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자유의지 과제로 낸 페이퍼입니다. 철학사랑 현대철학을 엮어보려는 시도를 했는데, 어떤 평을 받을지는 모르겠네요.
+) 아 참고로 제목은 Emery - Actualism without Presentism? Not by way of the Relativity Objection 에서 따왔습니다.
이번에 자유의지 과제로 낸 페이퍼입니다. 철학사랑 현대철학을 엮어보려는 시도를 했는데, 어떤 평을 받을지는 모르겠네요.
+) 아 참고로 제목은 Emery - Actualism without Presentism? Not by way of the Relativity Objection 에서 따왔습니다.
만약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실제로 프랑스어 실력을 발휘하는 데에 ‘무의식’ 따위의 신체적 (내지는 non-cognitive) 요인이 중심적으로 작동한다면 이 이론은 어떻게 되나요?
틱 같은 걸까요? 이 부분은 역시 스피노자 다루는 섹션에서 변호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틱이 생긴 이유가 환경 변화에 의해 생겼다던가, 틱이 발현되는 이유가 특정 환경 변화에 의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정확히 어떤 게 답이 될지는 틱 연구에 대해 봐야 알겠지만요. 비슷한 예로 https://www.youtube.com/watch?v=koNwUeG-iKE&ab_channel=DavidBotran
이런 게 있겠네요. 특히 침묵을 무서워하시는 분은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조용해지면 소리를 치시지요.
모든 행동들의 기저에 욕망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비인지적 요인이 있다고 간주하는 (가상의?) 정신분석학자를 생각하고 말한 거긴 했습니다. 프로이디언의 관점이 맞다면 자유의지나 심신인과의 문제가 간단히 해소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 종종 들곤 하네요.
정신분석학이 요즘 시대에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질진 모르겠지만, 프로이드에서도 충분히 그런 모습들이 많이 보이지요 (프로이드는 쇼펜하우어/쉘링을 많이 읽었고, 실제로 쇼펜하우어 쉘링 둘 다 스피노자 빠였으니 (쇼펜하우와 스피노자의 연결점은 저 페이퍼에서 언급하지요) 이상할 건 없지요.). 애초에 특정 무의식적 갈망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하니깐요. 예를 들어 프로이드가 도라의 정신상담을 하면서 도라의 성적 욕망 대상이 프로이드에게 transfer됐다던가 하는 것들이요.
어떤 긴 나눗셈을 머릿속으로 계산할 때, 이것은 철저하게 능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나눗셈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적 측면에서의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비슷하게, 어떤 난해한 글을 읽을 때, 그에 관련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즉, 그런 글을 읽기 전에, 나에게 그런 글을 읽을 능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향만 가지고 있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밖에 나가 술을 마시러 가는 의도를 형성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런 의도의 형성은 성향적인 개념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내가 밖에 나가 술을 마시러 가는 의도를 형성하는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우리는 성향만으로 이런 의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능력은 보다 복합적이고 성향은 단순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해, “할 수 있다”는 관점을 능력과 성향에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페이퍼에서 강조하지만, 비벨린은 Ability to X/Disposition to X가 아닌 Ability to choose to X/Disposition to choose to X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예시들은 모두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그러니깐 이 역시 관련없는 얘기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허튼 소리를 했군요.
(3) 능력과 기질 모두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3)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적절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X에 대한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그 X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X에 대한 성향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그 X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수영선수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 수영을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이 때의 수영선수는 수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죠. 반면에 수영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은 수영을 하고 싶어도 대체적으로 수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X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X를 선택할 수 있는 성향
X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은 그 X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안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X가 아닌 Y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X를 선택할 수 있는 성향을 갖는다는 것은 X가 아닌 Y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도벽이 있는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칠 수 있지만 어떤 특정한 제한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남의 물건을 훔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무 단순한 글인가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일단 이 댓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에 반박을 하시는 것인지, 비벨린에 대해 반박을 하시는 것인지, 본인의 생각을 적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장의 구조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네요. 수영선수가 수영을 배운다면 수영을 할 성향이 있겠죠?
? 그건 능력도 똑같지요. 능력과 성향의 차이를 논해야하는데 능력과 성향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을 논하시네요.
단순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장의 구조가 뭔지도 모르겠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줄 요약을 하고 시작을 하는 것이지요. 구리님께서는 아마 비벨린에 대한 반박을 하시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벨린의 주장을 요약을 하고 그 요약에서 공격할 전제를 찾고, 그 전제가 왜 실패하는 것을 보이는지 적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물론 전 수차례 제안을 드렸고 제 제안들은 전부 철저하게 무시당했지만요. 근데 애초에 제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하실 거면 왜 계속 댓글을 다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로써 최소 다섯번은 똑같은 말씀을 드리고 있네요.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무시당하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듭니다. 여섯 번은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또 똑같은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구리님을 차단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긴 기간은 아니고 당분간은 자제하겠습니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고 난뒤 그 때 제가 댓글을 달거나 글을 올리면 그 때 대화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