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방 국립대에서 철학 학사 중인데,
교수직 욕심과는 무관하게, 저의 출신 학부 자체만으로 저의 학술적 설득력, 영향력이 작아질까 그것이 우려스럽습니다.
미국 박사를 취득하거나 하면 제법 커버되는 속물적인 문제임은 알지만, 나라면 미국 대학원의 좁은 문을 확실하게 비집고 들어가겠지라는 두둑한 배짱이 없고, 한국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했을 때는 결국 제가 우려하는 게 현실이 될 것 같아 찝찝합니다.
소위 말하는 테뉴어니 하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사상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것일까요? 제가 아직은 온전한 현실을 잘 모르다보니...
올빼미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같은 종류의 질문이 서강올빼미에 올라온 적이 있어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취업 문제와 별개로 논문의 영향력과 설득력만 따지자면 제 생각은 이래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필자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게 금지하는 곳도 많습니다. 아래 양식은 제가 소속한 학회 규정입니다.
게다가 발행된 논문을 읽는 독자들은 논문을 쓴 사람의 출신 학부가 어디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내 공부에 도움되려고 혹은 내 논문에 이용하려고 다른 사람 글을 보는건데, 프린스턴을 나왔든 지방 국립대를 나왔든 뭔 상관이겠어요.
유명 미국 대학 박사 학위가 논문 평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아요. 물론 유명 대학에서 유명 교수에게 사사받고 돌아온 사람의 글은 귀국 후에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요.
취업의 경우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논문 평가에 있어서는 제가 말한 것들이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출신 학부"가 그 사람의 학술적 설득력 및 영향력의 문제와 아예 무관하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학벌주의라는건 사실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또 저는 학계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을 꽤 많이 본 것 같아서요 (어쩌면 당연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논문을 통해서 당장 확인할 수 있는 필자의 정보에는 보통 당시의 소속 정도만 기재가 되어 있어서, 사실 그 사람이 어디 학부를 나왔는지는 알 수도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저에게는 명문대 출신 졸업장보다는 어디 학교건 '철학과에서 받은 학위'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참고로 저도 철학과 학부 졸업생은 아닙니다). 비교적 제대로 된 학술적 훈련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많지 않아 골라서 읽을 수밖에 없는 제가 논문을 추리는데 주요하게 참조하는 기준은,
정도인 것 같습니다. 작성자가 어디 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느냐가 생각보다 크게 감동을 주는 요소는 아닌 것 같아요.
명문대 학벌을 얻는 것도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해 나가며 사람들의 신뢰를 사는 데에 플러스 요인이 되기는 하겠지만, "지방 국립대 철학 학사 졸업"이 그렇게까지 크게 마이너스가 될까 싶기는 합니다. 오히려 "A&HCI급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을 투고함" 혹은 "국외 유수의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함"과 같은 이력을 쌓아 나가는게 학계 내부에게나 외부에게나 더 전략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않을까도 싶네요.
논문 커리어는 말씀하신 바대로 군걱정을 할 건 없겠네요.
다만 한 명의 인물로서의 커리어는... 역시 기대할 수 없나보구요. 씁쓸한 맛이 감도네요, 하하.
"논문 커리어"는 무엇이고 또 "한 명의 인물로서의 커리어"는 무엇인지요? 결국 "학술적인 업적"이 거칠게 보자면 논문이나 책을 포함하는 출판물 일체로 요약될 것이고, "한 명의 학자로서의 커리어"는 결국 "학술적인 업적"일텐데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냥 제가 만든 속물적인 구별입니다 :) 대놓고 어떤 교수님에게 학벌로 무시를 당한 적도 있어서, 저는 사람들이 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순수하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저는 인물이라고만 말했지, 학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 명의 학자가 다른 학자를 "학술적"으로만 바라볼까요? 그리고 학자를 평가하는 주체가 학자이기만 할까요? 그 외적인 요소도 많을 것이고, 그런저런 이유들의 집합을 저는 "인물"이라고 대강 묶어서 말해본 것입니다.
학벌로 무시했다던 그런 종자를 양*치라고 하죠. 학자도 아닙니다. 그냥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물론 "사람들이 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학벌보다 "학자적 경력으로서의 연구업적"이 어떤 사람의 학술적인 영향력을 포함하여 그냥 "학자를 자처하는 한 인물의 평판"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것 뿐입니다.
지금 학부 재학생이시라면 아직 교내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바쁠테니 업적이랄 것이 쌓여있기 힘들 것이고 (물론 그런 괴수분들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따라서 선생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아직 학술적인 교류를 제대로 나눠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XX대학교 재학생" 정도로 인식이 되겠네요. 스스로 본인의 평판에 득보다는 실이 된다고 생각하는 학벌을 갖고 계시다면, (선생님의 직접적인 경험을 비롯하여) 부당한 경우들을 겪으셨을 수도 있겠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밑에 여러 업적들이 하나둘 덧붙을수록 처음에는 압도적이었던 학벌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퇴색된다고 봐요. 이건 단순히 제 뇌내망상만은 아닐 것 같은게요, 무슨 탑티어 명문대 안 나오고도 연구 및 강의 잘 하고 또 주위로부터 연구자로서의 좋은 평판과 명성을 쌓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보이거든요. (여기에서 교원 임용은 별개의 문제라고 가정합시다)
조심스러운 주제다보니 이것저것 썼다가 주제 넘는다는 생각에 계속 지우게 됩니다. 감히 한 말씀드리자면, 만약 학벌이 정말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최대한 빨리 편입이든 수능이든 준비해 보시는게 어떨까도 싶습니다. (재학생이시라고 하니) 나이 때문에 주저하실 수도 있겠으나, 전 20대 중후반 학부 신입생들도 꽤 많이 보고 어울려 봤으며 또 그들은 정말 아무 문제 없이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우려하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요). 모쪼록 어떻든 선생님도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하셨으면 좋겠네요.
깊은 말씀에 진심으로 응원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