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4권 주요 논증 정리 및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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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4권은 국가의 정의가 국가에 한정된게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플라톤(작품 내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국가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갖춰져야만 좋은 국가다. 각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 지혜 = 분별력, 지식에 해당함. 국가의 경우 국내와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한 통치를 위한 지식을 아는 것이 지혜에 해당함. 계급적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들에게 필요한 덕목
  • 용기 = 국가를 위해 옳고 그름을 분별하면서 옳은 것을 반드시 해내고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거부하겠다는 신념. 계급적으로는 군인들에게 필요한 덕목
  • 절제 = 군인,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천한 입장에 있는 일반 시민들이 모두 수호자의 통치에 따르고 수호자도 합의에 따라 조화롭게 나라를 경영하는 것
  • 정의 = 각 계급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

그리고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로움을 논하는데, 개인의 정의로움과 국가의 정의로움이 본성상 닮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한다.

  1. 이성적 추론과 욕구의 구분

(1) 갈증의 대상은 마실 것 그 자체이다. 즉, 갈증이 마실 것을 추구하는 것은 갈증의 본질이다.

(2) 어떤 대상의 본질에 관련해서는 모순이 발생할 수 없다.

(3) (2)에 따라, 만약 어떤 사람이 갈증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마실 것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갈증을 느끼는 욕구의 기능이 아니라 다른 혼의 요소의 기능 때문이다.

(4) 따라서 혼에서 마실 것을 자제시키는 이성적 추론의 기능과 욕구를 느끼는 기능은 각기 분리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1. 격정과 욕구의 구분

(1) 사람은 자기의 욕구가 이성적 추론에 따르지 않을 경우 분개할 수 있다.

(2)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나, 불의한 일을 당했다고 느낄 때 분노하여 욕구를 이겨내고 저항하거나 자신에 대한 처벌을 받아들일 수 있다.

(3) 격정이 이성적 추론에 따라 욕구를 거스르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격정의 기능과 욕구의 기능은 분리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1. 격정과 이성의 구분

(1) 어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격정으로 가득하지만 이성적 추론의 경우 평생 갖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갖추기도 함

(2) (1)에 따라 이성적 추론과 격정도 서로 각기 분리된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논증에 기반하여 플라톤은 추가 논증을 제시한다.

(1) 인간의 혼이 이성, 격정, 욕구 세 가지로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2) 국가도 수호자, 군인, 일반 시민 세 계급으로 나눠진다.

(3) 인간과 국가는 지혜, 용기, 절제 세 가지 덕목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4) 따라서 개인의 정의도 국가의 정의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앞서 봤듯 플라톤은 정의는 국가의 계급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기능하는 것이고, 다른 것을 겸업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버리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할 때는 부정의로 규정한다. 개인의 경우 혼의 각자의 기능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다른 기능을 침범하거나 해치지 않을 때 개인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 비판 논증

나는 플라톤의 논증에서 국가와 개인을 유비시키는 논증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각 계급이 각자의 기능을 수행할 때 정의로운 국가가 된다. 즉, 수호자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지혜롭게 국가를 통치하고, 군인들은 용기 있게 국가를 지키며, 시민들은 통치자의 통제를 잘 따르며 조화를 지키며 절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정확하게 수행될 때 국가는 정의롭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한 개인이 국가와 같은 방식으로 기능을 해야 한다면 욕구와 정념, 격정이 이성의 통제를 잘 받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모두가 잘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모두가 수호자 계급에 속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의 경우 수호자, 군인, 일반 시민 계급이 모두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개인이 가장 이상적인 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 나라는 오히려 국가의 기능을 제대로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욕구에 충실하고, 또 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정념에 더 충실해야만 국가가 온전히 잘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국가의 온전함을 위해 각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과 모든 개인에게 있어 보편적인 이상적인 인간의 기준이 상충하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수호자가 될 리도 없고, 모두가 최상의 삶을 따르다 보면 누군가는 수호자에 적합하고, 누군가는 군인에 적합하며 누군가는 일반 시민에 적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온전한 정의로운 인간은 이성에 의해 잘 통제된 정념과 욕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응당 수호자의 계급에 적합할 것이다. 플라톤이 개인의 온전한 정의관을 밀어붙인다면 모두가 수호자 계급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모든 개인이 수호자 계급에 속하면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즉, 플라톤은 이성이 최우선 가치에 속한다는 전제와 일반 시민이 군인이나 수호자보다 미천하다는 전제를 포기하거나 국가가 수호자, 군인, 일반 시민 간의 조화를 통해서만 온전해질 수 있다는 전제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후자를 포기하기보다는 전자를 포기하는 것이 더 유망한 접근이라고 생각하기에, 플라톤의 이성주의적 접근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계층이 조화를 이룰 때 강력해진다는 것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굳이 이 직관을 부정하기보다는 수호자 계급에 속한 사람이 개인으로 봤을 때 일반 시민이나 군인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전제를 포기하는게 훨씬 유망한 것 같다.

또한 우리는 국가가 추구해야할 바와 개인이 추구해야 할 바가 구분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국가는 사람들이 많은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좋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출산에 대한 명확한 이유나 동기,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과 아이의 인생에 더 불행이라고 판단한다면 개인의 입장에서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등 국가와 개인의 이익과 관계, 그리고 덕목이 상충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에 플라톤의 논증은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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