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 찬송가199장에 대한 급진신학적 재구성

원글: Homo Viator

그동안 가사가 '헤어졌으나'로 알고있었는데요. 어느날 같이 공부하는 형한테
"헤어졌다니, 이거 완전 급진신학적인 찬양 아니에요?" 했다가
"그거 '해어졌으나'야"라는 말에 시무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다 석사 논문의 주제랑 연관될 거 같아 블로그에 혼자 끄적인 글을 올려봅니다. 아무튼 헤어졌으나로 믿고 살려고요.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새찬송가 199장 찬양의 가사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성경말씀을 들려주시는 기억을 되짚으면서, 그 말씀이 지금 자신에게도 얼머나 귀하고 의미있는지 고백하는 가사다. 화자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고하면서 어린아이인 자신에게 어머니가 성경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을 기억한다. 그 때 들었던 이야기, 곧 다니엘의 용맹스럽던 경험과 유대임금 다윗,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던 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눈물 흘리던 일들... 화자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사랑하고, 귀하다고 고백한다. 화자는 자신이 성서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제 성경이 다 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찬양의 가사대로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게 좋겠지만, 나는 이 찬양에서 말하는 "해어짐"을 "헤어짐"으로 바꿔 여기서부터 이 찬양을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적이고 포스트모던적으로 이해하는 장난을 쳐보고자 한다.

1. 비록 헤어졌으나

먼저 성서와 헤어졌다는 것의 의미부터 생각해보자. 화자는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말씀해주시던 세계 안에서 살아가던 아이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그 역시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성년이 된다. 이제 성년이 된 화자는 더 이상 "엘리야가 바람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일"과 같은 성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화자는 성서와 '헤어지게' 된 것이다. 성년이 된 인간(세상)이라는 표현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용어에서 빌려온 것으로, 인간의 사유가 발전하여 더 이상 인간의 부족한 이성을 보충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작업가설(Arbeitshypothese)서의 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의미한다. 그 동안 신을 통해 이해해오던 많은 것들이 이제 인간의 힘 스스로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신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다는 자각에서부터 인간은 성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헤어짐'의 선언은 탈-종교, 무신론, 세속화 등의 용어로 환원되어 이해되는 것인가? 다시 한 번 찬양의 가사로 돌아가보자.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화자는 "비록 헤어졌으나" 여전히 성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성서가 소중한 이유는 실제로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는지 여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따스한 음성과 무릎 위 안겨서 느껴지던 온기, 그리고 엘리야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용맹함과 끈기가 바로 성년이된 지금까지도 소중하고 사랑할만한 대상인 셈이다. 물론 이 작업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성서의 신화적 요소를 벗겨내어 보다 실존적인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탈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떠올리게 하지만 나는 본회퍼가 지적한대로 불트만이 너무 덜 나갔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단지 신화적 개념을 종교적 개념과 분리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 둘 모두를 함께 "비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선포할 수 있어야"(1) (2)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서를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그것을 "귀하고 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단지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기 때문에, 그 추억 때문에 귀한 것 이외에도 말이다. 바꿔 말하면 본회퍼의 용어대로 그것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한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2. 예수 세상계실 때


본회퍼가 마지막으로 고민한 위의 질문은 아쉽게도 그의 처형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미처 완성하지 못한 아이디어는 이후 후학들에게 넘어가 몇몇 사조를 이끌기도 했다.3 그러나 나는 여기서 조금 의외의 인물인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안니 바티모(Gianni Vattimo)를 끌고오고자 한다. 앞서 급진신학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대표적인 급진신학자 존 카푸토와 공동 연구를 진행했을 뿐 바티모 자체를 급진 신학자라고 분류하는 경우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바티모의 사유는 분명히 급진 신학적인 사유와 닿아있으며 충분히 그렇게 분류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본회퍼가 급진 신학적 아이디어의 선구자라고 보기 때문에 본회퍼와 바티모 사이에 충분한 친연성이 있으며, 더 나아가 바티모가 말하는 "세속화된 그리스도교(secularized christianity)"가 본회퍼가 구상한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짧은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 다룰 수는 없기에 이후 논문 -(사실 하나 썼는데 떨어졌다)- 에서 확장할 것이다.

