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키르케고르 연구소 및 키에르케고어 학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키에르케고어 학회 가을 정기 학술 컨퍼런스가 세종시에 있는 키르케고르 연구소에서 열렸다 보니, 기차를 타고 세종시까지 다녀왔네요.
사실, 학회도 학회이지만, 키르케고르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청년 모임이 저에게는 메인 이벤트였습니다. 키에르케고어가 기독교 철학자이다 보니, 기독교인 20-30대들 중에 독자층이 많아서 1박 2일로 모임이 이루어졌거든요. 키르케고르 연구소의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뵙고, 하루 종일 키르케고르 이야기, 기독교 이야기, 철학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키르케고르를 좋아하시는 분들, 게다가 키르케고르의 저작들을 깊이 있게 읽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전공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데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놀라울 만큼 키르케고르를 깊이 이해하시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전공이 철학이고, 그것도 박사 과정까지 철학을 공부했고, 키르케고르를 좋아해서 그동안 저작들을 꽤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번 모임을 통해 제가 간과하거나 놓쳤던 키르케고르의 면모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주로 철학적인 측면에서 키르케고르를 읽었다 보니, 키르케고르의 세세한 심리학적 통찰이나 기독교적 교훈들 중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주목하지 못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오히려 철학을 전공하지 않으신 분들이 일상의 경험이나 신앙의 경험을 바탕으로 키르케고르의 작품을 독해하였을 때, 저처럼 이론철학의 논의에 편중된 전공자가 독해하는 것보다도 키르케고르에게서 훨씬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요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에 가서 그동안 읽은 적이 없었던 키르케고르의 『그리스도교의 훈련』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임 둘째 날인 오늘(9일)은 서강대 은퇴교수님이신 강영안 교수님도 연구소에 방문하셨습니다. 강영안 교수님이 연구소 소장님이신 오석환 목사님과 아는 사이셔서, 목사님을 만나러 오셨다가 예정에 없이 우연히 청년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신 것 같더라고요. (저도 거의 10년 전 서강대 학부 시절에 강영안 교수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뜻밖의 만남에 저도 신기했고, 교수님도 “어? 몇 년만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하튼, 강영안 교수님이 즉석으로 철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강의도 해주셔서 모두 유익하게 들었습니다.
학회 발표는 키에르케고어의 변증법 개념과 스위스의 현대신학자 칼 바르트의 변증법 개념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런던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튀빙겐에서 포스트 닥터 과정 중이신 오순석 박사님이 발표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에 대한 바르트의 논의는 종교성 A 단계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논의로부터 차용한 것이지만, 키에르케고어는 질적 차이보다도 종교성 B 단계에서 일어나는 상보적 변증법을 더욱 강조한다는 것이 발표의 주된 요지였습니다.
서울에서 세종까지 오고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참석해서 얻어가는 것이 많네요. 철학과 신앙에 대해 비슷한 또래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키르케고르 공부에도 많은 자극을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덤으로 키르케고르 머그컵까지 하나 얻어 올 수 있어서 좋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