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쾨르, 데카르트, 하이데거 그리고 서강준

연기의 즐거움이 그 고통을 압도한다면 좋겠네요. 다행히, 저한텐 그래요. 연기는 인간에 대한 탐구거든요. 배우는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직업이고요. 연기 공부를 하면 비평 이론이나 철학을 배우며 인간 자체에 접근하게 돼요. 전 아직 겉핥기긴 하지만. 언젠가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자아에 대해 철학자들의 이론을 논박하고 옹호하는데 흥미롭더라고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에 반대하고, “존재자 이전에 존재가 있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따르는 책이죠. 어느 쪽에 동의해요? 전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설득력 있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게 제가 살아온 방식 같아요. 저는 오직 제 판단만 믿거든요. 전 죽음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살만큼 살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더는 없다고 생각될 때 제 선택으로 가고 싶어요. 물론 이걸 충동적인 죽음과 혼동하면 안 되겠죠. 저는 제가 아주 온전한 상태일 때 선택하고 싶은 거예요.

배우 서강준 씨가 철학에 관심이 많으신 줄은 몰랐네요. 최근에 이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데카르트나 하이데거는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고 쳐도, ‘리쾨르’라는 이름이 배우의 입에서 언급되었다는 게 신기해서요.

게다가,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나름의 철학적 일관성도 있네요. 질문자 분은 리쾨르가 데카르트에 반대해서 하이데거의 입장을 옹호한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은 데카르트의 반성철학적 기획을 재구성하려는 내용입니다. 리쾨르는 주체의 자기 반성이 해석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지, 데카르트와 하이데거 중에서 어느 쪽의 편을 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리쾨르는 하이데거 이후에도 데카르트의 반성철학적 기획이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죠. 그래서 리쾨르를 흥미롭다고 말하면서 데카르트도 옹호하는 서강준 씨의 이야기가 실제로도 정합적일 수 있죠.

물론, 배우의 인터뷰에서 아주 정확하고 학술적인 철학 텍스트 독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리쾨르의 해석학과 데카르트의 반성철학 조합은 실제로도 옹호될 만한 입장이라는 점, 그리고 그 조합을 다른 사람도 아닌 배우 서강준 씨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는 점이 상당히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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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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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 가져가시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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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준에 이어 장원영까지… 철학이 이렇게나 인싸의 학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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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붐은 온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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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필모를 눈여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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