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문학이론

주로 고유한 문학의 이론으로서의 문예학(Literaturwissenschaft)과는 다소 다르게 영미쪽의 문학이론(Literary theory)의 작업에서는 문학작품을 다룰 때 그 작품의 내용에 관계가 있어보이는 온갖 이론들, 특히 철학(적)이론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맑스주의, 구조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해체론 등등의 이론들을요.

또, 단지 문학작품의 해석이나 비평적 작업을 넘어서서 철학적인 텍스트를 쓰기도 하는 문학연구가들도 많이 있지요. 극히 일부만을 들어보더라도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프랑코 모레티, 김우창, 가라타니 고진 같은 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조너선 컬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론은 문학 연구 방법론들이 아니고, 이론 철학의 기술적 문제에서부터 사람들이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방식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하늘 아래 모든 것에 대한 저술들의 무한한 집합체이다.

'철학'의 범위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 경우에, 주로 철학의 '이론'을 논하는 문학자의 작업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나아가 문학과 철학의 상호교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리처드 로티,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등이 이미 철학과 문학의 nodal point로서 교류를 수행적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통철학계(이 표현 자체에도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죠)에서는 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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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러 이론과 사상들이 다양한 분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만, 솔직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학이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사실 "영문과"의 특수한 성향- 온갖 주제에 대해 다 말할 수 있다 -이 더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이구요 (소위 영문학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가라타니 고진이 "왜 문학을 전공으로 정했는가"의 질문에 대해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어서"라고 쓴 것이 기억나네요.
철학과에서는 어떤 저자가 너무 많은 주제를 끌어들여서 논의를 전개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보는 모랄이 형성되어 있는 반면, 영문과는 그것이 덕목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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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의 교류 자체는 상당히 박수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Herb선생님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특히나 영문과 출신들의 철학 관련 서적의 번역이 엉터리인 경우가 꽤나 있어서, 솔직히 저는 영문과의 너무나 큰 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최근에 올빼미에서 논해진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 (네하마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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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영문과'의 특수한 성향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이에 대해 언급해 주셔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솔직히 불문학계나 노문학계 등에서는 사정이 어떻게 다른지 제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용해 주신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들으니 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영문학 전공이신 김우창 선생 같은 분의 저서는 너무 많은 주제를 끌어들이기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연쇄적으로 계속 깊게 파고들어가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래서 소위 '덕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동감이에요. 사실, 데리다에 대한 번역 내지 연구서가 영문학자에 의해 번역, 집필되었는데, 데리다 전공하신 분이 수많은 오해와 오역을 지적하시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큰 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영문학 자체의 내실있는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론은 암묵적인 철학적 전제들을 깔고 있다는 의미에서 철학적이지만 그래도 전형적인 철학 이론과 철학 아닌 이론 간의 구별은 남죠. 맑스주의, 구조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해체론 등 모두 철학 이론보다는 철학 아닌 이론에 가깝죠. 사회세계, 인간심리, 여성성과 여성차별, 텍스트적인 것/언어체계적인 것 일반에 대한 이론이죠. 데리다 자신은 철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영어권, 특히 미국에서 철학자로서의 데리다 수용은 시원찮았고 주로 철학 아닌 인문학계, 특히 문학계에서 수용되었고 그의 이론에서 영감받은 해체 혹은 탈구축 운동도 문학자들이 주도한 것이었죠.

영어권에서는 유명한 최근 반세기 동안의 프랑스 철학자들 및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작업을 그냥 '이론'이라고 부르는 흐름이 있죠. 철학적이라고 한정할 수 없는, 인간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온갖 얘기를 이론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죠. 특히 문학을 포함해 예술이 그런 이론의 세례를 받았죠. 예술작품의 기술과 해석과 평가라는 것이 가장 경험과학적 이론에서 가장 철학적인 이론까지 온갖 이론의 동원을 유혹하고 정당화하죠. 그래서 문학도들이 가장 박식하게 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죠. 한때 대학원 연구실을 기웃거리며 해외 학술 서적을 파는 분들이 있었는데, 문학도들, 특히 국문학도들이 책을 제일 많이 구매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죠.