아무튼 바티모는 해석학자로서 니체를 인용하며 모든 진리가 해석에 불과하다는 급진적인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재밌는 지점은 바티모에게 이런 주장이 무척 급진적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부터 기인한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그 자체에서부터 벌써 해석학적이었고, 18세기 이후에나 등장하는 "생산적 해석"(4) 은 유대-그리스도교의 공헌으로 가능했다. 바티모는 성서 전통 내에서부터 벌써 해석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여러 예시를 제안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예시는 예수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오래된 예언자와 구약성서의 증언을 끊임없이 해석하며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육신이 된" 살아있는 해석(living interpratation) 자체이다. 이 예시에서 바티모가 추구하는 해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해석은 단지 고정된 문자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내지는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해석되어지는 과정이자 사건이다. 예수는 오래된 예언의 충실한 해석자였다. 그것은 이사야가 의도한 객관적인 의미를 파악해서 그대로 살아냈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사야조차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살아움직이며 생동하는 해석 자체로서 그렇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한 일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예수가 세상에서 죽임 당한 일은 이미 2천년 전에 지나간 사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머니에게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단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게 현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고 죽기까지 사랑하심의 역사役事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과거 텍스트와의 대화에서 오늘날 어머니의 삶에 직결되는 궁극적인 사랑과 구원을 해석(본인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화자에게 역시 인상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화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을 어머니의 눈물과 연결지으면서 또 다시 자신의 해석의 과정을 작동시킨다. 그렇게 이야기와 해석은 끊임없이 변형하면서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이 '감동'은 바티모가 이러한 자유로운 해석의 과정이 성령의 활동이라고 언급했다는 점과 같이 생각해볼수도 있겠다. (우리는 자유롭게 성서와 대화하며 해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게되는 것은 아닐까? )

  1. 주의 뜻을 따라 살려합니다.

그렇다면 바티모가 말하는 것이 단지 모든 것은 해석이고 상대적이기에 어떤 것도 말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인가? '자유로운' 해석의 과정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물론 바티모는 '모든 강한 진리가 약화되어가는 과정'으로 허무주의의 도래를 긍정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면 "세속화"되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아무말이나 괜찮다는 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 바티모는 하이데거의 사유로부터 우리의 해석이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이미 서 있는 역사와 전통과 맥락으로부터 끊임없이 응답할 것을 요구받고 그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해석적 공동체 내에서 언제나 더 나은 대답 - 곧 해석을 위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오늘 우리게 가장 나은 응답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바티모는 이런 해석 과정이 어떠한 기준도 없이 이뤄지는 난상토론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유일하게 '세속화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메세지, 바로 사랑(charity)은 해석적 공동체를 이끌어주는 기준으로서 작용한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전통 - (성서, 예전, 교리 등)과 창조적으로 대화하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또 해석할 것을 요청하는 역사를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해석하며 또 실천해나가는 자로 부름 받는다. 이렇게 강요와 억압, 독단성과 오만으로 점철된 형이상학적 진리 주장을 벗어나, 독단을 허무는 해방, 강함을 무너트리는 약함, 소외되어있는 목소리를 일깨우는 사랑의 실천으로 새로운, 그러나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신앙의 언어는 회복된다.

결국 성서 해석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예전와 전통과 신학과 신앙이 '어떻게 주의 뜻대로 살아가느냐'하는 해석의 문제다. 그리고 너무나 명확하게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의 해석에 따르면) 주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이웃을 사랑할 것으로 귀결된다. 화자는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전히 "비록 헤어진" 상태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구성하고 삶의 많은 기억을 형성해낸 성경의 내러티브는 화자가 삶을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영향을 미치며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해석으로 그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비록 성경 말씀의 문자를 직접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체화된 말씀 - 혹은 화자의 삶으로 성육한 말씀은 (바티모의 표현에 따르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하도록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은 귀하고 귀하다. 심지어, 헤어진 자들이나, 만나지도 않은 자들에게까지도, 거칠게 표현하자면 모두에게 성서의 말씀은 귀하고 귀해질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이해할 때 디트리히 본회퍼가 구상한 것처럼 성서와 그리스도교 전통은 비-종교적으로, 그러나 신앙의 언어를 부활시키는 방식으로 생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서울: 복있는사람, 2016), 256.

