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의 글을 읽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네요. 후설이 현상학의 초월론적 토대를 탐구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주제는 고민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 후설을 아는 누구라도 그가 오히려 선교적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고 인류 문화의 총체를 이러한 바탕에서 치유하길 원하였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것은 『위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한때 후설과 이 점을 예증하는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순수 예술과 관련된 많은 것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저명한 후설이 현대예술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알기를 원하였다.—내가 현대예술이라고 그 시절에 받아들였던 것은 표현주의였다. 후설은 대답하였다. "글쎄, 가다머 박사, 당신도 알겠지만, 나 역시 음악을 상당히 많이 좋아하고 시를 꽤 많이 좋아하네. 나는 극장과 미술관에 가는 것을 애호하지만, 현상학의 초월론적 토대가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다른] 것들에도 계속 참여할 시간을 주지를 않는다네." 이것은 진정으로 선교적 마음가짐을 가지고 말해졌다. (인가르덴이 전해준 추가적인 언급: "후설은 나에게 그가 극지 탐험가라서 다른 주제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네.")
H. G. Gadamer "On the Contemporary Relevance of Husserl's Phenomenology", Hermeneutics between History and Philosophy, Vol. 1, P. Vandevelde & A. Iyer (eds. & trans.), London: Bloomsbury, 2016, p. 144 인용자 강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