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말과 사물과 관련된 2차 저작물을 추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이맘때 비슷한 주제로 좋은 논의가 오갔던 것을 감사히 읽었습니다. (다음의 글입니다: 철학과 문학이론) 이 글을 써도 될지 며칠 고민하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타자를 두드리네요. 철학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 저는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선생님들보다 말에 두서가 없고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습니다. 논문을 제출할 수 없었네요. 그때에는 저의 부족함이 논문을 쓰는 데 두려움을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주저함이 있었던 듯합니다. 이런 뒤늦은 생각은 최근 박사과정 중인 친구와 저의 논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나온 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생각하는 '전쟁이나 정권 찬탈 등의 거시 역사가 시대를 흘러 잠잠해지면서 한국문학은 개인의 사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지금은 관둔) 석사논문의 가설을 듣고 그 논문을 써 보면 어떻겠냐며 푸코 초기 저작을 찾아 읽기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랜만에 아득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푸코의 <말과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식의 고고학> 외에 초심자에게 선독을 권하는 자료가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2. 푸코의 저작이 문학을 논하는 데 주석으로 쓰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바보 같은 질문으로 들리시겠지만 순수한 궁금증입니다. 작년에 이곳에서 논의하셨던 내용을 읽어 보면 철학과 문학이론(혹은 문예학?)은 분명히 서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철학이론보다는 문학이론을 찾아 인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 해서요. 혹시나 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문학이론을 알고 계신다면 알려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예전에 막연히 느꼈던 공포 중에, 철학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이 무섭지 않은가 하는 게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께서는 어려운 서양 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때의 논문 트렌드라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학업과 병행한 스터디로 지각의 현상학, 천 개의 고원 등을 읽었습니다(그냥 봤습니다). 요즘도 그럴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그때 튕겨져 나왔습니다. 배운 것 중 아무것도 인용할 수 없었고, 이상하게도 인용할 수 없게 되니 제 이야기를 펼칠 힘도 없더군요. 저도 결국은 뭔가를 들먹여야 논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고작 석사논문입니다만 논문을 다시 도전할지, 문학과 철학을 평생에 취미로만 남길지,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로 생각이 들끓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면 겸허히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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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전에 쓴 글을 읽어 주시고 질문도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라서 선생님께 감히 조언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생각이 드는 것을 조금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전 글에서 제가 언급한 조너선 컬러의 '이론'에 대한 설명은 미국 학계의 견해라고 보이고요, 우리 학계에서 '이론'을 그렇게는 받아들이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질문 1에 대해. 푸코의 <말과 사물> 텍스트를 접근하기가 힘이 드시면, 쉽게 설명하고 독서를 도울만한 책이 있습니다. 심재원의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읽기>인데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또 ,이규현의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지식의 풍경과 언어의 검은 태양>이라는 책도 상당히 쉽게설명이 되어 있습니다만, 책이 그리 망라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고라는 분량상의 한계도 있고요.

질문 2에 대해. "Foucault and Literature"의 저자인 Simon During이 시사하는 것과 같이, 푸코는 문학 이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푸코의 철학과 문학에 대한 사항을 논문에 적극 반영하시려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번역본이 있는지는 찾아봐야겠네요)

제 개인적인 어설픈 소견으로는, 문학은 물론 철학이 아니고 철학으로 온전히 환원되는 것도 아닙니다만, 문학과 철학은 깊은 상호관련이 있다고는 분명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명한 비평가 프랑코 모레티는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자본주의와 연결시켜서 해석하는데, 무척이나 능숙하고 현란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죠. 이 내용은 모레티의 <공포의 변증법>에 나오는 글 중 하나입니다만, 이런 거장의 책을 모범이나 범전으로 삼아서 몇번 읽어보시면 문학과 철학의 관계나 이 두가지를 어떻게 함께 사용할 수 있을지 감을 잡으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포의 변증법>은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 한 권을 추천하자면 <문학과 철학의 만남>이라는 논문집이 있는데, 참 좋은 책입니다.

