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의 김동규 선생님이 <복음과 상황>이라는 개신교 월간지에 우리 시대 유럽 대륙의 종교철학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꾸준히 기고하시고 계시네요. 시즌 1을 흥미롭게 보았는데, 이번에 시즌 2가 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대륙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특별히 종교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현재 대륙철학의 현황 및 주목받는 종교철학자들, 사조들, 저작들에 대해 궁금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도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올려봅니다.
나는 3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미국 보스턴에 체류하는 가운데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우리 시대의 종교 사상가, 더 정확히는 종교철학 분야에서 독창적 입장을 개진했거나 유의미하고 실험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는 종교철학자들을 인터뷰했다. 미국이 워낙 크고 인터뷰하고 싶은 사상가는 여럿이었기에 인터뷰를 계획한 모든 철학자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고, 몇몇 철학자와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이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복음과상황〉에 대략 6회에 걸쳐 요약해 싣고자 한다. 앞으로 게재될 철학자들 이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각 대화가 함축하는 의미와 독특성을 전체적으로 개관해보겠다.
대화를 나눈 이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 찰스 시릭(Charles Seelig) 석좌교수 리처드 카니(Richard Kearney)와 제프리 블뢰클(Jeffrey Bloechl) 교수, 뉴욕 포덤 대학교 철학과 명예 석좌교수 메롤드 웨스트폴(Merold Westphal)과 현재 재직 중인 크리스티나 M. 그슈반트너(Christina M. Gschwandtner) 교수, 뉴욕주 시라큐스에 위치한 시라큐스 대학 데이비드 쿡(David Cook) 명예 석좌교수 존 D. 카푸토(John D. Caputo), 그리고 2019년 한국에서 열린 베리타스 포럼 강사로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 칼빈 대학의 제임스 K. A. 스미스(James K. A. Smith) 교수다.
학계가 어느새 미국의 거대 대학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철학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대학과 학계는 건재하게 자신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고, 탁월한 유럽대륙종교철학 사상가들이 유럽 각국을 터전 삼아 자신의 고유한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에 나는 앞서 시즌1을 연재하는 가운데, 유럽 대륙에 직접 건너가서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 그중에서도 유럽대륙철학을 기반으로 사상을 개진하는 철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더 충만하게 현실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유럽으로 직접 들으러 가야 한다는 나름의 압박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유네스코 등재 유산이기도 한 벨기에 루뱅 대학교 후설 문서 보관소(Husserl Archives Leuven)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어 유럽 대륙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고. 방문 기간 중 유럽 대륙의 여러 철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시즌2에서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리 시대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독자들에게 전하면서 앞선 시즌1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독자들에게 철학과 종교를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사유할 계기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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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맨 처음 만날 철학자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미국 빌라노바 대학교 철학과에서 존 카푸토를 이어 데이비드 쿡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 데스몬드(William Desmond)다. 동일자 대 차이, 주체와 대상이라는 전통적인 도식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양자 사이의 중간적인 것을 사이론(metaxology)이라는 독특한 자기만의 사유 방식으로 창조해낸 철학자다. 그는 가톨릭 수도사가 되려고 했던 젊은 날의 신앙 경험과 철학자로서의 도전, 헤겔에 대한 비판과 현대철학 및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입장 등 우리 시대 주요 사상가들에 대한 평가를 나눌 것이다. 또한, 사이론을 기반으로 삼은 종교철학, 시를 통해 신을 말하는 방법, 악에 대한 사유, 아가페의 철학적 의미, 오늘날 무신론의 특징과 이에 대응하는 방식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루뱅 대학교 신학과와 철학과에서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한 양손잡이 학자이자 현재 남아공 노스웨스트대 철학과 특임교수인 유리 스흐레이브르스(Joeri Schrijvers)를 만난다. 