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에서 기초 논리학 강좌를 진행합니다. 이 강좌를 담당한 지도 올해로 벌써 3년 차네요. 사실, 이 강좌에 대한 홍보를 할 때면 약간 민망합니다. 철학 전공자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논리학 사용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보니, 저만큼 논리학을 아시는 분들은 너무나 많고, 저보다 훨씬 더 논리학을 깊이 공부하신 분들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다만, 기초 논리학에 입문하는 분들을 위해 최초의 길잡이가 되어드리는 역할만큼은 제가 꽤나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계기로 초등학생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논리학 수업을 진행해 보면서, 기초 논리학을 '가르치는' 활동에서만큼은 나름의 노하우가 많이 쌓였거든요. 항상 자랑하는 것 중 하나이지만, 저에게 논리학을 배운 초등학교 6학년 친구가 그 계기로 논리학에 흥미를 느껴서 결국 철학과에 진학하게 된 사연도 있을 정도니까요. 작년에 진행했던 2기 수업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고요.
기초 논리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강좌에 참여해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아래의 내용은 강좌에 대한 '질의응답'입니다.
Q1) ‘논리적이지 않다’는 게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저 같은 초보자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A1)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노브레인 서바이버>라는,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간단한 숫자 퍼즐이나 단어 퍼즐을 푸는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정준하 씨는 아주 쉬운 문제들은 모두 틀리다가, 아무도 풀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는 이상한 ‘논리’로 맞추는 역설적인 역할을 보여주었거든요. 대략 이런 식이었습니다.
진행자: 정준하 씨, 문제가 어려웠는데 어떻게 계산하셨기에 답이 바로 나오나요?
정준하: 쉽지, 저건. 기본이지 기본! 내가 푸는 방법도 알려줘야 하나? 오징어 다리 몇 개예요?
진행자: 10개죠.
정준하: 여기 나온 사람들 숫자를 거기 더해봐.
진행자: 18이죠.
정준하: 거기서 사람 콧구멍 숫자를 빼봐.
진행자: 16이죠.
정준하: 그러면 정답이 16개 맞잖아?
진행자: 아니, 오징어 다리 숫자랑, 출연자 숫자랑, 사람 콧구멍 숫자가 지금 이 문제랑 무슨 상관이에요???
정답을 맞혔다고 해서 ‘논리’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것을 초등학생 시절의 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습니다. 정답이야 잘 찍어서라도 맞출 수는 있지만, 그 정답이 왜 정답인지를 설명하는 논리는 결코 찍어서 맞힐 수가 없죠. 오히려 정확한 논리 없이 정답만 맞히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아무리 정확히 맞혀도, 그런 사람이 제시하는 정답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지는 매우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죠.
논리학이라는 것은 문제로부터 정답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과정에 대한 탐구입니다. 정답 자체가 무엇인지보다는 그 정답을 어떻게 도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논리학에서 이루어집니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반드시 참이 되는 형식에 대한 탐구가 논리학인 것이죠. 이번 강좌를 수강하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단순히 정답을 잘 찍어서 맞히는 것과 정답을 정확한 이유를 가지고 맞히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배우시게 될 것입니다.
Q2) 논리학을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요? 말싸움할 때? 구체적인 예시가 있나요?
A2) 정말로 말싸움할 때 논리학을 사용하실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꽤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로는 부당한 일을 당한 상황에서 심한 언쟁을 벌여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논리학을 배우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논리’에 호소하고 있고, 때로는 엉터리 논리가 제대로 된 논리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니까요. 가령, 저는 인터넷에서 ‘기적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대화 상황들을 접하고는 합니다. 그중 다음의 상황이 있더라고요.
아들: 게임기 사주세요.
엄마: 왜?
아들: 엄마도 요가 더 열심히 하려고 요가매트 비싼 거 샀더니 지금은 요가 아예 안 하시잖아요. 저도 게임기 사주시면 게임을 아예 안 할지도 몰라요.
분명히 이 상황에서 아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아들은 일종의 ‘유비추리(類比推理, analogical inference)’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논리는 재치 있기도 하고 강력하기도 합니다. 요가 매트를 사고서 요가를 한 번도 안 하신 어머님이 그 논리에 괜히 찔려서 아들에게 정말로 게임기를 사주실지도 모르죠. 적어도, 실용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논리학을 하나도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 정도 수준에서라면 자신의 목적을 얼마든지 잘 성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가 단순히 눈앞의 목적을 위해서만 임시변통으로 제시되는 기술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 앞에 주어진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더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려 하면 할수록, 논리는 점점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죠. 당장 위의 ‘기적의 논리’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a) 우리가 어떻게든 게임기를 받아내는 것이 목적인 아들이라면, 우리는 무슨 엉터리 논리를 사용해서라도 엄마를 설득하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그런데 (b) 우리가 깊고 진지한 태도로 지금 우리 자신에게 게임기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아들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제시한 논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과연 게임기가 있으면 게임을 안 하게 될까?”라고 말이죠.
그래서 논리학이란, 말싸움에서 상대방을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 앞에 주어진 문제들과 정확하게 대면하면서, 그 문제들을 정말로 철저하고 거짓 없이 성찰하려는 사람에게 논리학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죠. 저 같은 대학원생에게는 제 전공 분야의 문제들을 정확히 고민하는 데 논리학이 정말로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학술적인 문제들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서의 문제들, 진로 선택의 문제들,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들 같은 훨씬 더 무거운 문제들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도 논리학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죠. 그래서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인간이기 전에 어떻게 논리학자일 수 있겠습니까!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철학을 함으로써 논리학의 난제 따위에 관해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 뿐 정작 삶의 중요한 문제에 관한 사유는 심화하지 못한다면 과연 철학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논리학 공구상자 열어보기] 3기
❙ 강의: 윤유석
❙ 일시: 2025.03.10~04.21 / 매주 월요일 / 저녁 7:30-9:30 / 총 7강
❙ 대면: 10명
*강의장소: 신청서에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전용 화장실이 있습니다.
❙ 비대면: 사용 프로그램_줌Zoom
↳서울 외 지역에 계시는 분들의 참가를 환영합니다.
❙ 수강료: 22만원
카드결제 가능(신청서에 있습니다)
강좌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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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내는 사유와 실천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