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역설 > 나는 존재한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의 역설>
존재의 상대성에 대한 고찰.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재한다.”
이 문장은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존재’라는 개념의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1. 존재의 당연함에 의문을 던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 말을 믿으며, 나와 세계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우리를 증거로 하여금 확실히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기존 철학이 묻지 않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존재한다는 건 무엇인가?”


  1. ‘세계’의 재정의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단순한 물리적 우주가 아닙니다.
세계란, 관측 가능한 모든 현실의 총합입니다.
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관측 가능해야 하며,
관측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 다세계 개념 – 독립된 현실들

이제 ‘다세계’ 개념을 도입합시다.

다세계란 상호 간 관측, 간섭, 인식이 절대 불가능한 현실들입니다.

두 세계 A, B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서로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조건 아래에서는,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세계 내부에서만 유효합니다.
즉,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그 세계 안에서 인식 가능해야 하며,
외부에서 존재해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취급을 받습니다.


  1. 존재하지 않는 햄버거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당신의 앞에 햄버거가 있다고 ‘누군가’ 주장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햄버거를 어떤 감각으로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과 물리적, 인식적, 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도구, 과학, 인식, 개념, 어떤 방식으로도 접근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란 ‘세계 내부의 상호작용 가능성’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햄버거가 다른 어딘가(예: B세계)에 실재한다고 해도,
A세계의 당신에게 그것은 **절대적 무(無)**입니다.


  1. 존재의 정의, 그리고 역설

이제 우리는 ‘존재’라는 말을 이렇게 다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존재란, 특정 세계 내에서 관측 가능하고 인식 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

이 정의에 따르면, 존재는 절대적 개념이 아닙니다.
관측자와 그가 속한 세계의 구조에 따라 성립하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명제는 참이 됩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세계에서는 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존재의 역설입니다.
존재는 언제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세계 밖에서는 부재합니다.


  1. 결론

우리는 존재를 막연한 실재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를 따라가면, ‘존재’는 곧 관측자-세계 시스템 내에서만 성립하는 관계적 상태일 뿐입니다.
즉,

관측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면 관측될 수 없다.

이 둘은 동치입니다.
따라서,

“존재”란 개념은, 어떤 절대적 실재가 아니라, 세계 내부에서 성립하는 구조적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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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변호하는 게 관건이겠네요.

'존재'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 후 이로부터 역설을 끌어낸다면, 이에 대한 일반적인 즉각적 반응은 존재와 관련하여 역설이 존재한다는 귀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문제의 비일상적인 정의를 거부하는 것이 될 겁니다. 따라서 관건은 '존재'에 대한 글쓴 분의 비일상적인 정의를 받아들일 motivation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여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그러한 motivation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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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철학 논의에서 핵심은 언제나 용어의 정의와 그것을 받아들일 동기가 충분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당연시되어 온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정말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특정한 인식의 맥락, 세계의 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의 개념은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즉 관찰자나 맥락에 무관하게 성립하는 어떤 실체를 상정합니다. 이를 ‘절대 존재’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런 식의 존재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A세계와 B세계가 있다고 상정한다면, ‘절대 존재’를 상정하기 위해선, A와 B 양쪽을 모두 포괄하고 관찰할 수 있는 제3의 초월적 관측자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장하는 다세계론의 틀에서는 그러한 제3의 관측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계’라는 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관점의 총체이며, 각 존재는 오직 자기 세계의 관점에만 절대적으로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즉, '절대적 관측'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절대 존재'라는 개념 또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위 말에서 제 3의 존재가 없어도 세계 A B 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3자가 없다먼, 우리가 속한 A세계를 제외한 B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 논의가 다세계론을 전제로 한다고 보겠지만, 사실 제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는 다세계론이 실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세계를 '상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어떠한 논리적 또는 실험적 방법으로도 입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식과 측정은 자기 세계 내부에서만 가능하며, 다른 세계에 대한 검증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를 절대화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논리적 장치에 불과합니다.

