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슈토이프, 『현대 인식론 입문』 4장 "인식적 정당성 개념" 문제풀이

연구문제

  1.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이 사용하는 규범성 개념과 비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이 사용하는 규범성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에 있어 규범성이란 "의무" "책무" "허용" "면책"과 같은 의무론적 개념과 연관돼있는 개념이다. 지식의 규범성이란 진리를 추구하고 허위를 피하는 인식론적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에서 파생되는 의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반면 비의무론적 정당성에 있어 믿음의 정당화에 적용되는 규범성은 의무론적 개념이 아닌 좋음 내지는 적절함의 층위에서 논의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정당성은 옳고 그름이 아닌 인식적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좋다, 나쁘다 수준의 가치평가에 머무른다.

  1. 왜 옳은 것을 믿고 그른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식적 의무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일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가진 증거가 오도적일 경우 옳은 것을 의심하고 그른 것을 믿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시계가 고장났고, 우리에게 시계가 고장났다는 증거가 없는 경우 우리는 시계가 보여주는 시간이 맞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는 그른 믿음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식적 의무를 위배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옳은 것을 믿고 그른 것을 믿지 않는 것 자체는 인식적 의무가 아닌 인식적 목표로서 인식적 의무들의 근거 역할을 해야 한다.

  1. 개개의 모든 명제 p에 대에 대하여 p가 옳을 경우에,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p를 믿어야 한다는 말에 문제가 되는 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일반 사실,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가령 "발울은 취미로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안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인식적 관심사일 수 있다. 그래서 제시된 명제는 "나에게 문제가 되는 개개의 모든 명제 p에 대하여 p가 옳을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p를 승인하는 것이 지적 존재로서 나의 목표다"라고 수정돼야 한다.

  1. 어떤 철학자들에 따르면, 믿음은 언제나는 아니라도 대부분 비의지적 사건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비의지적 믿음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 S가 p를 의지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오직 S가 p를 믿고, S가 p를 믿지 않을 수 없을 때에만 그렇다. 그런데 지각적 믿음이나 내성에 의한 믿음은 바로 이런 비의지적 믿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공에 맞아서 "나는 통증을 느낀다"라는 믿음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 믿음은 내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비의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성적 사실로 보인다.

  1. 만일 믿음이 대부분 또는 심지어 언제나 비의지적이라는 말이 옳다면, 왜 그것이 의무론적 연구 방식에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비의지적 믿음들은 의무론적 정당성 개념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의지성 원리 때문이다. 의지성 원리란 "만일 내가 p를 믿는 일이 비의지적이라면, 나는 p를 믿어야 할 인식적 의무도 가질 수 없고 p를 믿지 말아야 할 인식적 의무도 가질 수 없다"라는 것인데, 비의지적 믿음이 존재하며 그것이 대부분 내지는 모든 믿음에 대해 그렇다는 것도 참이고 의지성 원리도 참이라면 우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은 타격을 입게 된다.

  1. 펠드맨은 믿음 비의지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위에서 우리는 비의지적인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의지성 원리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펠드맨은 후자를 포기하고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즉, p를 믿거나 p를 믿지 않는 것이 비의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식적 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논리적 기호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의 발작은 비의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호논리학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기호를 익혀야 한다는 의무가 변하지는 않는다. 펠드맨은 인식적 의무는 이런 교육상의 요건과 아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인식적 목표는 각 주체의 인식 능력과 별개로 증거에 따라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주장할 경우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을 간단하게 구하고, 적극적인 인식적 의무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을 옹호하는데도 유용해진다.

  1. 의무론적 연구 방식의 옹호자는 믿음이 대부분 또는 심지어 언제나 비의지적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는가?

