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현상학회 & 한국하이데거학회 공동 학술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25일)에 하이데거를 전공하는 연세대 대학원 S 선생님과 함께 2024년 한국현상학회 & 한국하이데거학회 공동 학술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S 선생님의 권유로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참석하였는데, 덕분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네요. 세 분 선생님들의 발표 내용과 그에 대한 제 생각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김진주, 「존재망각의 극복계기이자 근본계기로서 '무'」

가톨릭대 김진주 선생님은 존재망각이 단순히 인간적인 실수나 오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존재 자체의 근본적인 특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강조하셨어요. 존재의 밝힘에는 언제나 숨김의 계기가 있기 때문에 '존재'와 '무'는 근본적으로 공속적이고, 그 공속 관계로 인해 '무'가 존재망각의 근본계기인 동시에 새로운 존재 밝힘을 위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발표문의 요지였습니다. 저는 질의응답 시간에 존재와 무의 공속 관계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의가 지각의 '음영(Abschattung)'에 대한 후설의 논의와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드렸어요. 우리의 지각에서 밝게 드러나는 면이 있으면, 그 뒤편에는 그림자에 감추어지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상 인식이란 언제나 음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후설의 강조점들 중 하나거든요. 한상연 선생님이 이 질문에 대해, 후설에게서 음영은 '지각'이라는 인식론의 문제에 국한되지만, 하이데거의 논의는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식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존재와 무의 공속 관계로 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해 주시더라고요.

(2) 이은영, 「에디트 슈타인의 감정이입의 현상학」

부산가톨릭대 이은영 선생님은 '감정이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에디트 슈타인의 현상학을 전반적으로 개괄해주셨습니다. 슈타인이 왜 후설의 현상학을 '유아론적' 혹은 '관념론적'이라고 비판하였는지, 그녀는 후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실재론적' 현상학을 전개하였는지, 감정이입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런 그녀의 사상적 특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특징은 그녀의 유대교적 배경과 가톨릭적 신앙 중에서 어느 쪽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가 발표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토론을 하셔서 저는 질문을 던지지 못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감정이입'이라는 철학적 방법론이 과연 유아론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후설의 현상학은 여러 문제에서 유아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비판점 중 하나가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감정이입을 통해 타자를 '다른 자아(alter ego)'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거든요. 감정이입에 대한 슈타인의 논의가 과연 후설의 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질문드리고 싶었는데,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죠.

(3) 김민호, 「데리다의 반복과 메이야수의 반복」

파리8대학의 김민호 선생님은 데리다와 메이야수의 철학이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더 나아가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는 논의를 제시하셨습니다. 데리다와 메이야수가 모두 우연적인 기호의 반복 가능성으로부터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해명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두 인물 사이의 철학적 간극이 크게 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메이야수는 우연한 기호들의 체계인 수학이 어떻게 우연한 실재 자체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데리다보다 더욱 나아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메이야수를 비롯한 최근의 실재론자들은 '신실재론'이나 '신유물론'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데리다를 포함한 20세기 유럽철학을 '상관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발표문의 논의 구도가 매우 독창적이고 새롭게 보였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원화석'의 실재성을 강조하면서 "인간 종이 존재하기 전에도 세계는 존재했다!"라고 주장하는 메이야수의 논의가 과연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하는 데리다의 논의와 공명할 수 있는지, 오히려 메이야수는 칸트 이전의 소박한 실재론으로 회귀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여전히 의문스러웠어요. 이 점을 질문드렸더니, 김민호 선생님께서는 메이야수가 소박 실재론에 대한 분명한 비판자일 뿐더러, 메이야수는 상관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상관주의의 의의와 한계를 더욱 철저하게 제시하려는 철학자에 가깝다고 답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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