요컨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렇습니다. 존재란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세계에 귀속된 상대적 조건이라는 것이죠.
존재한다 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필요충분조건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개인적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존재'에 대한 문제의 비일상적인 정의를 거부하는 것이 될 겁니다. 이 말에 깊게 동의합니다. 그 정의를 그나마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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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음 스텝을 따라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박은 상대방이 한 논증에서 틀린 전제를 찾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전제가 왜 틀린지 주장을 하시는 게 좋지요.

관련 입문 자료는 van Inwagen 의 Metaphysics에 있는 "Objectivity"라는 챕터가 좋습니다. 조금 더 테크니컬한 자료는 반인와겐이 챕터 끝에 적어놓은 자료들 몇 개, 그리고:

Sider, Writing the Book of the World, Ch 1, Ch9이 직접적으로 다루며,

van Inwagen, Material Beings, pp. 98-114
Merricks, Persons and Objects, Ch 7 들이 간접적으로 다룹니다.

+) 덧붙이자면, A세계, B세계, 제3의 초월적 관측자, 다세계론, 절대존재 등과 같은 용어들이 조금 모호한 용어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깐 이런 자료들을 읽어가면서 표준화를 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 논문들에 반박을 할 때 본인의 다세계론, 초월적 관측자 등을 들이지 말고 반박하는 연습을 해보시는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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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입문한 입문자로서 도움이되는 조언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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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당연시되어 온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은 지적으로 즐거운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에 대한 논변이 부재할 경우 그 활동이 갖는 철학적 의의는 사소하게 보입니다. 글쓴 분께서 도입한 새로운 의미의 존재를 '존재*'라 부른다면, 글쓴 분의 보인 것은 존재의 역설이 아니라 존재*의 역설일 겁니다. 이때 이 논의가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논쟁은 verbal dispute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존재가 인식자에 대해 상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존재가 인식자에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때의 인식자는 보통 신과 같은 특수한 종류의 인식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을 그럴듯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아주 먼 과거에는 인식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분명 무엇인가가 존재했을 겁니다. 제가 우주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용암과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글쓴 분의 존재* 개념에 따르면 비생명체 인식자의 가능성을 배제할 경우 일견 생명체의 등장 이전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귀결이 따라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소수는 존재한다'는 어떠한 인식자의 존재 없이도 참인 것처럼 보이지만 글쓴 분의 존재* 개념에 따르면 가장 작은 소수는 인식자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존재한다는 귀결이 따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존재가 인식자에 상대적이라는 주장을 거부한다면 글쓴 분의 모든 추론이 시작부터 막힙니다. 예를 들어 댓글에서 절대 존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A와 B 양쪽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제3의 초월적 관찰자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존재가 인식자에 상대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하는 추론입니다. (더불어 제 3의 초월적 관찰자가 없다면 우리가 속한 A 세계를 제외한 B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는 제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글쓴 분께서 존재를 인식자에 상대적인 것으로 가정하지 않더라도 이 추론이 성립한다고 주장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종류의 추론이 글쓴 분의 새로운 존재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언급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논의를 위해 존재가 인식자 혹은 맥락에 상대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역설이 따라 나오는 것인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1) X가 존재한다.
(2) X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은 분명 동시에 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둘은 동시에 참일 수 있습니다.

(3) X는 A에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4) X는 B에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이 둘이 동시에 참인 것을 역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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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3) X는 A에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4) X는 B에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역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

