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문헌들 스레드

철학사, 특히 20세기 이후의 철학사에서 논문 중심으로 문헌 목록이 구성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특히 분석철학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죠. 아무 분석철학 논문을 하나 집어서 서지목록 면을 보면 (북 챕터를 포함해) 논문 수준의 짧은 문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그런데 그 중에는 특히 짧은 것들도 있습니다. 에드문드 게티어의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Gettier 1963)가 대표적이죠. 단 세 쪽으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강력한 파급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yhk9297 님이 공유해 주신 “Can there be vague objects?”(Evans 1978) 역시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꼴랑 한 쪽 짜리 글인데, 대상적 모호성이란 불가능함을 빠르게 논증하고 있죠:

이 스레드에서는 유사한,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논문들을 모아볼까 합니다. 5쪽 내외 또는 이하로 이루어진 논문들이 있다면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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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작하겠습니다. 마크 제이고의 “A Short Argument for Truthmaker Maximalism”(Jago 2020)입니다:

제이고는 이 논문에서, 어떠한 참인 명제에 대해서건 진리확정자가 존재한다는 진리확정자 최대주의를 논증합니다.

놀라운 것은, 본격적 논증은 반 쪽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에요. 다섯쪽 중 한 쪽은 서지 정보, 반 쪽은 서론, 반 쪽은 반론 검토, 반 쪽은 결론, 두 쪽은 preliminaries로 구성되거든요.

그런데도 (여덟 줄로 끝나는) 논증 자체는 아주 강력하고, 철학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형식적 논증의 파괴력과 우아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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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의 "Idealizations, Foundations, and Social Practices"는 3쪽 짜리입니다. 주석도 하나도 없구요 ㅋㅋ

내용은 이하의 글로 대체합니다. R. Rorty, 「Idealization, Foundations, and Social Pract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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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가 강하다거나 영향력이 큰 논문은 아니지만

Archie. L. C., “A Simple Defense of Material Implication”,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Vol. 20(2), 1979, 412-414.

라는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교양 논리학 시간에 배우는 실질함언의 진리표에 대해 의문점을 해소해 준 논문이라서요. 왜 전건이 거짓일 때 실질함언 전체가 참이 되는지를 논증하면서, 일상의 직설법적 조건문이 실질함언으로 번역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직설법적 조건문과 실질적 함언: 리 C. 아치, 「실질적 함언을 위한 간단한 옹호」
https://blog.naver.com/1019milk/22164422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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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 논문들을 올려봅니다.

(1) Carroll, Lewis, 1895,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 Mind, 4(14): 278–280.

https://philpapers.org/rec/CARWTT-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캐럴의 전설적인 논문들 중 하나죠. 아킬레스와 거북이 비유를 사용하여 연역의 문제를 다루는 3쪽짜리 논문입니다. 위키피디아에 이 논문에 대한 설명도 있죠.

(2) Lewis, D. K., and Lewis, S. R., 1970, "Holes", Australasian Journal of Philosophy , 48: 206–212.

https://philpapers.org/rec/LEWH

구멍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를 다룬 유명한 논문이죠. 6쪽이라 다소 긴(?) 논문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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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Holes 얘기를 할라다가 6쪽이길래 뺐습니다. 너무 기네요.(?)

Prior, Arthur (1967). The runabout inference ticket. In Peter Frederick Strawson (ed.), Philosophical logic.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pp. 38-9.

https://philpapers.org/rec/PRITRI

논리학, 특히 모델 없이 논리 체계를 추론 규칙을 통해 설명하려는 추론주의(슬로건: "논리 상항의 뜻은 그 추론 규칙이다")와 관련해서 큰 영향을 남긴 2쪽짜리 논문입니다. 즉, introduction rule 이 A에서 A•B이고, elimination rule이 A•B에서 B인 '•' (‘tonk’이라고 읽습니다)를 우리가 도입한다면, 어떤 명제에서 그 무슨 명제라도 따라나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논리 상항은 물론 정당화되지 않겠지만, 단순한 추론 규칙 안에서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논리에서의 Harmony 관련된 논의가 이 논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논리학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제대로 설명한 게 맞는지 확실치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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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위의 댓글에서 '아서 프라이어'라는 이름을 보니 생각난 게 하나 더 있네요.

(3) Frank Jackson, 1977, “Statements about Universals”, Mind, Vol. 86(343): 427-429.

추상적 단칭어를 포함하는 문장들이 개별자에 대한 진술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바탕으로 보편자 실재론을 비판하는 프랭크 잭슨의 논문입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제가 발제를 맡았는데, 전문을 번역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번역] 프랭크 잭슨, 「보편자에 관한 진술」
https://blog.naver.com/1019milk/222672871933

유명론에 대한 두 가지 층위의 비판: 프랭크 잭슨의 「보편자에 관한 진술」 정리
https://blog.naver.com/1019milk/222705435565

사실, 5쪽 이내가 아니라 10쪽 이내라면 소개하고 싶은 글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4) Vann McGee, 1985, "A Counterexample to Modus Ponens", The Journal of Philosophy, Vol. 82(9), 462-471

논리학의 기본 규칙 중 하나인 전건 긍정식에 대해 반례를 제시하는 흥미로운 글입니다. 저로서는 과연 논리학에 경험적 '반례'를 제시한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다소 의아스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주제 자체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더라고요.

(5) L. Wittgenstein, 1929, "Some Remarks on Logical Form",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Supplementary Volumes, Vol. 9, Knowledge, Experience and Realism, pp. 162-171 (10 pages)

비트겐슈타인이 쓴 유일한 논문 형식의 글로 유명합니다. 색깔 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트겐슈타인의 '눈물의 똥꼬쇼(?)'가 담겨 있죠.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에서 후기 철학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글로도 철학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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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 논문이 6쪽이나 되면 읽는데 시간 좀 걸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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