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카트라이트의 책 How the Laws of Physics Lie의 서문을 읽었는데, 매우 재미있네요. 카트라이트는 과학적 실재론에 반대하여 '시뮬라크룸(simulacrum)' 설명을 내세웁니다. 쉽게 말해,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이란, 그 현상에 대한 모델을 구성하는 작업일 뿐, 실재에 대한 하나의 '올바른' 정답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죠. 카트라이트의 설명을 직접 인용하자면,
"포괄적 법칙 설명(covering-law account)이란, 원리적으로, 각각의 현상에 대한 하나의 '올바른' 설명이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시뮬라크룸 설명이란 이러한 입장을 거부한다."(Cartwright, 1983: 17)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트라이트는 과학적 이론을 통해 현상 뒤편의 실재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허구라고 지적하죠. 현상 너머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곧 "우리가 손에 쥐어야 하는 실재 이외의 더 나은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Cartwright, 1983: 19)라는 것이 카트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프랑스적' 정신과 '영국적' 정신 사이의 대비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기도 하죠.
"이 논문들의 근본이 되는 형이상학적 그림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의 풍부함과 다양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믿음이다. 사물들은 오직 우리가 그것들을 매우 가까이서 검토하지 않을 때에만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피에르 뒤엠은 두 종류의 사상가들을 구분하였다. 심오하지만 좁은 프랑스적 정신과 넓지만 얕은 영국적 정신으로 말이다. 프랑스적 정신은 사물들을 우아하고 통일된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 정신은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아름답고, 추상적인 라그랑주적 역학의 계산으로 만든다. 영국적 정신은, 뒤엠에 따르면, 정확하게 반대이다. 그 정신은 기어 조각들과 도르레들을 설계하고, 줄들이 엉키지 않도록 한다. 그 정신은 더 추상적인 질서나 조직을 부여하지 않고서도 수천 가지의 서로 다른 세부 사항들을 동시에 생각한다. 실재론자와 나 사이의 차이는 거의 신학적이다. 실재론자는 우주의 창조자가 프랑스적 수학자처럼 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신이 영국의 너저분한 정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Cartwright, 1983: 19)
그래서 과학적 반실재론을 지지하는 저는, 오늘부터 하나님이 영국인이라고 믿기로 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