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시하신 세 가지 논지에 답변하겠습니다.
1. 제가 위 답글에서 “구체적인 연구나 학술적 논의들을 근거로 삼아 주장을 개진해”달라고 말씀드렸을 때, 저는 그 예시로서 본문에서 논의하는 ‘본질’과 ‘교부’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거를 제시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제 권고는 당연히도 해당 주제에 대한 (책, 논문, 강의 등의) 선행 연구 자료들을 뒷받침으로 제시해달라는 권고입니다. 그리고 다른 게 아니라 이처럼 이미 철학이라는 영역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선행 연구들로부터 출발하는 일이 표준화입니다. 해당 부분은 @anon49593252 님께서 이미 인용하신 게시글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표준화’는 단순히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용어로 보입니다.
2. @anon49593252 님께서 인용하신 게시글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지만, “학술적 논의”는 “학계 내에서 인정되는 학술 자료”, 즉 선행 연구를 뜻합니다. 그런데 전문적인 독자들을 겨냥하여 집필된 연구 자료를 학계 밖에 있는 비전공자로 하여금 읽고 소화해서 근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지나친 요구일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에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연구 자료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된 해설서, 입문서, 혹은 넓게는 강의 등을 전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선행하는 학술 자료나 교양 자료가 어떤 의미이며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는 굳이 불필요하게 덧붙이지 않아도 명확해 보입니다.
3. @yhk9297 님께서 잘 지적해주셨지만, 입증 책임은 주장을 제시하는 이에게 지워집니다. 누군가 “교부철학자들은 본질 개념을 기독교 내에 들여왔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는 일은 그러한 주장을 제시한 이의 부담입니다. 이 책임에는 이 주장에 사용된 ‘교부철학자들’이나 ‘본질’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주는 일도 이 책임에 당연히 포함이 됩니다. 저는 주장을 제시하는 이에게 그러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두 가지 예시를 들어 지적했을 뿐입니다. @anon49593252 님의 말씀은 저에게 일종의 입증 책임이 있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 누군가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어떤 주장의 근거를 제시해달라거나 거기에 사용된 용어들의 의미를 설명해달라는 요구가 해당 주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굳이 상술하지 않아도 명확해 보입니다. 주장을 제시한 이가 그러한 요구들에 따라 근거를 보충하거나 자신이 차용한 용어들의 애매성 혹은 모호성을 해소한다면 그의 주장은 그만큼 추가적인 근거들을 갖게 될 것이며 용어상의 오해들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anon49593252 님께서 제 요구가 “실제로 논의를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해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혐의를 제게 제시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일 어떤 학자, 학파가 집필한 문헌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아 제시하기를 요구했다면, 그런 요구는 암시적으로 특정한 입장을 강요하는 요구이겠지만, 제 답글에는 그와 같은 요구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