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 1장

이전에 얘기 꺼낸 김에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1장을 요약했습니다. 1장 이후의 글들은 1장의 논의를 반박/비판/보충하기 위한 글들입니다.


1장. 재분배에서 인정으로?: 포스트사회주의 시대 정의의 딜레마(24-68)

사회 정의에 대한 두 개의 구상이 있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재분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사회주의·다문화 시대에 도래한 문화적 인정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두 문제 중 하나만을 직시하는 정의 혹은 이론은 불충분하다. 우리는 양자 모두를 옹호하는 비판적 인정 이론을 발전해야 한다. 즉, 경제적 부정의와 문화적 부정의라는 두 가지 부정의에 동시에 대항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항하는 것이 모종의 딜레마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1절. 재분배-인정 딜레마

부정의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두 부정의는 다른 집단에 비해 몇몇 집단의 사람에게 체계적 불이익을 가하는 과정과 실천에 뿌리내리고 있다. 물론 두 부정의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나, 개념적·분석적으로 둘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의 정치-경제 구조에 뿌리 내린 사회경제적 부정의다. 착취, 경제적 주변화, 박탈이 그 예이다. 두 번째는 문화적·상징적 부정의다. 문화적 지배, 불인정, 경시가 그 예이다. 이 두 부정의가 얽혀 있는 이유는, 편견적인 문화적 규범은 국가와 경제 속에 제도화되어 있고, 동시에 경제적 불이익은 특정 문화 만들기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 결과 문화적 종속과 경제적 종속은 악순환을 이루게 된다.

부정의가 개념적으로 둘로 나눠지는 이상, 각각에 대응하는 개선책도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부정의에 대한 개선책은 특정한 유형으로 정치-경제를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문화적 부정의에 대한 개선책은 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식으로 문화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두 개선책을 총칭하는 말로 각각 ‘재분배’와 ‘인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언급한 개선책은 상당히 얽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 정의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인정 주장과 경제 부정의의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재분배 주장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고, 또 두 주장이 동시에 제기될 때 발생하는 상호 방해는 무엇인가?

2절. 착취당하는 계급, 경멸받는 섹슈얼리티, 그리고 이가적 집단

한 사회 집단의 스펙트럼을 나열하면, 한 극단에 분배 정의 모델에 부합하는 이념적 집단 유형이 있고 다른 극단에는 인정 모델에 부합하는 이념적 집단 유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두 모델 모두에 영향을 받는 이가적 집단이 있을 것이다. 이 세 스펙트럼이 요구하는 이념적 개선책 또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회경제적 부정의에 영향받아 재분배를 요구하는 집단. 이들 집단이 겪는 부정의의 핵심은 사회경제적으로 잘못된 분배다. 문화적 부정의를 겪긴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들이 겪는 부정의의 개선책은 정치-경제적 재분배이다. 이런 집단의 대표적 예시는 맑스적 피착취 계급이다. 이들이 보기에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핵심은 정치-경제 구조, 즉 계급화이다. 그래서 이들이 요구하는 정치-경제적 재분배는 착취 받는 집단(프롤레타리아)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달리 말해, 부정의에 영향받는 특수 집단을 없애는 것이 개선책이다.

둘째, 정치-경제가 아닌 문화적 부정의에 영향받아 인정을 요구하는 집단. 이들 집단이 겪는 부정의의 핵심은 문화 평가 구조에 있다. 이들도 사회경제적 부정의를 겪긴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개선책은 정치-경제적 재분배가 아닌 문화적 인정이다. 이런 집단의 대표적 예시는 경멸받는 섹슈얼리티 집단이다. 이들이 보기에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핵심은 문화적 구조, 이러저러한 섹슈얼리티에 동등한 존증을 부여하지 않고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 평가이다. 그래서 이들이 요구하는 인정이란 성적 특수성에 대한 긍정적 인정이다. 달리 말해, 부정의에 영향받는 특수 집단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개선책이다.

셋째, 위 두 이념화된 집단 중간에 있는 이가적 집단. 이들 집단이 겪는 부정의는 정치-경제 구조와 문화 평가 구조 양자와 연관되어 있다. 두 원인 모두 일차적이고 동근원적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들은 재분배와 인정 모두를 요구한다. 이런 집단의 대표적 예시는 젠더와 인종 집단이다.

그런데 재분배가 집단 특수성을 없애는 시도이고, 인정이 집단 특수성을 인정하는 시도라면 두 개선책을 모두 요구하는 자들은 재분배-인정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예컨대, 페미니스트들은 젠더 차이를 없앨 수 있는 정치-경제적 개선책을 추구하면서도 경멸받는 집단의 특수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 평가적 개선책을 추구해야 한다. 인종차별 반대자들은 인종 차이를 없앨 수 있는 정치-경제적 개선책을 추구하면서도 경멸받는 집단의 특수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 평가적 개선책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3절, 긍정이냐 변혁이냐: 개선책에 대한 재고

우선 부정의에 대한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긍정’과 ‘변혁’의 차원으로 나눈 후. 각각이 재분배 및 인정과 어떻게 관련해서 작동하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분배-인정 딜레마를 해결할 방도를 찾을 것이다.

