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할 수록 힘이 듭니다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로 따지고 보면
많은 초심자들의 공통 현상인것도 같은데
진리를 알고싶어서... 였습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진리가 없다라는 것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칸트의 안티노미 이론을 접하고 확실히 정립되었습니다.

그럼 철학 공부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결국 모든 주장이 논리적으로 에러가 없고...
둘 다 맞는 말이라면....

그래서 전 다양한 사고방식의 간접경험을 위해
철학을 공부한다고 믿고있는데요.
그래서 과거에는 토론을 정말 가치있게 생각하였는데
결국 둘 다 참의 논리를 가지게 되니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약간은 맹목적인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구요.
토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 오히려 공부로 더 넓어질 수 있기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행위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고 있는데요.

이런 저에게 선배님들이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내면적으로 큰 혼돈이 오는 요즘
좀 처럼 책도 안 읽히고 생각이 명료해지지도 않아서
두서없이 막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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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초심자 입장입니다. 저는 다른 이유보다 철학이 제게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제1이유로 삼는 것 같아요. 남들이 "그깟 공놀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공놀이 하나로 울고 웃고 살아갈 이유를 얻기도 잃기도 하듯, 사람들이 "그깟 게임"이라 치부해도 수백만이 열광하고 고대하듯, 철학 역시 그런 인력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력을 부정하지 않고 즐기는 데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연히 꿈 역시 나와 같이 이런 공부에 열광하는 동료들에게 도움되는 좋은 연구자가 되어야겠다는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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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칸트의 안티노미 이론이 뜻하는 바가 '모든 주장이 논리적으로 에러가 없다'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칸트는 어떤 주장에도 반박을 하지 못하겠지요. 대신 안티노미가 뜻하는 바는 시간의 끝, 공간의 끝과 같은 것을 다룰 때 모순에 도달하는 이유는 우리의 이성의 바운더리를 넘어섰기 때문인 것이고, 우리는 이성의 바운더리를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철학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안티노미가 목표는 철학의 스코프를 정한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칸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헤겔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초심자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진 않고요. 칸트 읽으셨으면 쇼펜하우어도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도 안티노미에 할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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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k9297 님께서 이미 말씀해주셨지만, 칸트는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율배반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율배반론의 취지는, 우리가 경험의 한계를 넘어가지 않고 이성을 사용할 때 실제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가깝습니다.
제가 알기로 소위 "진리가 없다"고 선언하고 거기서 주저앉아버리는 철학자는 철학사에 없습니다(그랬으면 애초에 철학의 역사에 이름이 남지도 않았겠지요). 각 철학자들은 모두 선대 및 당대의 철학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대결하면서, 즉 다른 철학자들과 토론하고 논증하면서 중요한 참된 통찰들을 발견했고, 우리가 참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 것이 없다(="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회의주의자들마저도 철저한 회의주의적 논증을 통해 그런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철학에서 얻어갈 수 있는 교훈은 앎이 다름 아닌 치열한 논증과 토론이라는 사유의 부단한 노동을 통해 얻어진다는 점, 이 노동을 거치지 않고 쉽게 얻어지는 앎이란 없다는 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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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만 모순이 필연적이다라는 이론인가요?

모든 형이상학 문제는 아니고 특정 형이상학 문제에 대해서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의 바운더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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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입장은 칸트의 입장은 아닌데, 칸트의 입장을 읽고 나서 아마도 형이상학적 회의주의에 빠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예전에 보았던 어떤 논문에서, 특정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해서 회의주의와 실재론 사이에 논쟁을 쭉 정리한 다음, 각자의 입장은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 전혀 다른 종류의 찬/반 논거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서로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은 특정한 결론으로 수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서술을 (이것도 제 기억에 따를 뿐입니다만) 본 적이 있습니다. 칸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이러한 경우가 양 쪽 모두 적절한 인식의 한계를 넘어간 논의를 한 결과라 볼 것입니다) 칸트를 이러한 입장으로 이해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런 장애물에 부딪힐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해서 반박이 불가능하면 그 주제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당 형이상학적 주제는 더 이상 제 소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철학 역시 특정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 위해 어떤 정념이 필요한 학문이고, 그 점에서 적어도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이유일지언정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는 납득할 정도의 이유를 가지고 특정 입장을 지지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