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 여러분께 여쭙는 글

  1.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활발히 제시되지 않는 이유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부분으로 할 수 있겠는데요, (1)

자신이 사고한 결과가 이미 존재하는 주장이기 때문

인 점과, 문제 자체가 틀렸다는, 즉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활발히 제시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학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groundbreaking한 논의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따라서 기존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수정, 보완, 또는 다른 분야로 확장하거나 응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한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현대에 와서 비교적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내놓아지는 것이 줄어들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철학 연구에 참여하게 되면서, 철학사는 정말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당연히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많이 제시되고, 그 중 많은 것들이 knock-down argument을 만나 무너지고, 또 많은 것들이 수정되어 발전되었습니다.

왜 철학적 관점이 활발히 제시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많은 새로운 관점들이 전통적인 이름 아래 분류된다는 점일 수도 있겠는데, 단순히 그렇다고 해서, 예를 들어 콰인의 실용주의가 퍼스와 듀이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맥도웰의 '경험주의'가 록크와 흄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는, 철학도 다른 학문처럼 역사가 쌓이고 성공적이거나 미심쩍은 논증이 누적되면서, 상당히 정교해지고 전문화되었다는 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운지와는 별개로, 적어도 교양 또는 학부 수준으로 공부하기에 (비교적) 많은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파인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제와 진리제조에 관한 다양한 이론, 러셀-콰인 전통의 존재론에서의 부정 존재자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지, 또 물론 일정 수준의 논리학적 배경 지식이 없다면 입문조차 쉽지 않기에, 학술계 밖에도 소개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활발히 제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1. 공동 연구나 논쟁이 적은 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이 질문이, 예를 들어 공학 방면처럼 하나의 논문을 기본적으로 수 명에서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이 같이 쓰지 않느냐는 질문이라면, 연구 특성상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실험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연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연구가 연구실 단위, 또는 적어도 팀 단위로 진행될 이유도 딱히 없으니까요.

만일 이 질문이 연구자 간 논쟁이 적은 것 같다는 질문이라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논쟁이 하나의 논문 안에서, 또는 한 권의 책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여러 편의 논문 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연구가 하나의 논문, 또는 하나의 책에 각각의 입장에서 소개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원하신다면 교과서나, companion, anthology와 같은 이름으로 편집되어 나온 책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논문만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대체로 다양한 견해를 인용하여 소개하고, 비판하거나 적용하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철학계의 특성상, 너무나도 다양한 논의가 '철학'이라는 이름 하에서 진행되고 있고, 따라서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논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의 사회철학에 관한 연구와, 이차원 의미론에 관한 연구 사이에 접점을 찾아서 공동 연구를 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으니까요 (간혹 그 전에 상관없다고 여겼던 것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내서 큰 진전을 이루는 연구도 물론 나옵니다). 그러나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같은 주제의 논의로 분류되는 연구 사이에서는 정말로 많은 논쟁이 일어납니다.
연관된 또 다른 문제는, 연구자의 수가 철학의 범위에 비해서 좁다는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 논쟁이 덜 일어나는 이유로 저는 이 원인을 꼽고 싶은데, 아무래도 철학 연구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비해, 각각의 연구자들의 관심이 닿을 수 있는 논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논쟁이 애초에 일어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은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국내 학자들이 국내 연구에 더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지적이 물론 있는데, 이는 이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파국과 미래 칼럼의 <서로 읽거나 인용하지 않는 논문들> 섹션을 참고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서강올빼미에도 관련된 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찾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1. AI나 기계의 사용 윤리에 관한 주장을 한 철학자들을 알려주세요.

저는 그 방면은 전혀 몰라 답은 못 드릴 것 같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궁금하다면 일단 닥치고 SEP에 검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AI 윤리 관련해서도 항목이 있네요. Eth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 and Robotic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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