철학과 신학 모두에 정통한 현상학자로서, 사실상 독립연구자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도 철학책을 놓지 않는 이 도전적인 철학자는 젊은 시절 루뱅의 뛰어난 학자들과 소통하며 공부했던 경험과 더불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신의 초월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 우리의 세계-내-존재의 내재성 안에서, 일상적 삶 안에서 신앙을 사유하고 살아내는 법을 들려줄 것이다. 전통 현상학만이 아니라 장-뤽 낭시, 존 카푸토 등 우리 시대를 수놓은 철학자들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최근 주목받는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에 대한 조금 더 신학적인 접근, 그리고 독립연구자의 바람직한 삶의 태도에 대한 솔직한 생각까지, 독자들은 다양한 주제와 관련한 그의 흥미로운 사유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폴 리쾨르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으며, 인터뷰한 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올리비에 아벨(Olivier Abel)은 20세기 최고의 철학적 해석학자인 리쾨르와의 인연부터, 가톨릭적 문화가 깊이 서려있는 프랑스에서 조금은 독특하게 프로테스탄트 신자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진솔한 이해를 들려줄 것이다. 또한 화해와 용서 등 종교적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지, 철학자이면서 칼뱅의 사유에 깊이 천착한 사상가의 시각에서 16세기 대표적인 종교개혁가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도 진솔하게 들려줄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일생 동안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우리는 지식인의 참여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시대에 대한 심원한 고민의 흔적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에 속한 사상가 일색인 본 기획의 한계를 다소간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유대교 철학자인 카트린 샬리에(Catherine Chalier)를 만난다. 레비나스의 가장 가까운 학생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로부터 레비나스라는 한 인물에 대해, 또 그와의 공부 경험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날 그로부터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유대교 사상이 갖는 특징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하나의 걸림돌처럼 작용하는 근본주의적 토라 해석을 극복하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유대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경전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적잖은 통찰을 얻을 것이다.
파리 가톨릭 대학교의 에마뉘엘 팔크(Emmanuel Falque)는 소르본대의 클로드 로마노(Claude Romano)와 더불어 현재 프랑스 현상학의 기수로 불릴 만한 중요한 철학자다. 다른 현상학자들과는 달리 정규 신학 연구 기관에서 신학을 공부하기도 한 팔크는 현상학에 이론적으로 정통한 철학자이면서 성서와 신학의 중심 주제들에 대한 탁월한 현상학적 기술을 시도하는 도전적인 사상가다. 우리는 그로부터 그리스도의 고난, 부활과 같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유한 경험을 오늘의 시간을 사는 우리가 체험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철학과 신학에 모두 정통한 팔크로부터 이 두 영역을 교차하고, 또 그 경계에서 사유한다는 게 무엇인지, 양자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도 받게 될 것이다.
인터뷰한 철학자 중 가장 젊은, 떠오르는 학자인 소르본대 연구원 스테파니 럼프자(Stephanie Rumpza)에게선 동방교회의 이콘에 관한 현상학적 이해를 배울 것이다. 미국 태생이지만 현재 파리에 머무르면서 유럽 지역에서 활동하는 럼프자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자신의 신앙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콘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를 꾀하며 동방교회 전통을 깊이 이해하는 철학자다. 우리는 이콘에 대한 그녀의 현상학적 접근을 들으면서 동방교회가 지닌 신비의 유산이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독자들은 이콘의 체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러한 종교체험을 해명할 때 현상학과 해석학이 얼마나 중요한 도움을 주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현상학자인 장-뤽 마리옹(Jean-Luc Marion)과 장-이브 라코스트(Jean-Yves Lascoste)의 가장 가까운 학생이기도 했던 그녀로부터 이 탁월한 철학자들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증언도 함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섯 명의 철학자와 더불어, 우리는 추후 또 다른 철학자 5-6인을 만나게 된다. 이 가운데는 이미 인터뷰를 마친 학자들도 있지만, 향후 인터뷰를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할 철학자도 있다. 이에 본 기획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질 계획이다. 열 명이 넘는 철학자들을 단숨에 소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지나치게 긴 호흡으로 연재를 이어가면 독자들에게 버거움을 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열 명 이상으로 작성된 철학자들의 목록을 두 호흡으로 나누어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구별에 특별한 의도는 없다.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한 시간 순서대로 각 철학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