(2) 본회퍼는 비종교적 세상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면서 전적으로 '비종교적인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교'를 그 답변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그가 구상한 비종교적 그리스도교(Nonreligious Christianity)는 더 이상 이전의 '종교적' '형이상학적' 진리를 고수하거나 또는 아예 주관성으로 빠져버리는 실수를 반복하는 기독교가 아니었다. 이 두가지 선택 모두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 두가지 선택을 강요하는 근대 인식론적 도식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했다. 즉, 한쪽으로는 객관, 보편, 과학의 시험을 그리스도교 신앙이 통과해야한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한쪽으로는 이 시험의 요청에 응하지 않기 위해 단지 주관적인 영역에 머물러야한다는 주장으로 대략 16-18세기의 그리스도교 사조를 거부해야한다는 것이다.(시대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 대략적이다.) 이는 본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치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그러나 본회퍼의 진짜 의도는 역설적으로 '신앙의 언어가 부활하는 것'에 대한 사유에 있었다. 이는 "아마도 전적으로 비종교적일" "예수님께서 쓰셨던 언어처럼 해방과 구원의 힘을 가진 새로운 언어" 로서 신앙의 회복이다. 그러한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내는 그리스도교, 그러나 그것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과 유익을 주면서 관여"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그리스도교였다.

(3) 대표적으로 이른바 6-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사신死神신학(Death of God Theology)자들, 곧 하비 콕스, 알타이저나 해밀턴같은 사람들은 본회퍼에게 깊게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에서 종교를 제거하고 그 의미를 살려보려는 대담한 시도를 펼친다. 다만, 각각은 그 나름의 시도를 통해 돌파구를 발견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알타이저는 헤겔을 차용하여 변증법적 과정에서 신의 죽음으로 인간과 합일되는 도식을 만들어냈으나 여전히 근대적이고 인식론적 사고구조에 갇혀있는 지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이후 존 카푸토나 리처드 커니와 같은 종교철학자들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또 제임스 스미스와 같은 학자는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를 주장하며 앞서 문제가 되었던 그리스도교의 인식론적 전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사람이 바티모기에 깊게 다루지는 않겠다.

(4) Gianni Vattimo, After Christian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63. 텍스트 내에 감춰져있는 고정된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필자보다 글을 더 잘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창조적 해석 과정이다. 이제 텍스트에 고정불변하는 의미가 감춰져있고 해석자는 이를 충실히 되풀이하는 것을 넘어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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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거의 30년 가까이 저 찬송가 첫 구절이 “헤어졌으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머님 유품으로 땅에 묻어서 헤어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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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해졌다고하지 해어지다고 안해서 그런거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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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소한 부분이지만, 여기서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일단, (a) 원문이 "the productiveness of interpretation"이다 보니, "생산적 해석"보다는 "해석의 생산성"으로 번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b) 해당 내용은 63쪽이 아니라 62쪽에 등장하는 내용이더라고요. 아울러, (c) "필자보다 글을 더 잘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슐라이어마허의 고전적 해석학의 목표이다 보니, '창조적 해석 과정'을 수식하는 표현으로는 약간 부정확하지 않나 해요. 오히려 가다머는 "더 잘" 이해하는 것보다는 "다르게"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평가하거든요.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약간 논쟁이 있는 점이긴 해요. 일단 "저자만큼이나 그리고 저자가 자기 자신을 이해했던 것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라는 표어 자체는 슐라이어마허가 강조한 것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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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주의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보니 메모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페이지를 잘못기재했네요.. 번역은.. 무식해서 그럽디다.

