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계획서] 현상학적 해석학에서 분석적 해석학으로: 초월론적 현상학을 넘어서

요즘 틈 날 때마다 쓰고 있는 논문의 초록과 서문입니다.

초록

본고는 경험의 구조를 기술하고자 하는 ‘현상학적 해석학’의 시도를 철학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분석적 해석학’의 방법을 바탕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선입견을 벗어나 초월론적 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현상학의 입장은 선입견에 머물러 이해의 역사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해석학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두 입장 사이의 모순은 그동안 리쾨르, 데리다, 바티모, 투겐트하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통해 자주 지적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이 ‘현상학적 환원’보다는 ‘철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우선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이 가다머의 현상학적 해석학을 성립시키는 이론적 근거라는 사실을 해명할 것이다(Ⅱ). 다음으로, 초월론적 현상학에 대해 다양한 층위에서 제시되는 비판을 간략하게 요약할 것이다(Ⅲ). 곧이어, ‘철학적 분석’의 개념을 정의하여 분석적 해석학의 기획을 소개할 것이다. (Ⅳ). 마지막으로, 분석적 해석학에서 사용되는 ‘해소하기’와 ‘보여주기’라는 방법이 현상학적 해석학에 내재된 모순을 극복한다고 논증할 것이다(Ⅴ).

들어가는 말

‘현상학’은 판단중지를 통해 선입견을 배제한 직관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객관적으로 정립된 세계가 우리 앞에 현존한다는 선입견은 진정한 학문을 성립시키기 위한 성찰을 방해한다. 사태 자체를 엄밀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연적 인식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선입견을 억제해야 한다. ‘현상학적 환원’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대상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한 상태에서 의식에 대해 필증적 명증성을 지니는 심리적 체험을 기술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기술은 인식에 내재된 경험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초월론적 자아’를 상정한다. 대상이 의식에 나타나는 방식을 순수한 직관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기술하고자 하는 학문은 ‘초월론적 현상학’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해석학’은 특정한 방법을 통해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를 비판한다.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한 방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선입견에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향 정위가 이루어질 수조차 없다. 즉, 선입견은 ‘지평’이라고 일컬어지는 이해의 조건을 구성한다. 이해란 타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선입견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정하고, 확장시켜나가는 ‘지평 융합’이다. 역사적 지평에서 형성된 이해를 마치 이상적 인식 상황에서 도출된 진리인 것처럼 기술하고자 하는 시도는 허구적이다. 오히려 진리란 ‘이해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매 순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형성될 뿐이다.

따라서 ‘현상학적 해석학’은 선입견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현상학적’ 관점은 판단중지를 통해 경험의 구조를 기술하는 방법을 수용한다. 여기서 선입견은 엄밀한 인식을 위해 배제되어야 하는 장애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해석학적’ 관점은 이해가 언제나 역사적 지평을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통찰을 강조한다. 여기서 선입견은 지평 융합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이해의 조건으로 여겨진다.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주장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순이다. 현상학을 통해 해석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균열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본고는 경험의 구조를 기술하고자 하는 ‘현상학적 해석학’의 시도를 철학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분석적 해석학’의 방법을 바탕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선입견을 벗어나 초월론적 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현상학의 입장은 선입견에 머물러 이해의 역사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해석학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두 입장 사이의 모순은 그동안 리쾨르, 데리다, 바티모, 투겐트하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통해 자주 지적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이 ‘현상학적 환원’보다는 ‘철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우선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이 가다머의 현상학적 해석학을 성립시키는 이론적 근거라는 사실을 해명할 것이다(Ⅱ). 다음으로, 초월론적 현상학에 대해 다양한 층위에서 제시되는 비판을 간략하게 요약할 것이다(Ⅲ). 곧이어, ‘철학적 분석’의 개념을 정의하여 분석적 해석학의 기획을 소개할 것이다. (Ⅳ). 마지막으로, 분석적 해석학에서 사용되는 ‘해소하기’와 ‘보여주기’라는 방법이 현상학적 해석학에 내재된 모순을 극복한다고 논증할 것이다(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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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종종 YOUN님께서 언급하시는 분석적 해석학 이라는 것의 아웃라인을 그리는 글인 것 같네요. 요컨대 현상학적 해석학이 이론 내재적으로 가지는 선입견에 관한 비일관성(혹은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내적인 긴장)을 철학적 분석을 통해 해소함으로써 현상학적 해석학이 가진 transcendental한 측면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기엔 (Ⅱ)절에서 후설의 현상학이 가다머의 현상학적 해석학에 이론적 근거를 구성한다는 것을 밝히고 (Ⅲ),(Ⅳ)절에서 철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후설 현상학을 배제한 해석학의 새로운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가 될 것 같습니다.

초록을 읽고 드는 몇 가지 의문을 남겨봅니다.

  1. 첫째로, 이 연구는 가다머의 해석학의 이론적 근거에 대한 재정초인가요, 아니면 해석학에 철학적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철학적 방법론(philosophical method)에 관한 연구인가요?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가다머 이론의 후썰적 뿌리를 걷어내고 다른 이론적 정초를 마련하는 것 같은데 (Ⅳ)절의 내용은 왠지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어쩐지 두 측면이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혼재되어 있는게 반드시 나쁜 것인지는 또 잘 모르겠네요.) "현상학적 방법론"에서 "현상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방법론에 관한 것이라면 이 물음은 자연히 해소되는 것이겠지만, "현상학을 통해 해석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라는 표현을 봤을 땐 단순히 방법론적으로 도입되는 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2. 둘째로, 만약 해석학에 대한 현상학적 정당화를 비판하고 해석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한 정당화를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면, 분석적 해석학이라는 어떻게 보면 거시적인 테제를 통해 가다머의 해석학을 안정적으로, 유의미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요? 달리 말하면, 미시적인 정당화(개념 등에 대한) 단계 없이 거시적인 수준에서 정당화를 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significant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이건 후속연구에 관련된 얘기일 것 같지만 철학적 분석 이라는 개념을 분석철학자들이 쓰는 의미로 해석학에 도입할 때 거기에서 또 생길 수 있는 이론적 긴장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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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 '해석학의 이론적 근거에 대한 재정초'가 논문이 전개하려는 핵심 기획인데, 바로 그 재정초를 '철학적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적용하여 시도하려고요. 그러니까, 사실 '방법'이라는 표현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동안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정초된 해석학을 '분석적 방법'을 통해 새롭게 정초하려는 작업입니다.

(2) 사실 '미시적인 정당화'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작업이 특별히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가다머를 비롯한 개별 해석학자의 특정한 개념이나 특정한 테제를 정당화하는 식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서 해석학 전체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작업이 오늘날 해석학에서 중심이 되는 논의는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의 해석학자들은 칸트 이후의 '초월철학'이 지닌 전반적인 사고방식,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이 지닌 전반적인 사고방식, 가다머의 기획에 은밀하게 내재된 '초월철학적' 사고방식을 비판의 대상으로 지목해서요. 그러니까, 특정한 학자의 해석학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의보다도, '해석학'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해석학자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3) 네네, 저는 일단 세 가지 키워드로 '철학적 분석' 개념이 지닌 의미를 규정한 다음, 그 중 해석학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분석과 받아들일 수 없는 분석을 구분해보려 해요. 아마 '환원적(reductive)', '치유적(therapeutic)', '명시적(explicit)'이라는 특징이 '분석적(analytic)'이라는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 제시될 거고, 저는 그 중에서 해석학이 첫 번째 요소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논증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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