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논리학 교재 가이드

어쩌다보니 논리학 교재를 소개하는 글을 쓰게 됐습니다. 사실 이전에 이 게시판에 "논리학 교재 소개글을 올려야겠다!" 하고 이것저것 정리해보던 중에 제 깜냥으론 제대로 된 비교가 아니라 인상비평에 그칠 것 같아 정리하던 원고를 지워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몇 가지 열거하는 게 공부하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필요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정도의 정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선 소개글에 앞서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저도 논리학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무슨 책이 좋은지는 더더욱 잘 모릅니다. 저도 좋다고 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정착한 입장이라 아래에서 소개해드리는 책은 단순히 제가 공부하고 있고,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들에 따라 선정되었습니다. 여담으로 모 교수님께서는 국내외 저작 중에 논리학 교재로 충실하다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고 하시기도 하셨다죠..

(2) 앞에서 밝힌 바에 따라 내용의 엄밀성이나 포괄성 등을 평가하기에는 리뷰어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3) 아래에서 다루는 책들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전통 논리학)은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 의견이고 아마 다수가 동의하는 생각일 텐데, 현대논리학이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자리잡은 이 시점에서 논리학을 배우는 입장에서 전통 논리학이 딱히 필요하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굳이 봐야할 필요가 있다면, Irving Copi <논리학 입문> 앞부분, 혹은 아래에서 소개될 이병덕 교수님의 책 일부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초~중급단계》
-최원배, [논리적 사고의 기초]
-이병덕, [코어 논리학](舊 [논리적 추론과 증명])
: 국내 저자들 책 중에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었고 알려진 책들입니다.
두 책 모두 논리학의 기초부터 시작하기에는 특별히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논리학 책을 본 것이 이병덕 교수님 책의 구판이었고, 나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목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추천방향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 자세하고 깊이 있는 설명을 원하시면 최원배 선생님 저서가, 흥미를 잃지 않고 컴팩트하게 논리학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습득하길 원하시면 이병덕 선생님 저서가 목적에 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략 읽어보기론 두 저서는 학부 논리학의 복병인 조건문을 설명하는 방식, 자연연역의 시스템, 양화사에 대한 설명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보였는데 앞서의 거시적인 비교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책 모두 연습문제 해답이 충실하게 실려 있습니다.

-Irving Copi, [Symbolic Logic]
: 자연연역 파트가 가장 직관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몇몇 연습문제에 대해 답이 있습니다. 저는 학부 전공 논리학 시험의 자연연역 문제 대비를 하면서 이 책에 있는 연습문제를 거의 다 건드려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연습문제 양도 많고 난이도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가독성은 좀 답답한 구성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절판이라는 점이죠..

-Volker Halbach, [The Logic Manual]
: 이 책은 저는 잘 모르는 책인데, 주변 지인이 괜찮다고 말해서 하나 적어봅니다.