말씀하신대로 바티모는 슐라이어마허를 염두에두고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By the productiveness of interpretation, I mean that interpretation is not
only an attempt to grasp the original meaning of the text (for example, the authorial intention) and to reproduce it as literally as possible but also to add something essential to the text (to understand it better than its author, the adage resonating in eighteenth-century hermeneutics).
Gianni Vattimo, After Christianity, 62-63.

제가 처음에 "필자보다 글을 더 잘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창조적 해석 과정"으로 해석의 생산성을 적은 이유는 뭔가 essential한 것을 텍스트에 더하는 해석이라는 바티모의 표현이 일종의 '창조적'인 과정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창조적'이라는 표현은 제가 제 생각대로 정리하면서 세심하지 못하게 사용한 단어인 것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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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헤어지다’라고 알고 불렀는데... 충격적이네요. 저는 ‘책이 헤어지다’가 너무 이상하게 보여서 ‘헤아지다’의 목적어가 ‘어머니’인 줄 알았어요.... 어머니와 헤어진 먼 훗날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는 가사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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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티모 자신이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한다"라는 표현을 긍정적인 의미로 썼군요. 그렇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 표현을 '창조적 해석 과정'에 적용시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가다머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가다머는 "저자의 말을 저자 자신과 대등하게, 나아가서는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슐라이어마허의 표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쓰면서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주의 해석학과 가다머 자신의 철학적 해석학을 대비시키니까요. 그리고 이런 가다머의 견해가 이후 현대 해석학의 주류가 되었다 보니, 일반적으로는 슐라이어마허의 표어가 현대 해석학과는 상충하는 것으로 여겨지죠.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이런 대비가 잘 나타나죠.

"사후적 이해가 원래의 창조행위에 비해 원칙적으로 더 우위에 있고 따라서 텍스트를 원저자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슐라이어마허가 생각한 대로) 원저자와 대등해질 수 있는 사후적 자각에 의해 가능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자와 원저자 사이에 역사적 간격으로 인하여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생겨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제2권, 임홍배 옮김, 문학동네, 2012, 178쪽.)

"이해라는 것은 실제로 원저자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원저자보다 좀더 명확한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에서도 아니고, 또 저자의 의식상태보다 더 각성된 의식을 지녔다는 원칙적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할 때는 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정도까지만 말해두기로 하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제2권, 179쪽.)

"저자만큼"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든지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든지, 슐라이어마허를 포함한 기존 해석학은 모두 '저자'를 기준으로 이해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즉, (a) 텍스트의 의미란 저자의 주관성 속 어딘가에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고, (b) 이해란 그 고정된 의미를 발견해내는 작업이고, (c) 이해의 정도란 그 고정된 의미에 얼마나 가깝게 도달하였는지에 따라 평가된다는 것이 기존 해석학의 전제들이었다 보니, 저자조차도 자신의 주관성 속에 있는 의미를 다 못 파악할 수 있고, 오히려 해석자가 그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이 슐라이어마허의 견해였죠.

하지만 애초에 '저자' 혹은 '저자의 주관성'이 이해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가다머의 입장에서는 "저자만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두 주관주의에 빠져 있을 뿐이잖아요. 의미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저자의 주관성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닌 이상, 의미의 이해에서 '저자'를 강조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가다머는 모든 이해가 "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 때문에,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의 표어까지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거죠.

하지만 가다머의 이런 주장이 반드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령, (a) 앤서니 티슬턴은 『두 지평』이라는 책에서 가다머조차도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기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또한 (b) 로티는 "Being That Can Be Understood Is Language"라는 논문에서 "어떤 것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더 많은 말할 거리를 지닌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더 잘"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아예 긍정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해 버리기도 하고요.