제가 위에서 언급한 관측자는 지적 인식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관측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측자를 말한 겁니다.
흔히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관측자의 개념으로 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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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가 세상을 인지하여 가고 인류가 우주를 밝혀 온 과정을 보면 상호작용이라는 인식이 존재에 대한 확신을 주지요.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고 직접 관측되지도 않지만 암흑물질, 암흑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현상에 대한 상호작용상 혹은 이를 간접 관측으로도 볼 수 있을텐데 두 물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보지요.
인식이 존재의 실재를 증명하여 주지만 인식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과학자들은 하지 않지요. 아직은 모르지만 새로운 존재자 가능성은 나타날 수 있다고 보지요. 예를 들어 쿼크 입자보다 더 작은 입자의 출현 가능성도 있고요.
물론 상호작용을 정확히 계산하면 존재하지 않을 대상도 구분이 되지요. 이전에는 에테르 존재를 믿었지만 이제는 상호작용을 정확히 계산하여 에테르는 부재한다고 확신하지요.
철학이 존재론, 인식론 등 구분되어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흘러가지만 인식론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 자체의 모순은 적어도 과학진보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즉 존재 자체는 인식과 독립적으로 있다는 진리가 위협을 받는 적이 없다고 저는 봅니다.

글쓴 분이 염두에 두고계신 인식자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찰자라는 말이 도움이 크게 되는 것 같습니다. Many minds interpretation이 글쓴 분의 생각과 여러 중요한 점에서 다르지만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유사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가지 논점을 제기하고 싶은데 첫째, 양자역학에서 관찰, 관찰자 개념은 가장 불명료하고 문제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관찰자에 상대적인 존재 개념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존재 개념을 대치하려는 시도는, 설사 일상적 존재 개념의 대안을 찾아볼 동기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양자역학의 관찰자 개념과 같이 불명료하고 문제적인 개념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유망해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양자역학적 관찰자에 상대적인 존재 개념은, 설사 그것이 정합적이라 하더라도, 물리적인 존재 개념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학적 대상에 대해서도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글쓴 분의 대안적 존재 개념은 수학적 대상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각각을 물리적 존재, 수학적 존재라고 불러 봅시다. 이때 물리적 존재와 수학적 전재 모두를 포괄하는 존재 개념이 있거나 없을 겁니다. 만약 있다면 글쓴 분의 존재 개념은 불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을 존재 개념으로 간주해야지 글쓴 분의 존재 개념을 존재 개념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없다면, 글쓴 분의 존재 개념은 불완전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적 존재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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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흥미로운 논의군요. 실라부스 귀신은 실라부스나 하나 던져놓고 가겠습니다: https://philosophy.ucsd.edu/_files/courses/17spring/phil245sp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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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했습니다. 충분히 일리있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위와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글에서 언급한 존재개념을 전체로 일반화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1. 두 요소 A B 가 존재한다면 서로 상호작옹이 가능하다.
  2. 위 명제의 역은 참이다.
    즉 그 순서가 상관이 없는것입니다.
    분명.두 요소가 존재한다면 두 요소는 서로 논리적, 물리적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인식이 가능해야 합니다.
    즉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이지요.

만일 A 라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요소와도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그역도 참입니다.
A가 그어떤 요소와도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A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제가 말하는 물리학적 관측자라는 단어에 충분히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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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관측 가능해야 하며 관측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주장을 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원리적으로” 관측 가능해야 한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이렇게 해석해도 된다면 존재는 관측에 의존한다는 주장은 참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존재의 독립적 실재를 믿는 실재론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러한 존재가 즉 독립적 실재가 원리적으로 관측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리적 관측 가능성과 실제적 관측 가능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존재를 말할때 관측라는 개념을 사용한건, 존재가 관측에 의존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존재라는 의미의 필요충분조건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관측은 말씀하신 원리적인 관측가능성이 맞습니다.
관측이라는것이 A 가 B 를 관측했다. 라는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A라는 요소가 지닌 '관측가능성' 이라는 상태에 의의를 두는 것입니다.
A라는 요소의 관측가능성 이라는 상태가 관측 불가능이라면, A는 부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다세계 개념을 도입했을때 이런 의미의 존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살펴본 것 입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재밌는 생각이군요. 다세계란 개념을 도입했을 때, A와 B 각각의 세계는 서로에 대해 인식적으로 혹은 관측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본다면, 그 때는 A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군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넓은 의미에서 <A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세계 안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B의 세계의 관점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주장을 수용한다면, <나는 존재한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