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로욜라 대학교에 대한 단상

(1) 지원한 세 곳의 학교 중 오늘 새벽에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합격하여서 좋긴 한데, 이 학교는 붙어도 문제다. 여기는 석사 과정으로 지원한 거라 따로 펀딩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솔직히, 시카고 로욜라는 내가 지원한 학교들 중에서 나를 제일 답답하게 한 학교였다. 나는 처음 여기에 박사 과정으로 지원하려 했다. 학과 홈페이지 소개란에도 박사를 뽑는다고 되어 있어서 그 내용만 믿고 서류를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원서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고 지원을 하려니 철학과 박사 과정 지원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메일을 보내서 물어보자 그제서야 "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는 철학과 박사 과정생을 뽑지 않는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아니, 다른 학교들은 이런 중요한 정보를 학과 지원 정보 페이지 제일 윗부분에 빨간 글씨로 강조까지 해서 표시를 해놓았던데, 그 메일을 받고 학과 홈페이지와 학교 홈페이지를 죄다 뒤져보았지만 어디서도 그런 공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미 추천인 교수님들께 이 학교에 지원하겠다고 다 말씀드린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석사 과정으로 원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펀딩 없이 석사로 합격한 것이라면 나로서는 뽑혀도 유학을 갈 수가 없다.

(3) 서류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국제 학생은 ECE 같은 공인된 자격 평가 기관을 통해 성적 증명서를 검토받아야 한다. 학생이 자기 나라에서 받은 성적이나 학위가 미국 기준의 성적이나 학위에 대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다른 학교들은 대부분 합격한 학생에 대해서만 정식으로 자격 평가를 받으라고 하였다. 서류 제출 단계에서는 지원자가 자기 성적표를 직접 스캔하여 PDF 형태로 첨부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자격 평가 기관에 확인을 요청하는 데만 해도 비용이 30만원 이상 들기 때문에, 지원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굳이 처음부터 자격 평가를 받지는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카고 로욜라는 모든 국제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의무적으로 자격 평가를 받으라고 하였다. 게다가 철학과 홈페이지에서 알려주는 자격 평가 기관과 대학원 입학처에서 나에게 메일로 알려준 자격 평가 기관이 서로 달라서 나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하였다.

(4) 문의 메일에 대한 답장도 너무 느렸다. 다른 학교들은 한국 시간 기준으로 저녁에 8시 정도에 메일을 보내면 다음날 새벽 5시에는 어김없이 답장이 왔다. 그런데 시카고 로욜라 대학은 문의 메일에 대해 무려 일주일이 넘게 답장을 주지 않아서 결국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전화로 직접 서류 지원 상황을 문의해야 했다. 심지어, 전화 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인분의 말씀에 따르면, 전화를 걸자 "코로나 때문에 대학원 입학처 직원들이 자택 근무 중이라 통화를 할 수 없다."라는 자동응답이 돌아왔다고 왔다.

(5) 아니, 시카고 로욜라 철학과가 미국의 최상위권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이 나름 미국에서 제일 큰 철학과 교수진을 보유한 학교이긴 한데,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입학 업무를 처리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한국인이라 미국 대학의 지원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학교들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이 학교의 지원이 이제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다.

*첨언하자면, 여기가 바로 요즘 핫한 신유물론의 기수 중 한 명인 레비 브라이언트가 나온 학교다. 브라이언트는 석사 때 쓴 들뢰즈에 대한 학위논문이 너무 뛰어나서 곧바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번 지원 과정을 거치면서 '이 학교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이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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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읽고 축하를 드리려했는데 완전 고구마썰이네요.. ㅠㅠ
그건 그렇고 석사논문이 뛰어나서 바로 박사학위를 받는 게 요즘 시대에 가능한 일인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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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제 박사 지원한 나머지 두 학교에서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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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트의 썰을 그나마 합리적으로 해석하면 이런거 아닐까요.
어차피 요즘 미국 대학원들은 a) 석사만 받는 프로그램과 b) 석-박사 통합 프로그램. 대체로 이원적으로 운용 중인데, 브라이언트는 그 중에서 b에 간거죠. B라면 기실 석사 학위 없이도 바로 박사 따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경력에 석사 학위가 없는 교수들이 좀 있죠.) 이걸 뭐..과장한다면, 석사 학위가 바로 박사가 된 걸 수도 있죠.

아, 정확하게는, 학위 논문을 제출했는데 지도교수가 읽고서 석사 논문으로는 아까우니 박사 논문으로 하자고 했다더라고요. 석사 논문은 간단하게만 제출하라고 하고요. 그래서 석사 학위도 있긴 한데, 박사를 받기 위해 형식상 간략하게 받은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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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도 대학원생이 일을 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