예술작품에 대한 이론적 얘기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철학적인 이론적 얘기들보다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죠. (온갖 이론들을 다 동원할 수 있고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는 의미에서, 심지어 그 대상이 '나를 몰입시키고 뒤흔든' 예술작품이라는 의미에서 - 물론 철학 '작품' 경험도 나를 몰입시키고 뒤흔들 수 있지만, 형상에서 얻는 몰입경험과 개념들의 추론적 연결구성에서 얻는 몰입경험은 그 밀도가 다르죠) 예술비평글을 쓰는 것이 철학 논문을 쓰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말해도 마찬가지겠죠. 제 예를 든다면, 저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보다 더 지적 즐거움을 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온갖 이론들이 동원되어 내러티브 일반에 대한 야심만만한 마르크스적 해석이론이 구축되면서 문학작품들을 대상으로 해서 예시되는 책이죠. 그 야심만만을 느끼게하는 문체와 구성의 독특함과 강렬함으로 인해 그 책을 읽은 경험은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 경험과 비슷하기도 했죠.

온갖 이론들에 대한 욕구가 강하도록 부추겨진 문학도들이 자신이 갖춰놓은 배경지식(과 경험과 언어감각)을 넘어서는 상당히 철학적이기도 한 책들을 거의 엉망으로 번역해서 단번에 자신의 밑천을 훤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죠. 한국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영어권에서도 가끔 원저작의 물질적/감각적 밀도를 밋밋하게 해버린 번역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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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깊이있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실, 우리나라 문학평론을 읽어보면 글 내용과 별 상관이 없어도 라캉이나 지젝을 한두번 언급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글을 쓴 듯 느껴지는 평론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죠. 다음은 또 랑시에르나 들뢰즈가 감초처럼 등장하고, 최근에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유물론과 OOO(객체지향존재론)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것이 왜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느냐는 또 조사와 비판을 필요로 하는 긴 작업이 될 터라 여기서는 다룰 수 없고요, 단지 그런 경향이 문제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만 확인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 사실 철학을 많이 다루면서도 아주 피상적인 수준에서 혹은 심한 오독을 바탕으로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것이 진지한 철학을 공부하는 분들께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어요. 또 반대로 문학도들의 생각은 어떠할지도 흥미로울테고요...@cittaa 선생님의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전 문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학부 과정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그곳 분위기를 대충 접했었습니다. 한마디로 문학 비평계엔 최신 유행 이론이나 담론을 추수하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그런 태도는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문학 이론은 결국 작품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이고, 작품은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카프카의 미완성 장편 소설 <성(城)>은 어느 측량사가 성 밑에 있는 마을에 머무르면서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의미는 독자가 알아서 해석해야 합니다. 성은 분명 어떤 것의 메타포로 보이는데, 그것은 신, 아버지, 부르주아 계급, 관료 조직, 또는 게이들의 천국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학 작품은 여러 이론이나 담론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함으로써 현실 비판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문학계는 이론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기존에 없던 해석을 하기 위해 이론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생길 수 있고, 그에 대해 - "우린 철학자가 아니라 비평가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라는 식으로 -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어서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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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공을 하신 분으로서 경험을 나누어주시고 의견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즉, 문학 텍스트는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기 위해 해석을 필요로 하고, 그 해석의 도구로서 이론을 필요로 하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철학(적)이론을 언급하지 않고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론을 배제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고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해석을 위하여 이론을 가져오는 경우는 사실 해석이라는 목적의 범위에서만 이론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론을 다루게 되는 것 같다는 것이지요. 더 깊이 다루면 오히려 문학적인 사유를 넘어서거나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비평의 방법론적인 면을 생각할 때 이론의 문제가 좀 까다로운 논제가 되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의견 정말 감사했습니다. @reflex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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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영미권 문학 교수들의 철학적 작업이 활발한 것이, 어찌보면 문학적인 작업만 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담론 형성에 많이 기여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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