사실, 문예지 등에 응모하는 평론 응모작들을 보면 작품에 나오는 이론적 요소들, 이를테면 포스트식민주의로 논할 수 있는 요소, 퀴어 이론이나 마르크스주의와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서 (작품은 뒷전에 두고) 이에 대해 막 서술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학위논문과 비평은 상당히 다른 것이지만요)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이론이 필요하다면 잠시 그 이론을 끌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 글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첨단 이론들을 인용하거나 그 논리를 제시하여 검토하지 않으면 마치 제대로 쓴 글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경향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이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다시 논문에 도전하셔서 완성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젊고 많은 잠재력이 있는 시기에 지적인 업적을 남기시는 것이 이후의 삶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다만 경력을 추가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정신적인 삶에 긍정적인 기반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어설픈 대답이어서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깊이 생각하시고 노력하시는 선생님께 응원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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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말씀해주신 가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문학사회학 또는 역사•사회 비평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푸코를 읽으라는 것도 사회학적 측면에서 읽으라는 것이지 철학적 측먼에서 읽으라는 게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문학에서 철학을 사용함에 있어서 비판받는 지점은 철학을 잘 몰라서 철학의 경계를 넘어가서라기보다 문학에 맞는 특수한 맥락에 철학을 억지로 끼워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그림을 그리려는 철학과 거시적 연구를 수행하는 거시사회학은 일견 비슷해보이지만 지향점이 달라 둘 중 하나로 환원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거시적 계량 연구는 맑스의 사회 이론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사회철학을 비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근거로 댈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실상 문학 연구에 철학자의 이론을 적용시키려는 것은 이중고를 겪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철학과 이론을 분리시키는 작업
  2. 이론이 문학연구주제와 잘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작업

특히 1)같은 경우에는 철학과 이론이 걸친 분야 모두에 능통해야 가능한 작업 같아 보입니다. 사실상 대가만 수행할 수 있는 작업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문학 연구자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일일 겁니다.

푸코의 초기 작업은 사회변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취약함을 가집니다. 특히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이 그렇습니다. 각 시대가 어떤 에피스테메와 실천으로 이뤄졌는가를 서술하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만 한 쪽으로의 이헁을 설명하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감성의 변형이 더 잘 드러나는 작품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문외한이라 그런 작품을 직접 추천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아 개념사가 거시적 사회 변화를 추적하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코 모레티가 <그래프, 지도,
나무>라는 책에서 거시적 문학 사회학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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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정권 찬탈 등의 거시 역사가 시대를 흘러 잠잠해지면서 한국문학은 개인의 사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논리를 만드는 것에 『말과 사물』의 논리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애초에 주장이 있는데, 잘 모르는 이론을 넣는 것은 권위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어서요. 『말과 사물』을 읽다보니, 한국 문학의 변화 과정이 캐치 되었다거나 하면, 저는

푸코의 저작이 문학을 논하는 데 주석으로 쓰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바보 같은 질문으로 들리시겠지만 순수한 궁금증입니다. 작년에 이곳에서 논의하셨던 내용을 읽어 보면 철학과 문학이론(혹은 문예학?)은 분명히 서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철학이론보다는 문학이론을 찾아 인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 해서요. 혹시나 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문학이론을 알고 계신다면 알려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그렇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서양 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때의 논문 트렌드라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많은 한국 비평가들이 자기의 평론을 멋있게? 혹은 권위에 기대기 위해서 억지로 학자들의 이론을 나열하는 식으로 정당화 하곤 했거든요. "그때의 논문 트렌드" 라고 함은 아마 제가 기억하는 그런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나 정권 찬탈 등의 거시 역사가 시대를 흘러 잠잠해지면서 한국문학은 개인의 사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 부족한 생각으로, 거대 서사가 설득력을 잃고 미시 서사로 넘어가게 되는 필연성(?) 을 논증해야 한다면 루카치도 떠오르고, 리오타르도 떠오르고, 문학이론으로는 페터 V.지마의 『모던/포스트모던』도 생각이 나기는 합니다.

푸코의 회고 속에서 휴머니즘과 인문과학의 시대인 근대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 종료된 에피스테메로 나타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유한성이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관계 속에서 생각된 바로 그날, 우리 문화는 우리가 우리의 근대성을 인식하게 되는 문턱을 넘어섰다.” 푸코의 저작 소에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후근대적 시대는 다음과 같은 구도를 이룬다. 역사가 파편화되고 이와 아울러 다수의 진리가 공존하는 상황이 초래되며, 이에 대응하여 주체 역시 복수화되거나 분해된다. 이는 또한 어쩌면 교환 가능한 가치 규정과 가치 지향의 시대, 또는 부르크하르트 슈미트가 말하듯이, 파시스트가 급진적 민주주의자가 되고 어제의 공산주의자가 오늘의 자본가가 되는 “망각의 시대”일 것이다. 어쨌거나 푸코의 시각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오직 단절과 불연속성 속에서 사유하는 고고학에 의해 주체와 그의 인식의 통일성이 부정되는 시대이다. “한 작품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주체의 심급, 그리고 그것의 통일성의 원칙은 고고학에서는 낯선 것이다.”

