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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맥락에서 언어 표현이 그것이 의미하는 대상을 가리키게끔 등장(occur)하는 경우 그 언어 표현은 사용(use)된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 언어 표현이 그 자신의 언어적 표현 자체를 가리키게끔 등장하는 경우 그 언어 표현은 언급(mention)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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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예시를 보자. (유사 예시 Quine, Mathematical Logic p.23)
(ㄱ) 서울은 사람이 많은 도시이다.
(ㄴ) 서울은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ㄷ) "서울"은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ㄱ)과 (ㄷ)은 참이지만 (ㄴ)은 거짓이다. 이 때 (ㄱ)에서 "서울"은 사용된 것이고, (ㄷ)에서 '"서울"'은 언급되었다. (지금 이 문장에서도 따옴표의 용법을 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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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의 구분을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를 동시에 다루는 경우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이 때 대상언어는 언급되는 언어이다. 가령 유명한 Tarski Schema는 사용-언급 구분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시될 수 있다.
"Snow is white" is true in English iff snow is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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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학문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구분이다. 수학의 예시를 들어보자.
P1. 3/4의 분모는 4이다.
P2. 3/4=6/8.
C. 6/8의 분모는 4이다. (P1, P2, 라이프니츠 법칙)
이 논증의 결론은 명백히 거짓이다. 그런데 P1과 P2가 거짓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논증이 부당한 것도 아니다. 어디가 문제인가? 이는 수(number)와 숫자(numeral)를 구분하지 않은 사용-언급 혼동의 오류에 해당한다. 숫자는 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P1'. "3/4"의 분모는 "4"이다.
P2'. 3/4=6/8.
C'. "6/8"의 분모는 "4"이다.
로 써야 정확하고, 그러면 부당한 논증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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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개념 혹은 의미의 차원과 형이상학적 차원이 자칫 혼재될 수 있는 철학이야말로 가장 신경써야 하는 구분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시는 조건연결사 "⊃"와 논리적 함축을 혼동한 것이다. "P이면 Q."라는 명제는 "P ⊃ Q"로 표현될 수 있다. 이는 복합명제로 여전히 대상 언어에 속한다. 그러나 "P가 Q를 (논리적으로) 함축한다."는 "P"와 "Q"가 가리키는 대상언어의 명제 간의 논리적 관계를 말하는 메타언어 문장이다. 만일 논리적 함축 관계를 단순히 조건문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심각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논리적 함축은 전제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인 것이 불가능한 관계인 반면 조건문은 단순히 진리조건을 가지는 하나의 명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예시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가령 "아름답다"라는 표현에서 "아름-"이 어원적으로 지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진술로부터 "아름답다"가 가리키는 속성에 지식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고 즉시 추론하는 것 또한 사용-언급 혼동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지금도 종종 보인다. -
나는 사용-언급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훈련 받는 철학도로서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어렵다. 특히 사용-언급 구분 퀴즈는 정말 알쏭달쏭하다. 탐구를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잘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는데, 철학의 개념 분석 작업이 의미론적 논제일 때 그로부터 형이상학적 진술로 나아가는 것은 어디까지가 사용-언급 혼동일까? 물론 즉시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오류일지도 모른다. 다른 한 편으로는 T-schema에 의존해서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분석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하고 있는 분석이 의미에 관한 분석인지 다른 것인지 헷갈릴 때가 아직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