아마도 바티모도 로티와 유사한 입장에서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한다는 표현에 긍정적인 함의를 부여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적어도 바티모의 텍스트를 해설할 때는, 저 표현을 사용해서 '창조적 해석 과정'을 수식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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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읽으니 버트런드 러셀의 일화가 하나 떠오르네요.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지은 것으로도 당대에 잘 알려진 무신론자였지만, 자서전에서는 자신의 할머니가 남겨주신 성경의 한 구절이 인생의 큰 지침이 되었다고 고백하더라고요.

[…] 내가 결혼한 후에 정말로 할머니께서 작고하셨을 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내 인생관의 형성에서 그분이 지닌 중요성을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깨닫곤 했다. 그분의 두려움 없는 태도, 공공 정신, 인습에 대한 경멸, 다수의 의견에 대한 무관심이 내게는 늘 좋게 보였으며, 따라해 볼 만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할머니는 내게 성서를 한 권 주셨는데, 표지 안쪽 여백에 당신이 좋아하셨던 성구들이 적혀 있었다. 그 중에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란 구절도 있었다. 할머니가 이 구절을 강조하신 덕분에 훗날 나는 소수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 『러셀 자서전』, 상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03, 28-29쪽.)

몇 달 전에는 전투적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자기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cultural Christian)'이라고 직접 규정한 것도 들은 적이 있네요. 자신은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지만, 찬송가와 크리스마스 캐롤을 좋아하고, 영국 사회의 기독교적 에토스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고 하면서요. (지금 보니, 인터뷰 제목 자체가 놀랍게도 "기독교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끔찍할 것이다."네요. 영국이 이슬람화되는 경향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인 것 같은데, 음… 개인적으로는, 제가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도킨스 같은 생물학자가 이런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르겠고, 이슬람에 대해 도킨스가 보여주는 적대적인 태도도 과연 정당한지 모르겠습니다.)

I do think we are culturally a Christian country. I call myself a cultural Christian. I’m not a believer, but there is a distinction between being a believing Christian and a cultural Christian. I love hymns and Christmas carols and I sort of feel at home in the Christian ethos, and I feel that we are a Christian country in that sense.

여하튼 러셀과 도킨스의 사례를 보면, 기독교가 전투적 무신론자들에게조차도 강력한 문화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하려는 사람들조차도 성경의 이야기와 찬송가의 구절들에 감동을 받으니 말이에요. BuenCamino님의 표현대로라면, 성경과 "헤어진" 사람들조차 성경을 "귀하고 귀하다"고 고백하는 게 신기한 거죠.

하지만 저는 굳이 성경과 헤어질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의심스러워요. 저는 오늘날의 과학, 철학, 역사학의 성과들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진리들을 전혀 무너뜨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요. 오히려 언제까지나 강력할 것만 같던 불트만의 양식비평이나 비신화화 이론은 1950년대 이후로 상당한 비판을 받아서, 오늘날에는 성서가 단순히 '신화'라는 주장들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까지 하니까요. 심지어 지난 20년 사이에 이루어진 비교적 최근의 연구들은 복음서들 중에서 역사성이 제일 떨어지는 것으로 그동안 평가받았던 요한복음조차도 '역사적 전승'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성서와 굳이 헤어지지 않더라도, 오히려 정통 신앙에서 아무것도 제거하지 않고서도 기독교의 문화적 힘을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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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달려했는데 어떻게하는지 몰라서 지웠네요... 근데 최근에 쓴 글과 너무 유사하다고 다시 못쓰는중... 이거 어떻게 푸나요..

....

오 살아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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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세상에 어머니와 헤어진 것도, 성경과 헤어진 것도 아니고 이중피동을 써서 성경책이 낡았다는 가사였다니...
처음에는 "설사 '헤어짐'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성경을 심히 사랑한다.'는 후렴구를 통해 화자는 여전히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의 얘기들을 쭉 읽어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세속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도 교회에 꾸준히 출석을 안한지 벌써 3년이 되가고 있고 199장의 (헤어진) 화자처럼 그저 그때 내가 신앙심이 강했지, 부모님이 해주신 얘기였지라고 하는...그런 사람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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