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 주제가 한번 나왔지요. 저의 댓글은 비판을 많이 받아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비판에 위축되거나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귀한 질문과 공론장은 존중해 줘야겠지요.
철학적 질문은 논리적 접근을 요하지요. 동일한 문제가 수학에서도 일어나는데 수학에서는 제기한 질문을 답이 있는 질문으로 전환시키는 기법을 사용하지요. 두 질문이 동치라는 것을 보이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결정불가능한 문제가 있다고 알려줘 있고 이 질문은 증명이 되었습니다. 아마 영국 암호전문가 증명했지요. 저가 보기에 자유의지 문제는 결정불가능한 질문과 동치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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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주문했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한 근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라는 주제에 대해서 저도 비슷한 고찰을 한 적 있습니다.

저는 말씀하신바에서 마찬가지로, 보통 자유의지를 논할 때 결정론적 세계관과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나누어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부분에 동감하며, 다음과 같은 논리로 생각합니다.

  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리법칙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2. 즉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절대적 주체는 '물리법칙'이다
  3. 인간또한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결정론, 비결정론적 세계관은 국소적 의미의 자유의지를 논할때는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 발생한 사건의 근본원인이 '나' 라는 행위자로 특정될 수 있는가?

아니요, 모든 사건의 행위자는 오로지 물리법칙 뿐 입니다.

만약에 물리법칙이외의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는 행위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 사건의 원인이 '사과의 자유의지'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과가 떨어진 것은 그저, 물리법칙의 지배아래서 발생한 원인에 의한 결과인 셈이지요.

사람과 사과는 언뜻보면 달라보이지만,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두 존재는 모두 물리법칙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즉 한 인간이 태어났을때 부터 죽을때까지 움직인 궤적에 대한 행위자는 '자신'이 아닌 '물리법칙' 입니다.

그 물리법칙이 결정론인지, 비결정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언급한 물리법칙은, 현재까지 인간이 연구한 법칙을 일컫는 것이 아닌, 자연의 법칙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국소적 의미의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말이 무엇이냐?

진정한 의미의 행위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유의지를 다르게 정의한다면 존재가능합니다.

인간의 뇌 속 알고리즘을 만약, 하나의 함수로 기술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함수는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인간 그 자체인 함수입니다.

이 함수의 알고리즘을 만약에 자유의지시스템 이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국소적으로 허용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어도,

'행동하는 기계', '선택하는 기계' 라는 알고리즘은, 이 세계의 물리법칙과 상충하지 않고 존재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마치 자유처럼 느껴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진정한 의미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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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드립니다.

<국소적 의미의 자유의지는 이 세계의 물리법칙과 상충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한 대략적으로나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국소적 의미의 자유의지가 물리법칙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이 둘이 존재하는 층위는 서로 다르다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에이어같은 철학자들은 자유의지를 다르게 정의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자유의지의 반대는 필연이 아니라 강제에 있다고 말했죠. 그런데 더 나아가 필연은 즉 결정론적 법칙은 오히려 자유의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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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거동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렇게 새명체는 주변을 관측하여 해석하고 반응해야 하는데 정확한 관측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노력해도 오차는 발생하여 이는 궤도를 벗어나게 합니다. 정확한 측정이라는 활동은 결정불가능한 수학적 명제와 동치일 거라는 생각에서 한 주장입니디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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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대한 다양한 개념화 방식이 존재하고 그 중 어떤 것는 복수의 선택지 중에서의 선택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개념화하고 어떤 것은 (진정한 나 자신이 나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 나의 욕구로 인해 이루어진 선택으로 개념화하도 어떤 것은 충분한 정도의 합리성을 반영하는 선택으로 개념화합니다. 이 외에도 물론 여러가지가 있지만요. 각각의 방식으로 개념화된 선택이 결정론적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혹은 비결정론적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논쟁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자는 이 논쟁이 verbal한 논쟁이 아닌가, 즉 각자 선호하는 개념화 방식이 다른 것 뿐이지 자유의지에 대한 진정한 단 하나의 개념화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들 사이에 substantive한 논쟁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적으로 주로 문제시되어 왔던 질문은 ‘자유의지린 무엇인가’가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근거로 요구되는 자유의지란 무엇인가’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책임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적 판단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대체로 신뢰할만하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판단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방식으로 개념화된 자유의지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바로 철학적으로 주로 문제시 되어 왔던 그 질문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이 맞다면 반 인와겐이 비슷한 논점을 지적한 적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자유로운 선택은 다름아닌 내가 원해서 내린 선택이라는 고전 양립가능론이라 불리는 입장이 과연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답변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자유의지 논쟁에 참여하는 분석철학자들은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자. 20세기 중반에 치명적이라고 불리는 비판들이 여럿 제기되었는데 그 중 가장 straightforward한 비판은 마약중독자의 마약 사용이 본인의 거부할 수 없는 욕구로 인한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 자발적 선택이라는 용어는 자유의지와 행위철학의 맥락에서 이런 식으로 사용됩니다 - 도덕적 책임과 유관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아닌 것 같다는 직관에 근거한 비판입니다. 우리는 마약 사용을 향한 저항할 수 없는 욕구에 기반한 자발적 선택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거나 혹은 더 약하게 물어야 할 것 같다는 직관을 공유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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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자유의지 문제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오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구리님의 글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해당 주제에 관해서는,저도 구리님처럼 자유의지는 허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구리님처럼 선택에대한 논리적 생각? 보다는, 자유의 주체가 무엇인가를 위주로 생각한 적이 있어요.
대부분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영혼이라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저는 인식불가능, 증명 불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이 부분은 논할 가?치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요..
그래서 최소한 인식 기반을 표?방하는? 과학 같은 학문에서 인간은 유기물이니까요. 단일한 주체를 찾기가 힘들죠? 그런 의미에서
1.단일한 주체는 허상이다.
2.그렇다면 자유로운 선택은 허상이다.
3.자유의지 또한 허상이다.
라는 저 나름의 결론을 내린적이 있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자유의지는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동시에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의 생각은 어떤 의미에서 연관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정론을 믿는 생각에서부터 자유의지는 허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증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그런 논증을 세우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런 논증을 세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마음속으로 조용하게 믿고 있을 따름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외부적으로 표출하게 될 때 더욱 더 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자유의지가 허상이라는 설득력 있는 논증에 성공적이게 될 때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따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도덕입니다. 자유의지가 허상인데 어떻게 인간의 도덕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진짜 제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실재하든 허상이든 그것은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 자체에 신경을 안쓰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자유의지가 허상이라고 판명이 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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