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선택한다”라는 말 자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하나는 결정론적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비결정론적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여러 선택지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어쨌든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서 행위 E를 하였다고 해보자.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행위 E를 하게 한 결정적 원인 혹은 요인은 없다. 왜냐하면 우연적인 확률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정적 원인이 없는 상태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선택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선택한다”는 일반적 의미에서 선택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선택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선택 즉 자기 결정을 의미한다.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둘 이상의 선택지가 아닌 하나의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떤 선택에 대해 그것이 자발적이었다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정론적 세계에서 비자발적 선택은 결정되어진 선택이 아니라 강제 혹은 강요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선택 능력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지의 진정한 의미는 진정으로 어떤 무엇을 “원했다”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원했다”는 심리적 술어가 선행하는 물리적 원인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자발적 선택에 대한 원인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나는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지금 행위자 원인론을 비판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 기초적인 이유를 제시하자면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했다”는 “두뇌의 신경세포가 그렇게 작동했다”는 것에 의존하고 또 다시 그것은 “내 몸의 원자가 그렇게 작동했다”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