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철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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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라는 표현이 참 모호한데, 기실 옛 서양 "철학"(으로 분류된) 문헌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별 차이 없습니다.

교정본을 만들거나 새로운 번역본을 내는 것 같은 문헌학에 가까운 작업부터, 오늘날 (분석 철학이든 뭐든) 더 논의된 (철학적) 개념으로 옛 문헌을 해석하거나, 철학사 혹은 사상사 같은 더 넓은 스코프로 보기도 하죠.

차이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철학"으로 분류되는 문헌의 오래된 역사가 있는만큼, 어떤 문헌이 철학인지 큰 논쟁은 이제 드뭅니다. 논쟁이 있어도 뭐 공유된 상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죠.

반대로 비서양에서 "철학"은 빨라도 19세기, 늦으면 20세기 후반에서야 나름 받아드리게 된 학문 분류 체계입니다. 그만큼 어떤 문헌이 철학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이게 종교인지 주술인지 신학인지 그 자체로 논쟁이 되고, 각자의 접근법과 편견이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이 세 개념조차, 굉장히 서양적이기에 철학이 무엇인지만큼 논의할 내용이 있겠죠.)

다만 요즘 영미권 철학계에서는 서양 철학 문헌뿐 아니라, 비서양의 오래된 학문 전통들 (불교든 이슬람이든 힌두교든)도 철학의 연구 영역으로 삼는데 별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예전이라면 철학 문헌으로 보지 않았을 신비주의 문헌이나, 연금술과 옛 과학사적 문헌들, 유사 학문적 문헌들까지도 다룹니다. 뭐 물론 서양 철학사의 코어한 부분으로 여겨지진 않지만요.)

나아가 1970-80년대라면 인류학의 역할이라고 보았을, 개별 민족의 신화/구전 개념에 대한 연구조차 이제 나름 "철학"으로 다룹니다. (이는 사실 제 입장에서도 격변입니다. 90년대 언저리에 태어났는데...)(그리고 물론 새로운 흐름인만큼, 이게 유용한지 아닌지 뭐 그런 평가는 아직 좀 이른 것 같고요.)

게다가 (분석이든 대륙이든 뭐든) 철학의 기본이 개념 분석이라는 점에서, 서양이든 비서양이든, 철학 문헌에서 나왔든 과학 연구에서 나왔든 신조어든 밈이든, 개념 분석이 치밀하기만 하다면 이제 철학 연구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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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제가 예전에 썼던 글과 다른 분들이 쓴 글이 있으니 링크를 타면서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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