펠드맨과 달리 다른 의무론적 연구 방식의 옹호자들은 의지성 원리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의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을 옹호하고자 할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은 두 가지 단계의 논의를 제시한다. 먼저, 믿음의 정당성에 대한 다음의 정식화를 보자. : "S가 p를 믿는 일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1) S가 의지적으로 p를 믿는데, (2) p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S의 인식적 의무는 아닐 경우에만 그렇다." 여기서 이들은 먼저 믿음이 정당화 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논리 기호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강박증세에 의해 이순신이 살아있다고 믿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았으므로 본인들의 이론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없다. 반면 지각과 내성에 의한 비의지적 믿음의 경우에는, 충분히 정당화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먼저 그들은 약한 비의지성과 강한 비의지성을 구분한다. 전자는 인식 주체의 지적 능력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경우고, 후자는 인식 주체의 지적 능력이 망가지거나 상실된 경우이다. 전자의 상태에서 얻은 지식은 비의지성이 포함돼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을 믿을 인식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고, 오직 이럴 경우에만 인식적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8&9. 올스턴은 왜 의무론적으로 정당화되는 믿음이 필연적으로 진리 공헌적 믿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올스턴은 적합한 근거라는 개념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진리 공헌적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보자. 올스턴에게 있어서 믿음이 진리 공헌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 지식의 근거가 되는 믿음이 옳다는 것을 충분하게 드러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근거는 그 근거가 주어질 경우 옳음을 보이고자 하는 원 믿음이 옳을 개연성이 아주 높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무론적 정당성은 이런 개연적이도록 하는 근거 없이도 의무론적 정당성을 가지도록 할 수 있다. 그래서 올스턴은 의무론적으로 정당화되는 믿음이 진리 공헌적 믿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 문제에서 다룰 개연성에 대한 논의에서 제시된다.

  1. 사실적 개연성과 인식적 개연성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사실적 개연성이란 객관적 개연성이다. 물리적 세계의 자연법칙, 객관적 사실에 의해 결정되는 개연성이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나 믿음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식적 개연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에 따라 우리가 믿음이나 명제에 부여하는 정당성의 정도를 의미한다. 즉, 주관적 개연성이다. 의무론적 정당성 개념은 인식적 개연성을 지지한다. 즉, 주체에게 주어진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반면 올스턴은 인식주체의 능력이나 주어진 증거와는 무관하게 세계에 주어진 사실에 적합한 믿음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어떤 믿음이 의무를 잘 따랐다, 못 따랐다가 문제가 아닌 객관세계에 얼마나 잘 들어맞았는지만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스턴이 의무론적 정당성 이론이 진리 공헌적이지 않다, 진리 개연성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할 때의 개연성은 사실 개연성이다.

연습문제

  1. 진리에 도달하고 오류를 피하는 일이 적절한 인식적 목표인지 논의하라.

이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는 간단한 초월적 논증을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의사소통이 성립한다. (회의론자들도 받아들일 전제)

(2) 의사소통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거짓이 구분돼야 하고, 여기에서 인식적 목표가 나타난다. (회의론자가 받아들인 전제가 성립하기 위한 초월적 조건 내지는 초월적 지식)

(3) 따라서 진리에 도달하고 오류를 피하는 것은 적절한 인식적 목표이다.

  1. 그른 것을 믿는 것이 당신의 인식적 의무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기술하라.

만약 전쟁 중에 적국의 스파이라고 믿을 증거가 많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실제로는 스파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를 스파이로 간주하는 것이 인식적 의무일 것이다. 이 경우 사실적 개연성에 있어서는 정당화가 실패했지만, 인식적 개연성에 있어서는 정당화됐다고 할 수 있다.

  1. 인식적으로 정당화되는 믿음이 적합한 근거에 기초를 둘 수 없다고 주장한 점에서 올스턴이 올바른지 논의하라.

나는 올스턴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올스턴의 주장은 지식과 믿음의 활용에 있어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믿음과 지식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인식적 주체에게 주어진 증거에 국한되는 것이지 그것과 별개인 객관적 사실, 세계의 사실이 실은 달랐다고 해서 그 자체로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어떤 사람이 스파이가 아니라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만약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인식 주체에게 증거로 제시됐을 것이고, 그럴 방법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식 주체와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심스럽다. 모든 지식은 인간 연관적이고 인간의 논리적 공간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지 인식과 완전히 별개인, 알려지지도 않은 사실이라는 개념은 인간사에 어떤 유용한 결과도 낳지 못하고, 해명하기도 어려운 마술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수용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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