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으로 해외에서 발표를 해봤습니다.
대단한 학회였던 건 아니고요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 독일 국경지에 있는 대학 소속 철학과 박사과정생들끼리
학술교류차원에서 조성된 자리였습니다. 장소는 룩셈부르크였습니다.
발표도 발표지만 Q&A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넘어갔고, 첫 발표치고 clear 하고 professional 했다는 평을 전해 들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제 학회 발표 주제는 욕구 내용이 시간 요소를 포함하는 특별한 경우에, 그러니까 "S desires that p by t"와 같은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 때 이 욕구의 좌절조건이 어떻게 특징지어질 수 있는가 관한 질문 제기 및 가능한 입장들이었습니다.
말이 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청중들에게 준비한 내용을 잘 이해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이번에 발표 끝나고 뒷줄에 앉아 있던 대학원 지망 학생까지도 잘 따라온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몇 가지 감상을 적어봅니다.
- 발표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인 것 같았습니다. 딱딱하게 예의차리고 이런 것 없이 정말 준비해온 발표 주제 자체에 engage하려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 룩셈부르크에 하루 일찍 도착해서 keynote speaker 두 분과 주최측 학생들끼리 저녁식사 하는 자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인지심리학을 전공하고 인식론, AI 윤리를 하는 한 친구는 재밌게 읽은 논문 얘기를 하다가 김재권의 논문이 철학을 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고,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은 다른 얘기를 하다가 한병철을 읽어봤냐고 물어보더군요. 흥미로웠습니다.
- 키노트 스피커 중 한 분은 도르트문트 대학에 계신 Brigitte Falkenberg라는 분이었습니다. 우연찮게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알려드렸는데 알고봤더니 교수님이시더군요. 저녁식사 때 들은 바론 실험물리학과 철학에서 박사학위를 동시에 따셨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하구나 싶었네요.
- 다른 한 분은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아실 Hans-Johann Glock이었습니다. 룩셈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신 적이 있어서 학생들은 잘 아는 것 같더군요. 처음 본 사람들은 "Professor Glock"이라고 했는데 잘 아는 사람들은 "Han-Jo"라고 부르는 게 웃겼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발랄하신 성격인 것 같았습니다. 발표 하실 때도 액션이 되게 컸고요. 제 발표 때도 짤막하게 코멘트를 주셨습니다.
- 근데 이런 분들도 식사자리에서는 어느 대학에 무슨 자리가 난다더라, 누가 어느 대학으로 옮겼다더라, 누가 어디로 가려고 했었는데 못 갔다더라 이런 얘기 하시더군요.
제가 소셜한 자리가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는 사람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기서 만난 발표자들과는 재밌게 잘 지냈네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