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 중 <계몽의 개념>장에서

안녕하세요. 요즘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문점들이 눈에 띄여서 질문글을 남깁니다.

"주술의 세계는 언어 형태에서조차 그 흔적이 사라진 '차이'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후에 '존재자' 사이의 다양한 '유사성'은 추방되고, 그 대신에 의미 부여하는 주체와 의미 없는 대상간의 관계, 합리적 의미와 우연한 의미 담지자 간의 관계가 나타난다면, 주술의 단계에서 꿈과 형상은 사물의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유사성과 이름에 의해 사물과 직접 결합한다." (국문본, 32-33쪽.)

"Die Welt der Magie enthielt noch Unterschiede, deren Spuren selbst in der Sprachform verschwunden sind. Die mannigfaltigen Affini- täten zwischen Seiendem werden von der einen Beziehung zwischen sinngebendem Subjekt und sinnlosem Gegenstand, zwischen rationaler Bedeutung und zufälligem Bedeutungsträger verdrängt. Auf der magischen Stufe galten Traum und Bild nicht als bloßes Zeichen der Sache, sondern mit dieser durch Ähnlichkeit oder durch den Namen verbunden." (1944년 암스테르담 출판본, 22쪽.)

위 구절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제 나름의 해석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언어는 대상에 대한 개념화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아도르노는 언어의 사용 상에 개별적 대상들에 대한 추상화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는 곧 존재자 사이의 다양한 유사성을 추방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때 언어에 의한 개념화란 즉 언어의 사용자인 주체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도르노는 또한 주체를 "의미 부여하는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주체에 의해 명명되는 대상들은 그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주체에 의해 부여된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대상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란 '없는' 것이 된다. 이처럼 대상의 의미란 그것에 본래 주어져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인 것 - 즉 대상의 의미란 대상에 대해 사유하는 이성에 의해서 형성된 것 - 이 되며 언어적 형태에서의 대상이란 '의미 담지자'의 지위로 격하된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주술(마법, 혹은 신화적 사유)는 주체와 언어적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점들을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괜찮을지요.

관련하여 검색해보니 TheNewHegel님의 T h. W. 아도르노, M.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계몽의 개념」 - 2 - 요약문 - 서강올빼미 (owlofsogang.com) 요약문이 있던데, 관련 구절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 같아 질문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와같은 주제에 대하여 이미 논의된 적이 있었을까요?

2개의 좋아요

해석하는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개별적 대상들에 대한 추상화가 존재자 사이의 유사성을 추방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개별적 대상들에 대한 추상화가 발생하면 존재자 사이의 차이점을 추방시키는 것이지, 오히려 유사성은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여하튼 제 해석이 적절하진 않은 것 같고, 다른 선생님들꼐서는 위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주술의 단계에서 형상은 ~ " 이 부분에서 '꿈과 형상'의 의미하는 바가 너무 불명확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아마 환상과 형상, 그러니까 언어적 대상이 지시하는 관념과 그것의 실제적 모습을 지칭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해석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미메시스와 동일시를 개념적으로 구별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미메시스는 주체가 대상에 유사해지는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체와 대상 사이의 차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동일시 속에서는 대상이 일방적으로 주체에 의해 규정되는 까닭에 양자의 차이가 소멸합니다. 그렇다면

마법(Magie)은 동일시보다 미메시스에 가까우며, 따라서 주체와 대상, 또 대상과 대상 사이에 성립하는 차이를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법에서 발생하는 '친연성'(Affinität)이나 '유사성'(Ähnlichkeit)은 차이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꿈'(Traum)과 '상'(Bild)은 관념이나 대상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냥 문자 그대로 꿈과 그림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용어가 등장하는 문장은 특별히 관념과 대상의 실제 모습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기보다는, 언어가 본격적으로 사물을 추상화하는 단계인 기호(Zeichen)와, 아직 유사성 관계를 간직하고 있는 마법의 단계를 대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개의 좋아요

너무 명쾌해서 더 여쭤볼 것도 없는 코멘트네요. 감사합니다. 정독해보겠습니다.

1개의 좋아요

"차이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그 앞까지 한 얘기의 종결부이고 "존재자들 사이의 다양한 유사성들이 추방된다"는 다른 얘기의 시작부입니다. 물론 그 두 얘기는 완전히 다른 얘기는 아니고 그래서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다. 전자는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얘기고 후자는 존재자들 사이의 유사성/친밀성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유사성/친밀성은 객체가 우선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아도르노의 판단으로는, 주술은 한편의 차이와 다른 한편의 유사성/친밀성 둘 다에 충실한 반면 - 유사성/친밀성에 충실한 면을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태도/행동'이라고 부릅니다 - 계몽적 사유를 대표하는 실증주의적 사유는 그 둘 모두에 적대적입니다. 후자에 대한 적대성을 아도르노는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사유와 현실의 근본적 분리', '객체들에 대한 사유의 자립화' 등으로 표현합니다.

5개의 좋아요

이 구절 뭔가 보면 볼수록 명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주술의 세계는 (계몽화된 사유와는 다르게) 개별적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간직하고 있는데, 곧 이 차이, '다름'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대상들 사이에 '유사성'이 형성된다는 말이군요?

아직 머릿속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서 일련의 논리적 문장들로 진술할 수는 없습니다만, 곧 이 '차이'라는 요소가 유사성을 형성해내는 계기가 된다는게 아도르노의 주장인 듯 하네요. '유사하다'라는 말은 '동일하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관계로, 곧 유사함의 근거는 대상들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술적 관점에서의 소위 '인식'이라 함은 이처럼 대상들 사이의 유사화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대상들을 동일화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대충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1개의 좋아요

다르기 때문에 유사한 것이다... 뭔가.. 좀 뭔가네요.

1개의 좋아요

와.. 마지막으로 댓글 달아주신 분 덕에 이해했습니다
저 틀에서 보면
A B A 형식이네요
주술의 세계에선 차이가 있는데 이 덕에 꿈과 형상이-즉 주술적 요소들은 유사성과 이름-추상화된 기호나 단어가 아닌 그 개별 대상들에 붙여지는 고유명사와도 같은-에 의해 사물과 직접 결합한다
다시 말해 우리집 뒷산은 그저 뒷산 중 하나로서의 뒷산이 아닌 지금까지 커오며 내가 가져온 느낌과 이미지들과 고유명사화된 뒷산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칭되며 직접 결합한다
반면 주술 이후의 세계에선 의미부여자와 의미수여자는 일방향적이고 수여자는 그저 대상일 뿐이다
부여자는 합리적인 추상화를 통하여 붙이지만 수여자에겐 그것은 우연적인 것일 뿐이다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