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논쟁]과 관련된 철학 도서 추천해주세요!

제 친구 두명 A,B의 의견이 갈리는데, 전공자가 아무도 없다보니 제대로 된 논쟁이 되지 않고, 이야기가 빙빙 돌기만 합니다,,, 그런데 제가 명확하게 중재할만한 지식도 없는 것 같아서요. 짧은 철학 지식으로 아는 척하려다가 그냥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추천 받아서, 관련 책을 읽고 요약해보면서 공부해보려구요!
친구들의 논쟁은 길고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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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쓰레기 영화라는 건 이 세상에 없어! 예술은 주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야.

B : 그래도 수준이 처참한 영화는 쓰레기야. 쓰레기 영화를 좋아하는 놈이 이상한 놈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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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 혹시 제 친구 A-B 간의 논쟁과 관련된, 그것에 대해서 공부해볼 수 있는 책 추천 받을 수 있을까요?

질문2 : 책 추천과 더불어서, 저 논쟁에 관한 올빼미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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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예술을 규정하기 위해선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필수겠죠. 오병남 교수님의 <미학 강의>, 그중에서도 11장을 참고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예술을 정의할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며 예술의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웨이츠 부터 시작해 그에 반박하는 멘델바움 등의 논의를 다룹니다. 그 밖에도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는 아서 단토의 저작을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종말이란 예술이 끝났다가 아닌, 예술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허용한단 뜻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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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2442
추천 감사합니다!

추가로, 관련 책을 먼저 읽어보신 입장에서 A-B 간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수업때 잠깐 들었던 내용을 알려드린거라 저 책을 다 읽진 못했습니다. 다만 전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을 꽤 인상깊게 봐서 A씨의 의견에 좀 더 찬성하게 되네요. 다만 단토가 A씨처럼 예술이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종말을 논했던건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다만 구분해야 할것은 '쓰레기'란 단어의 용법입니다. 두 친구가 쓰레기란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데요. 만일 쓰레기라는 단어를 1)예술로 부를 수 조차 없는, 예술로서 실격 이라는 의미로 쓴다면 예술이라는 분야에 한가지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반례로 들 수 있겠죠.

한편 2) 예술임을 인정해도,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때 그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는 의미로 쓰인다면 그렇다 할지라도 작품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 작품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예술의 정의에 얼마나 맞아들어가는지 알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예술의 정의는 다원적이니 그런 평가 기준은 여러 기준이 난립할 뿐 하나만 존재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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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예전에 아서 단토의 예술철학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써 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가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예술이 반드시 '공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단토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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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들었던 미학 입문 교과서는 Carroll - Philosophy of Art 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페이퍼로 썼던 게 Clive Bell 의 Art란 논문이었는데, 미술 작품의 미적 가치는 형태에 의해 정해진다... 이런 거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그림이라면 그림의 특정 형태들, 예를 들어 선의 특정한 각도 등이 미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를 가진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미적 가치가 없다, 그래서 미적 가치는 주관적이지 않다, 이런 주장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벨은 B의 손을 들겠지요 (물론 벨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래도 벨의 이론을 영화에 적용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기억을 조금 더듬어보자면, 벨에게 다음과 같은 압박을 넣었던 것 같습니다. 4분 33초와 같은 음악은 침묵 속의 소리들을 그때그때 들으면서 예술의 형태를 갖는 것인데, 만일 벨이 맞다면 4분 33초의 미적 가치는 그때그때 달라져야한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뭐 이런 주장도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근데 미학 입문을 들었던 게 너무 오래전이고, 엄청 대강했어서 딱히 의존할만한 정보들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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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이 과연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주관적 취향만 있을 뿐인지의 주제는 특히 서양 근대 미학에서 매우 깊게 논의된 바 있습니다. 이 시대에 특히 "De gustibus non est disputandum [취향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없다]"라는 라틴어 격언을 중심으로 논쟁이 계속되었는데요. 대표적인 철학자들로는 흄과 칸트가 있고, 이들은 미적 판단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둘 모두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흄의 입장은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 (of the standard of taste)"라는 짧은 글에, 칸트의 입장은 "판단력 비판"이라는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곧바로 읽기는 좀 벅찬) 책에 담겨 있습니다. 흄의 책은 길이도 짧고 국내에 번역도 되어 있어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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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도 이 문제는 Herb님 말씀처럼 미적판단/취미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미학을 둘러싼 가장 거대하고 고전적인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흄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는 ‘취미 판단이 어떻게 판단의 객관성과 취미의 주관성을 결합하느냐’에 다루는 책입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흄은 취미의 이율배반(antinomy)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두 가지 대립하는 일반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ST 210):

(1) 아름다움은 사물들 자체 안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라, 사물들을 관찰하는 정신 안에만 존재한다. 각각의 정신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지각한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추함을 느낄 수도 있다. 따라서 취미에 관해서는 논쟁이 부질없다.

(2) 그러나 1번 상식[공리]가 하나의 격언이 됨으로써 일반 상식의 찬성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한 종류의 일반 상식은 그에 대립하며 적어도 그것을 수정하고 제한하는 데 기여한다. 천재성이나 고상함의 면에서 오길비와 밀턴 혹은 번연과 애디슨이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두더지가 파놓은 흙 두둑이 테네리페 산처럼 높으며 연못이 대양처럼 광대하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옹호한다고 여겨질 것이다.

해당 문제에 대해 흄은 ‘이상적 비평가들 [참된 심판관들]의 반응이 취미 판단에서의 객관적 기준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흄은 우리의 주관적 본성에 따라 우리의 정감이 달라지기에, 우리는 미적 판단에 대한 외부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취미의 표준을 우리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그는 “거의 모든 도덕적 판단과 결론에서 이성과 정감이 일치한다”라며, 특히 취미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름다움의 영역, 특히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는 적절한 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추론이 필요하며, 잘못된 취미는 논변과 반성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흄은 “정감의 느낌과 지성의 빛을 결합”하고자 합니다(ST 216).

이런 의도를 비추어 봤을 때, 흄의 미학에 관한 기획은 가치 판단을 사실 판단으로, 정감에 관한 판단을 이성의 판단으로 번역하는 기획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정감의 느낌과 지성의 빛을 결합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예술 작품에 대해 판단을 내리거나 자신의 정감을 미의 기준으로 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ST 228).” 그래서 흄에게 있어서 취미의 기준은 그 자신의 정감을 토대로 판단을 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바로 그러한 좋은 비평가[참된 심판관]이 미적인 것이라고 승인하면 좋은 예술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위와 같은 흄의 ST에 관한 요약도 다소간 논쟁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만, 칸트의 KU는 참 요약조차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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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평소 명료하게 쓰시는 글이나 댓글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Herb
친절한 답글 감사합니다~
흄 책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sophisten

친절한 답변 감사해요. 요약해주신 답글 참고해서 흄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칸트는 어떤 식으로 말했을지도 궁금하네요. 흄 먼저 읽고 칸트의 <판단력 비판>도 시도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Herb님도 말씀해주셨듯, 조금 난해한가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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