정의에 대한 긍정적 개선책이란 불공정한 결과를 창출하는 근저의 틀은 손대지 않은 채, 그 틀이 만드는 결과를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변혁적 개선책은 근저의 틀을 손댐으로써 결과를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1) 문화적 부정의에 대한 개선책

  • 긍정: 집단적 정체성의 근저에 놓인 정체성의 내용과 집단적 분화는 놔둔 채, 부당하게 평가절하된 집단 정체성의 가치를 재평가하여 경시를 교정한다. ex) 게이와 레즈비언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 기존의 성적 집단 분화를 안정화

  • 변혁: 문화 평가 구조를 변혁하여 존중 박탈을 개선한다. ex) 동성-이성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 집단 분화의 틀을 탈안정화

(2) 사회경제적 부정의에 대한 개선책

  • 긍정: 생산 체계를 재구조화하지 않은 채 경제적으로 불이익 받는 경제적으로 불이익 받는 집단의 소비 몫을 증대한다. ex) 사회 재생산 비용 일부 제공 → 계급 분화를 지탱 및 형성
  • 변혁: 정치경제 구조를 변혁하여 불공정한 분배를 개선한다. ex) 완전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는 거시 경제 정치 → 계급 분화를 희석화

한편, 긍정적 재분배 개선책은 자기모순을 일으키는 듯하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원조를 목표로 하는 긍정적 재분배 개선책은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는 계급은 만족을 모르고, 본래적으로 결함 있는 집단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며, 심지어 특권화된 집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즉, 긍정적 재분배 개선책은 인정 부정의를 산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것이 자기모순인 이유는 긍정적 재분배 개선책은 ‘보편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나, 보편주의를 해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듯하기 때문이다. 반면, 변혁적 재분배 개선책은 자기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보편주의에 기반한 변혁적 재분배 개선책의 결과는 보편주의 이념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긍정적 재분배 개선책이 계급 분화 촉진을, 변혁적 재분배 개선책이 분화의 희석화라는 다른 사회경제적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서로 다른 인정 역학을 자아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무시 혹은 낙인을 유발하지만, 후자는 연대를 촉진한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다면 어떤 개선책의 조합이 재분배와 인정이 동시에 추구되는 발생할 수 있는 상호 방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

4절. 딜레마 해결 방책 고안하기: 젠더와 인종에 대한 재고

이상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된다.

위 표는 주류 다문화주의를 복지국가의 문화적 유사물로, 해체주의를 사회주의의 문화적 유사물로 채택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개선 전략들의 상호 양립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다.

(1) 무엇보다 조합 ① & ④와 조합 ② & ③은 가망이 없다. 두 조합은 내적으로 반목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 조합 ① & ③은 집단 분화를 촉진하는 경향을, 조합 ② & ④는 집단 분화를 폐기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망이 있다.

그러나 조합 ① & ③의 경우, 재분배-인정 딜레마를 해결하기에는 난점을 가지는 듯하다. 예를 들어, 해당 전략은 사회경제 차원에서 여성에게 현존하는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분배할 것을 강조한다. 이 개선책은 앞서 논한 것처럼 인정 부정의라는 반발을 초래할 위험을 지닌다. 여기에 조합 ① & ③이 추구하는 문화적 개선책이 더해지면, 해당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즉, 남성 중심적 규범을 약화하는 진보는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젠더화된 남성/여성 구분을 철폐하지 않기에 인정 부정의라는 반발에 기름을 붓게 된다.

반면, 조합 ② & ④는 재분배-인정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있어 비교적 더 가망이 있다. 해당 조합은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혹은 사회민주주의 페미니즘 개선책을 택할 것이고, 문화적으로는 해체주의 페미니즘 개선책을 택할 것이다. 두 차원의 개선책은 조합 ① & ③과 달리 모순을 이루지 않는다는 강점을 지닌다.

하지만 조합 ② & ④는 한 가지 결함을 가진다. 그것은 해체주의 페미니즘의 문화 정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경제 정치가 현재 문화적으로 구성된 여성 대부분의 직접적 이해관계나 정체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은 인종의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인종이라는 이가적 집단을 다룰 경우에도 조합 ① & ③은 인정 부정의 발생의 문제와 기름을 붓는 문제를 일으키나, 조합 ② & ④는 그렇지 않다. 다만, 조합 ② & ④, 즉 해체주의적 반인종주의의 문화 정치와 사회주의적인 반인종차별주의의 경제 정치가 현재 문화적으로 구성된 유색인 대부분의 직접적 이해관계나 정체성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문제를 겪는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다음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경제적 사회주의와 문화적 해체주의의 조합은 젠더와 인종으로 대표되는 이가적 집단이 겪는 재분배-인정 딜레마를 완전히 말끔히 해결할 방법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5절. 결론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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