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은 많지만 몇가지만 추리면
지젝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적 역사관을 비판하며, 헤겔의 후행적 시간성 개념(사건 발생 이후 의미가 구성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현대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비결정성과 구조적 복합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단순한 목적론적 접근을 상당 부분 넘어서고 있습니다.
후행적 의미 구성은 필연적 낙관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대 마르크스주의는 위기 가능성과 보수적 회귀 가능성 또한 충분히 고려합니다.
지젝의 이러한 연결은 흥미롭지만, 다소 단순화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젝은 자본주의의 지속을 위해 비노골적이고 문화적 억압 장치로서 소프트 파시즘이 등장한다고 봅니다.
이는 전통적 파시즘과 달리 정서적 감정 동원, 타자 배제, 규범적 통제 등을 통해 사회를 관리합니다.
그러나 지젝이 언급하는 중국. 이스라엘,미국등은 정치 사회 종교 구조가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모델로 단순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또한 각국 내부와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파시즘으로 규정할지 여부나 민주주의 후퇴 여부를 두고 논쟁과 비판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젝의 논의는 충분히 생산적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단순화의 흔적도 엿보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