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 옹호론 (논증)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했을 때,

셋 중 무엇을 낼지 랜덤이지만 내는 순간에는 무엇을 냈는지 100%결정된다

모든 일은 이런 식일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100%에 수렴하다 6월 25일,결국 100%에 도달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까지 과거의 모든 사건은 현재에 와서 100%로 결정되었다

이제껏 그랬듯이, 미래의 일도 100%확률로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정확 모르지만 과거에 모든 사건이 확정되었듯이 미래의 모든 사건도 확정될거라는 것을 추론해볼 수 있다

논증을 다시 다듬어보자면,

1.과거의 각종 역사적 사건들은 이미 확정되어있다
2.여태껏 그랬듯이 현재,미래의 역사적 사건들도 언젠가 확정될 것이다

결론:미래의 역사적 사건들은 (1,2의 추론으로 비로소) 확정되어있다

두 차원을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확률론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인데요. 여기서 확률은 현실을 기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을 뿐입니다.

그러니 언어적 해석에서 무리하게 현실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문장의 끝에 온점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사건의 끝이 항상 현실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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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을 쓰지 않고 쓸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사건은 현재에 와서 확정되었고,

이제껏 모든 사건은 확정되어 왔기에, 미래에도 어떤 사건이든 한가지로 확정될 것이다

"어떤 사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반드시 한가지 사건으로 확정될 것이다"

위의 추론을 통해 미래는 확정될 것으로 확정되었다

예전 논증을 보면서 engage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van Inwagen - The Incompatibility of Free Will and Determinism 이 무난한 시작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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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상식적인 귀납적 얘기와 다를 게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해가 이제까지 떴으니 내일도 뜰 것이라는 말과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원래 당연하다는 듯이 들리는 논증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이 사실이 결론인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뒷받침해주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돌고 돌아서 철학적 감수성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상식적인 결론에 상식적인 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 의심이 결여됐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귀납은 러셀이 칠면조의 사례에서 설명했듯이 그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원이 결여돼 있습니다.
그래서 귀납 자체를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이후 귀납 자체를 옹호하기 위한 여러 논증이 개발됐는데요.

이런 학문적 성과들로 힘입어서 비로소 결정론이 학문적 주제로 정립됐는데요. Whynot님은 그 전 단계의 것들로 논의를 진행하니 논의가 철학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줍니다

러셀의 칠면조는 워낙 유명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다보니 익히 들어봤습니다

굳이 논증에 방해만 되는... 재반박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을 넣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과 악은 있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기보단

선과 악이 있더라면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애매어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과거의 모든 사건은 현재에 와서 확정되었다."라는 말은

(a) "실현될 수도 있고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던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실현되었다."라는 말로도 읽힐 수 있고,
(b) "미리 결정되어 있던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실현되었다."라는 말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a)는 결정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상적 주장일 뿐이고, (b)는 결정론적 주장입니다. Whynot님은 (a)라는 일상적 주장과 (b)라는 결정론적 주장을 혼동하여서 (a)로부터 (b)를 도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위의 Thesocial님도 Whynot님에게 (a)가 상식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귀납적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일 뿐, (b)를 함의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yhk9297님의 조언처럼 결정론이나 자유의지와 관련된 기존 철학의 논의들을 먼저 살펴보시고 생각을 전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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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도 지금과 같이 기존의 철학적 논의들로부터 고립된 채 혼자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yhk9297 님께서 추천해주신 것과 같은 관련 서적이나 글들을 검토한 후 이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는 편이 유익하고 유의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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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덧붙이자면, Whynot님이 빠진 오류는 '미끄러진 양상사의 오류'라는 문제와도 유사합니다. 가령,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라는 주장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a) 필연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일이라면, 그 일은 일어난다.)
(b) 어떤 일이 일어날 일이라면, (필연적으로 그 일은 일어난다.)

위의 두 문장은 '필연적으로'라는 의미의 양상사 '□'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a') □(P → P)
(b') P → □P

그리고 이 둘 중에서 (a')은 일상적인 주장이지만, (b')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결정론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몇몇 철학자들은 일상언어에서 양상사 '필연적으로'의 위치가 문장에서 자유롭다는 점 때문에 (a')와 같은 형태의 주장에서 (b')와 같은 형태의 주장을 도출하려는 오류를 범하였죠. 이것이 '미끄러진 양상사의 오류'입니다.

서양 근대 철학사: 라이프니츠와 결정론(3)
https://blog.naver.com/1019milk/8014327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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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수정하기전에 미리 올려봐요

논증을 다시 다듬어보자면,

1.과거의 각종 역사적 사건들은 이미 확정되어있다
2.여태껏 그랬듯이 현재,미래의 역사적 사건들도 언젠가 확정될 것이다

결론:미래의 역사적 사건들은 (1,2의 추론으로 비로소) 확정되어있다

(a)도 (b)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왜냐하면,이미 결정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거 일수도 있으니까요

두가지 경우는 어감의 차이일 뿐, 인간의 인지적 착각에 의해 달라보이는 것 아닌가요?

저의 체감 상 "어떤 일"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되면서 그런 착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가령,
"어떤 일"이 '(어떤 미래라도)미래가 오는 것'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a,b 두 문장은 별 다른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계속 쓰고 지워가며 생각해봐도 정리가 안되네요 ㅠ
일단 블로그 글이나 읽어오겠습니다

아닙니다. (a)가 참이면서 (b)가 거짓인 경우가 존재합니다. 둘은 동치가 아니므로 서로 다른 문장입니다.

화면 캡처 2024-08-27 020051

덧붙여 말하면 (a)의 필연성은 대언필연성(de dicto necessity)이라 불리고 (b)의 필연성은 대물필연성(de re necessity)이라 불립니다. 양자의 구별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 달린 답변들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그렐링, A. C., 『철학적 논리학』(이윤일 역, 북코리아, 2023) 제3장의 「데딕토 양상과 데레 양상」 절을 참조하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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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렐링의 철학적 논리학은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명료한 설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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