루카치, 아도르노, 골드만과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이론을 통한 진리의 탐색과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결합시키는 반면, 후구조주의자들은 때로는 유희적인, 때로는 비극적인(아포리아적인) 수사법을 펼치면서 의미와 진리 추구 자체를 무의미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페터 테페는 그러한 연관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런 면에서 급진적 다원주의는 궁극적으로 무차별성에 귀착한다.”
후구조주의자들은 특수화, 구속받지 않는 다원성, 의미들의 교환 가능성, 모든 게 다 옳다는 식의 무차별성에 경도되어 있지만, 이러한 경향을 그들이 비평 대상으로 삼은 프루스트, 릴케, 디킨스, 조지 엘리엇의 텍스트에서 곧바로 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작가에게 ‘의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후구조주의적 성향은 무엇보다도 진리와 대안적 삶을 향한 모더니즘적 탐색과 그것의 토대가 된 가치 설정이 매력을 상실한 후근대적 문제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치 저하 과정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추구가 사라져버리거나 시대착오로서 패러디되고 있는 무수한 후근대적 작품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 『모던/포스트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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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세창 님의 근본적인 지적에 동의합니다.

해당 주장을 하기 위해 푸코를 인용해야할 어떤 좋은 이유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대 서사'의 종말과 '사적 서사'에의 관심 증대는 저에겐 상식적인 인식으로 보입니다. 단지 이 상식적 인식이 한국문학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증명하면 될 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글쓴이 님의 사례의 경우,

라는 글쓴이 지도교수님의 말이 지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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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sten 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여기에 제 아마추어적인 지식을 덧붙이자면, 2000년대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문학비평이 국내에 수용되면서 국내 문학비평계에서도 소위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비슷한 류의 주장들이 (오히려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제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동시대 비평가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이들의 주장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추가되어야 하는지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 출발점이 이미 주어진다면, 그 때는 필요에 따라 푸코, 포스트모던, 맑스주의, 헤겔 등등 참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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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어 주시고, 또 풍부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힘써 적어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Yates 님께서는 푸코의 <말과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저작 추천뿐만 아니라 제가 앞으로 참고하기를 바라는 좋은 논문의 방향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철학을 하는 분께 이런 가르침을 받아 송구하기도 합니다만, 맨 마지막에 알려 주신 책을 시작으로 제가 논문을 쓰는 이슈(?)에 대해 좀 더 천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용기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해 보겠습니다. (참, 말씀하신 시몬 듀링의 책은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hesocial 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결국 저는 (개념사를 톺아보면서) 철학보다는 거시사회학에 무게를 두고 문학을 논할 것을 고려함이 옳겠다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이중고에 동의합니다. 제가 10년 전에 느꼈던 공포가 아마 그 지점에 맞닿아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결국 푸코의 철학은 논문에 쓰임보다는 저의 앎의 즐거움으로 남을 것 같군요. 그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만 논문을 쓰겠다면 제가 좀 더 명징한 사고를 해야겠지요. 일단 프랑코 모레티의 저서는 꼭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창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이론을 남발하지 않고도 논문을 쓸 수 있다면 그쪽을 택하는 편입니다. 저와 같이 수학하던 동료 중 일부는 비평 쪽으로도 뻗어나갔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이 만들어 준 능력일수도 있지요. 그리고 확실히 저는 그 능력이 부족했고요... 붙여 주신 <모던/포스트모던>의 내용이 무척이나 놀랍습니다. Thesocial 님이 푸코에게서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행하는 힘이 <모던/포스트모던>에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언급하신 책은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해당 책을 잘 읽으려면 루카치와 리오타르를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sophisten 님, Herb 님 감사합니다. 푸코 등 철학자를 인용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가능하면 국문학의 언어로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도) 좋은 논문을 많이 읽지 못해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리고 Herb 님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네요. 쉽지 않은 지점이지만 그 부분만 명확히 밝혀내기만 해도 석사논문으로서는 괜찮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추가로 댓글을 더 달아 주셔도 좋겠지만, 충분히 좋은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또 이미 갈무리하기 버거운 내용이라서요. 생각이 많은 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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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제가 선생님께 답한 내용 중에 미비한 점이 보여서 조금만 언급해 보려 합니다.

'전쟁이나 정권 찬탈 등의 거시 역사가 시대를 흘러 잠잠해지면서 한국문학은 개인의 사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생님께서 잠정적으로 고려하고 계신 논문의 가설이라면, 이 가설은 문학사회학이나 문학사적인 접근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주제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적 사유를 참고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거라고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가설은 '재현의 변화'내지는 '미메시스론'에 대한 탐구로 재기술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고전시대의 에피스테메로 제시한 것이 바로 '재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과 사물>이 이론적인 부분에서 약간 참고할 만한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론에서 이 '재현'의 양상과 주제 등의 변화 혹은 '미메시스'를 다루는 것으로 고전적인 저작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가 있고요, 현대 철학에서의 미메시스를 다루는 책으로 오길영 교수님의 <포스트미메시스 문학이론>이란 책이 있습니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간행된<미학이 재현을 논하다>라는 책도 있지만, 이는 문학보다는 시각예술 쪽에 대해서 분석미학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하지만 넬슨 굿맨의 재현 이론에 대한 서술 부분은 참고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경재 교수님의 <재현의 현재>는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문제의식에 많은 것을 답해줄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하루 되시고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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