-Graham Priest, [Logic]
-Wesley Salmon, [Logic]
: 짧은 책들입니다. 전자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로 나온 책이고, 후자는 "Prentice-Hall" 시리즈로 나온 책입니다.(아마 절판?) 논리학 교재로 쓰기보단 기초적인 내용을 훑어보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벤슨 메이츠, [기호 논리학]
: 매우 잘 알려진 교재죠. 학부 논리학 수업에서 이 책을 교재로 쓰는 곳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널리 쓰이는 교재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다루는 범위도 기초 논리학 치고는 꽤 많은 것 같구요. 하지만 초심자 교재로 독학하기에는 내용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연습문제 답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래에 나오는 고급 논리학 교재인 Boolos와는 양화사 해석이나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Ted Sider, [Logic for Philosophy]
: 말 그대로 철학에서 많이 쓰이는 논리학을 중심으로 핵심만 뽑아 체계를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그렇게 두껍지 않은데 필요한 내용은 어지간하면 다 있습니다. 계산적인 맛은 좀 떨어지는데 연습문제가 많지 않아서 부담은 덜한 편입니다. 보통 논리학 책에 잘 포함되지 않는 반사실적 조건문에 대한 논리체계(루이스-스톨네이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외, 양상논리, 직관주의 논리, 이차원 의미론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논리학을 그렇게 빡세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이런저런 논리학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궁금하다!" 하시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급 교재 / 철학적 논리학》
-Boolos, Jeffrey, Burgess, [Computability and Logic] / 계산가능성과 논리
: 아마 철학자들이 쓴 책으로는 가장 advanced level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리논리 교재로 유명한 Enderton 같은 책들은 수학자들이 쓴 거라 읽다보면 약간 괴리감이 느껴지거든요. 제가 느끼기에 같은 일차술어논리와 그 메타논리를 다루더라도 수학자들이 다룰 때와 철학자들이 다룰 때 전달되는 방식이 약간 다른 게 있는 것 같습니다.(철학자들이 약간 더 일반적인 문장들을 염두에 두는 느낌?) 무한집합과 칸토어의 정리부터 1차 술어 논리에 대한 엄밀한 메타논리적 논의, 튜링-계산가능성, 재귀함수, 괴델 정리 등등을 다룹니다. 답지가 따로 있긴 한데,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강사만 받을 수 있도록 잠금이 걸려있고, 학생용 매뉴얼에는 몇몇 연습문제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지금 혼자 공부하는 책 중 하난데, 할 때마다 두뇌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Hughes, Cresswell, [A New Introduction to Modal Logic]
: 양상논리를 다루는 교재 중에 가장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는 약간 연구서의 성격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중반부까지는 공통되는 내용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어 이 책을 소화하면 양상논리를 다루는 담론의 기초를 다지기엔 충분하다고들 하더라구요. 양상 연산자를 "□", "◇"를 쓰지 않고 "L", "M"으로 쓰는게 특징입니다.

그 외에 철학적 논리학/논리철학과 관련해서 제가 본 책은
-A.C. Grayling, [Philosophical Logic] (번역본 [철학적 논리학])
-Susan Haack, [Philosophy of Logics]
-W.V.O. Quine, [Philosophy of Logic]
등이 있습니다. [철학적 논리학]은 내용면에서는 참 알찬 거 같은데 번역 상태가 좀 난감합니다. 오탈자도 많고, 오역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책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 저서들 중 흥미에 맞지 않는 책들은 있겠지만, 적어도 시중에 양산되는 시험대비 논리학 같은 것들보다는 훨씬 엄밀하고 정확한 지식을 담고 있으니 그 정도에선 믿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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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감사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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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말 유용하게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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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벤슨 메이츠 논리학... 답이 없으니 연습문제를 풀고도 제가 맞게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얼마 전에도 열심히 정리해 주신 사용/언급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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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2월에 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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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논리학 입문자인데....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

'어둠의 사이트'에 computability and logic 교수용 답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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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끌올된 김에...
(1) Sider의 Logic for Philosophy의 경우, 초판의 pdf를 저자가 본인의 웹사이트에 공개한 것으로 압니다. 현재 출판되어 팔리고 있는 것에 비해 살짝 추가된 부분이 있습니다만, 중요한 부분은 거의 같습니다.
(2) Grayling의 책은 최근 번역이 개정되었습니다. 단지 맞춤법 교정 정도를 한 것이 아니라, 내용 자체를 거의 다시 번역한 듯합니다. 기존 번역에 불만이 있으셨던 분들은 이기회에 새로 장만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3) Mates 기호논리학 또한 최근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약간의 오자가 있다고는 합니다만, 조판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하드커버로 나와서(사실 이 부분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존하기가 용이해졌습니다.
(4) 블로그 Logic Matters의 "Teach Youself Logic" 페이지가 꽤 알찹니다.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Teach Yourself Logic - Logic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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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렐링 신 번역본 읽는 중인데 확실히 예전보다 번역이 부드러워졌달까요. 구판은 직역적 뉘앙스가 너무 짙은 문장이 많았는데 이번 판은 비교적(?) 부드럽게 소화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